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읽지 않으면서 노벨문학상만 간절히 원해
  •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5.23 20:06
  • 호수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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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맨부커상’ 계기로 번역의 중요성 발견했지만, 한국문학이 넘어야 할 산 많아

5월16일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시상식에서 주목을 받은 사람은 한강 작가와 더불어 공동 수상자로 호명된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였다. 그는 오래전부터 한국 현대소설에 흥미를 갖고 영국 현지에 한국 소설을 알리기 위한 일에 적극적이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번역자가 되기로 결심한 스미스는 영국에 한국 작품을 소개하는 전문 번역가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한국어를 선택했다고 한다. 

 

지난해 런던 대학에서 한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스미스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만난 것은 한국의 출판사나 에이전시의 요구에 응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번역을 시도해볼 대상을 물색하던 중 우연히 <채식주의자>를 알게 됐고, ‘의뢰’가 아닌 작품에 끌려 ‘자발적’으로 번역을 시도했다. <채식주의자>를 번역할 때만 해도 초보였던 그는 출판사로부터 퇴짜를 맞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시 번역한 것을 눈여겨 본 영국 포르토벨로 출판사가 흔쾌히 출간에 응하면서 비로소 유럽 서점가에 소개된 것이다. 

 

스미스는 영문판 <채식주의자>를 통해 문학적 감수성, 탁월한 문장력, 그리고 두 나라의 언어와 문화에 통달한 이상적인 번역가로 평가받았다. 그는 “<채식주의자> 번역은 내 인생의 가장 멋진 경험 중 하나였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가 한강 작가에게 끌린 것은 운명 같은 일이었고, 그 운명은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 수상이라는 꿈같은 선물을 안겨주었다.

 

 

소설가 한강이 5월16일(현지 시각)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 권위의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이 책을 번역해 해외에 처음 소개한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왼쪽)도 한강과 함께 공동 수상자로 호명됐다. © EPA연합

 

세계 속 한국 문학 위상 ‘아직 존재감 없어’

 

데버러 스미스는 2013년부터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소설가 배수아의 작품을 번역해왔다. 이 작업이 결실을 보여 오는 10월부터 미국 출판사들과 손잡고 배수아의 <에세이스트의 책상> <올빼미의 없음> <서울의 낮은 언덕>을 잇달아 출간하기로 했다. 그는 한국문학번역원과의 업무협약에 따라 자신이 직접 설립한 비영리 출판사 ‘틸티드 악시스(Tilted Axis)’에서 매년 한국문학 3종을 시리즈로 내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는 특히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 김연수를 비롯해 젊은 소설가 한유주, 황정은 등의 작품에도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으로 이어지는 이런 운명적인 사건이 한국문학에 계속 일어날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문학이 세계에 진출하는 데 걸림돌로 지적된 일들이 아직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문학의 세계 진출을 위해 번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지만, 번역이 전부는 아니다.  

 

한국문학번역원 정진권 유럽문화권팀 팀장은 “한국문학이 해외로 수출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번역이다. 이 작업을 최대한 잘하도록 해마다 예산을 늘려 지원하고 있다. 한국 작가들이 각 나라 문단이 벌이는 행사나 독자 대상 낭독회 등에 나가 활발한 활동을 펼칠 수 있게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 작품만 덜렁 서점에 출시하는 식의 옛 방식으로는 한국문학의 우수성을 알리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작가의 작품이 뛰어나더라도 외국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을 터인데, 한국문학이 대체적으로 외국 독자들에게는 아직 낯설거나 인기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과 프랑스 등에서 자신의 책들을 알린 한 시인은 세계문학 속에서 한국문학의 위상은 ‘아직 존재가 없다’고 표현했다. 그는 “중국·일본 문학과 벌어진 격차를 줄이려면 앞으로도 노력과 경주를 보태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강 작가의 쾌거를 통해 현지에 수많은 번역가를 양성하거나 한국학을 알리는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지만, 무엇보다 한국문학의 현실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지난 1월 미국의 주간잡지 ‘뉴요커’는 한국의 유별난 노벨문학상 열망을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이 기사에서 미국의 한 평론가는 “한국은 선진국 가운데 1인당 독서량이 최저인데, 노벨문학상 발표 시기만 되면 전 국민이 한국 작가의 수상 여부에 신경을 곤두세운다”고 꼬집었다. 노벨상이 한국문학의 구세주는 아닌 것이다.

 

“한국 인문학 그동안 해놓은 것이 없다”

 

한 지방대에서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인사는 최근 학과 통폐합 등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푸념은, 번역자를 양성하는 시스템을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한국 작가의 저변을 넓히고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작가를 양성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처럼 들렸다. “국내 대학들이 앞다퉈 인문계열 학과를 폐지하고, 취업률 높은 학과의 정원을 늘리고, 기업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학과를 개설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마당에 걸출한 작가를 배출할 토양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은 최근 언론 기고를 통해 “한국 인문학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말하기 위해 굳이 증거 자료를 제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학생이 부족하다는 소리 하나에 대학의 근간이 흔들리는 상황이니 말이다. 하물며 권력의 입김이나 돈 냄새 따위를 꼭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왜 이렇게 흔들리는 것일까. 한국의 대학은, 더 정확히는 한국 인문학은 그동안 해놓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해놓은 것이 없기에 지킬 것이 없는 것도 당연지사. 지킬 것이 있어야 싸울 텐데 말이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싸움 한 번 못하고 털리고 당하고 밀리는 것이 한국 인문학의 현 주소일 것이다”라고 개탄했다.

 

한강 작가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했다고 “한국문학의 위상이 한 차원 높아졌다”고 평가하고 보도하는 데 열을 올리는 것이 무색해지는 지적들이다. 얼마간 한강 작가의 책이 많이 팔리기는 하겠지만, 싸늘하기만 했던 한국문학의 현실이 금세 훈훈해지기는 힘들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해 신경숙 작가의 표절 파동과 ‘문단권력’ 논란 이후 출판계는 활력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눈에 띄는 작품도 나오지 않았고, 서점을 먹여 살릴 만한 베스트셀러도 터져주지 않았다. 아니 ‘독서 권장’을 표방한 방송 프로그램이나 온갖 책 행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인은 책보다는 스마트폰에 시선을 더 많이 뺏기는 일상을 바꾸지 않았다.

 

특히 평론가들은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해당 작가와 작품에만 관심을 갖는 현상을 경고했다. 세계적인 상을 탔다는 이유 때문에 쏠림으로 읽지 않았으면 한다거나, 경사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저절로 한국문학의 위상이 높아지는 건 아니라고 지적했다. 한 나라 문학의 부흥은 노벨상 수상이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외국 독자들이 인정해줘야 한다. 문학에 대한 사랑이 ‘국민적으로 진했던’ 시절을 돌이켜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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