“가습기 살균제 기업에 ‘징벌적 손배제’ 도입해야”
  • 김지영 시사비즈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5.23 19:02
  • 호수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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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공동소송 대리인단 단장, “환경부 직무유기 드러나”

법무법인 향법 소속 황정화 변호사(사법연수원 35기)는 여느 변호사와 달리 법원이나 사무실보다 밖으로 돌아다니는 일이 더 많다. 그가 주로 맡는 환경·보건 관련 사건은 산·바다·공장 등 야외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는 강원도 산골짜기부터 남해안 땅끝까지 전국을 안 다녀 본 곳이 없다. 

 

황 변호사는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건 피해자 공동소송 변호를 맡으면서 환경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금도 시멘트 분진 노출 피해, FRP(유리섬유) 건강 피해 관련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요즘에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공동소송을 맡아 시간 단위로 회의를 열고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공동소송 대리인단을 구성했다. 민변 소속 변호사 40여 명이 참여했고, 황 변호사가 단장을 맡았다. 민변은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 생존 피해자, 가족 등을 대리해 옥시레킷벤키저 등 22개 가해 기업과 국가를 상대로 5월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장을 냈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사와 원료 공급업체도 피고에 포함됐다. 원고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436명이다. 황정화 변호사를 소장 접수 다음 날인 5월17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공동소송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환경보건시민센터(센터)는 2011년 질병관리본부에 가습기 살균제 역학조사를 요청했다. 당시 내가 센터 공동대표를 맡고 있어 자연스럽게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정부는 당시 원인미상의 폐 손상과 가습기 살균제의 인과관계를 인정했지만, 기업과 피해자 사이 문제로 일축했다. 피해자들은 개별적으로 민사소송을 벌여야 했다. 그러다 민변과 센터가 주도해 피해자들을 포괄적으로 구제하는 공동소송을 진행하자고 뜻을 모으게 됐다. 국민적 관심사이니만큼 첨예한 논쟁이 예상된다.

 

주요 쟁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우선 피해자들이 가습기 살균제에 실제 노출됐는가, 어떤 제품을 사용하다 피해를 입었는가를 입증해야 한다. 피해자 상당수가 영수증·구매내역·사진 등 증거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피해자들이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됐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게 급선무다. 다음은 가해 기업의 혐의 입증이다. 지금까지 진행된 민사재판을 보면 가해 기업들은 1~2등급 피해자에 대해서도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각종 보고서를 편집하거나 취사선택하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공동소송에서는 그리 할 수 없으리라고 본다. 피해액 산정도 쟁점이 될 거다. 가습기 살균제 사용 탓에 피해자가 입은 피해액을 산정하기란 쉽지 않다. 우선 폐 손상으로 인한 노동력 상실을 계산할 지표가 없다. 살생 물질 탓에 입은 폐손상을 정확히 감정할 병원도 마땅치 않다. 

 

개별 민사소송과 공동소송은 어떻게 다른가.

 

개별 민사소송은 가해 기업이 책임을 인정하지 않아 조정·합의하는 양상으로 가고 있다. 국가가 피해 구제에 손을 놓고 있어 피해자들은 개인적으로 돈을 들여 싸워야 했다. 공동소송이 편하지는 않겠지만 원고 다수가 참여하므로 사건의 무게가 무겁다. 정부와 기업은 지금까지 3~4등급 피해자를 피해자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아예 협상 대상에서 배제했다. 공동소송에서는 3~4등급 피해자도 참여한다. 제조·판매사 주요 인물들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고 있어 형사 처벌될 가능성이 있다. 또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어 피해자 배상에도 유리하다.

 

이번 소송에서 국가를 피고로 지정한 근거는 무엇인가.

 

환경부는 유해화학물질관리법상 가습기 살균제 원료 성분의 유해성을 심사해야 한다는 법률적 근거가 없다고 변명하고 있다. 민변 변호사들이 관련 법률을 검토한 결과, 환경부가 직무를 유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해 기업들은 제품 심사를 받는 과정에서 폐 손상 원인물질로 밝혀진 PGH(염화에 톡시에틸구아니딘) 성분의 노출 경로를 ‘스프레이와 에어졸’이라고 명시했다. 환경부는 공기 중에 분사해 호흡기로 흡입되는 성분에 대해서는 흡입독성시험 성적서를 기업에 요구해야 했다. 환경부는 해당 서류를 요청하지 않고 판매를 승인했다.

 

C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를 원료로 사용한 기업들이 피고에 포함됐다. 질병관리본부가 CMIT·MIT를 폐 손상원인물질에서 제외했던데.

 

1등급 피해자 3명이 CMIT·MIT 성분이 든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다 건강상 침해와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따라서 CMIT·MIT가 피해자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인과관계를 확인하는 조사가 필요하다. 폐손상조사 위원회가 환경부에 이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환경부도 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가습기 살균제 백서에서도 CMIT·MIT 독성에 대해 ‘흡입 시 최초로 접촉되는 호흡기, 코 부분에 염증 유발’ ‘최저 농도에서도 비염이 나타난다’는 문구가 있다. 당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을 뿐이다. 추가 조사를 통해 밝혀낼 수 있다고 본다.

 

어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야 한다. 가해자가 고의적·악의적·반사회적 의도로 불법을 저지르면 입증된 재산상의 손해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피해자에게 배상하게 해야 한다. 이 제도는 정신적 피해에 대한 배상과 함께 불법 행위 반복을 막고 다른 사람이나 기업 등이 유사한 부당 행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형벌적 성격을 가미한 것이다. 한국은 위자료가 엄청 적다. 재산 피해는 실손해를 입증해야 하지만 위자료는 다르다. 지금처럼 피해를 입증하는 데 5~6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고 적은 위자료를 지급한다면 기업은 나쁜 제품을 판매해서 얻는 이익이 혹시 있을지 모를 피해를 보상하는 것보다 더 크다고 판단할 수 있다. 옥시도 3억원을 아끼겠다고 흡입독성시험을 실행하지 않았다고 하더라.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있었다면 그러지 못했을 거다. 

 

이번 소송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

 

가습기 살균제 개발 당시 흡입독성 물질 관련 자료가 많지 않았다. 어디에서도 이 성분을 사람에게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충 구제에나 쓰는 물질에 대해 굳이 사람이 흡입하는 상황을 가정해 흡입독성 여부를 실험할 필요가 없었다. 그걸 사람에게 쓰고도 지금까지 사과와 배상을 회피한 기업과 국가에 응당 책임을 물어야 한다. 어떤 재판보다 난해한 과정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소송을 본다면 5년 이상 걸릴 텐데, 

 

최대한 신속한 재판으로 피해 구제가 이뤄지도록 하겠다. 피해자 구제와 함께 화학·살생 물질 관리 등 법·제도를 정비하는 계기가 된다면 성공한 재판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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