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정당’으로 전락시킨 ‘새누리당 5·17 쿠데타'
  • 남상훈 세계일보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5.25 15:33
  • 호수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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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계, 비대위·혁신위 보이콧…“친박, 충성으로 뭉친 전근대적 집단”

20대 총선 참패로 난파선 처지가 된 새누리당이 침몰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당 수습과 쇄신은커녕 지도부 부재로 당내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는 ‘식물정당’으로 전락했다. 친박(친박근혜) 패권주의가 지도부를 공중분해 상태로 빠뜨렸다. 더욱이 친박은 “절(당)이 싫으면 스님(비박근혜)이 떠나라”며 분당 불사 입장이다. 이에 맞서 비박(비박근혜)도 계파 종식을 위한 결사항전의 태세다. 총선 참패 이후 1개월여 만에 여당이 분당 위기에 놓였다.

 

새누리당은 5월20일 당 내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정진석 원내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중진연석회의를 개최했다. 하지만 뚜렷한 결론 없이 정 원내대표에게 비대위-혁신위 구성 문제에 대해 전권을 위임하는 쪽으로 어정쩡한 결론만 내렸다. 여당의 내전은 ‘친박의 5·17 쿠데타’에서 비롯됐다. 친박은 5월17일 비박 비대위원회 구성과 비박 김용태 혁신위원장 선임에 조직적으로 반발해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 개최를 무산시켰다. 친박이 무력 시위로 임시 지도부와 혁신기구를 만들 판 자체를 깬 것이다. 이번 쿠데타는 비박 비대위원과 김 혁신위원장 인선이 형평성을 잃었다는 점을 명분으로 삼았다. 친박은 이를 앞세워 비박의 당내 권력 장악 시도를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5월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국위원회가 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무산되자 전국위원들이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비박, 친박의 집단 반발 눈치 채지 못해 

 

친박 쿠데타는 5월16일 예고됐다. 친박 초·재선 의원 20명은 기자회견을 열고 정진석 원내대표에게 혁신위원장과 비대위원 인선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정 원내대표는 “비대위원 정원(10명)을 늘려 친박 인사 5명을 추가로 뽑겠다”고 제안했다. 친박은 즉각 “비대위원 인선을 다시 해야 한다”며 이를 거부하고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 보이콧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 원내대표와 비박은 친박의 집단 반발 움직임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이들이 친박의 이상한 낌새를 감지한 것은 ‘거사’가 벌어진 5월17일 오전이었다. 뒤늦게 출석을 독려하는 전화를 돌렸으나 무위로 돌아갔다. 오후 1시20분부터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기로 한 상임전국위와 전국위가 잇따라 무산된 것이다. 비대위원장에 정 원내대표를 선출하고, 혁신위에 당론 결정권을 부여하는 당헌·당규 개정안 처리가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불발됐다. 비박 비대위원과 김용태 혁신위원장 선임에 대한 친박의 반발이 집단행동으로 이어진 결과다.

 

친박은 비박 비대위원들이 무소속 유승민 의원을 복당시켜 당내 권력을 장악하려 한다고 판단해 비대위와 혁신위를 비토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친박은 20대 총선 공천에서 유 의원과 그와 가까운 후보들을 배제하는 공천 파동으로 친박 패권주의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바 있다. 쇄신파인 황영철 의원은 당시 “우리가 늘 ‘친노 패권주의’를 비판했는데 이번에는 오히려 ‘친박 패권주의’가 공천 과정에서 나왔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에 내정됐던 김용태 의원이 5월17일 기자회견을 열고 혁신위원장직을 맡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친박 “비박, 유승민 복당시켜 당권 장악 시도” 

 

홍문표 사무총장 권한대행은 회의 무산 직후 기자들과 만나 “회의 무산이 계파 갈등 때문이냐”는 질문에 “많은 분이 그런 지적을 하고, (전국위원들이) 여의도에는 많이 와 있는데 회의장에는 못 들어오는 안타까움이 있다”고 말했다. 혁신위 구성을 위해 소집된 상임전국위에는 정희수·윤재옥 의원 등 대구·경북, 그리고 대전 지역의 친박 위원 상당수가 불참했다. 원유철·홍문종 의원 등 친박 핵심들도 회의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상임전국위원 52명 중 16명만이 출석, 성원 요건(27명 출석)에 미달돼 무산됐다. 일부 친박 초·재선들은 상임 전국위원과 전국위원들에게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전국위에 참석하지 말라’며 불참을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임전국위원 52명 중 29명이 참석 의사를 밝혔지만, 실제 참석 인원이 16명에 그친 것도 친박의 조직적 반발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다.

 

상임전국위 임시의장을 맡은 정두언 의원은 오후 2시10분쯤 회의실 밖으로 나와 친박을 겨냥해 “이것은 정당이 아니라 패거리 집단이다. 동네 양아치들도 이런 식으로는 안 할 것”이라며 “국민들이 볼 때 저것은 보수당이 아니라 독재당이라고 볼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후 2시25분쯤 정진석 원내대표도 굳은 표정으로 회의장을 나왔다. 

 

비대위원장 선출안과 당헌 개정안 의결을 위한 전국위도 불발됐다. 전국위에는 850여 명의 위원 중 360여 명만 참석해 70여 명이 부족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위 회의장에서는 고성이 오갔다. 참석자들 사이에서 “이게 뭐냐, 정신 좀 차려라” “그러니까 왜 청와대를 공격하느냐” 등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홍 권한대행이 오후 2시40분 전국위 무산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그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말했다. 정 원내대표 측은 “친박의 자폭 테러로 당이 공중분해됐다”고 격분했다.

 

혁신위 구성이 불발되자 김용태 혁신위원장은 곧바로 사퇴했다. 임명된 지 이틀 만이다. 김 혁신위원장은 국회 기자회견에서 “오늘 새누리당에서 정당 민주주의는 죽었다”며 “새누리당이 국민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잃었다. 저는 혁신위원장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에게 무릎을 꿇을지언정 그들에게 무릎을 꿇을 수 없다”며 “이제 국민과 당원께 은혜를 갚고 죄를 씻기 위해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겠다”고 친박을 비판했다. 

 

친박의 비대위·혁신위 보이콧 이유는 무소속 유승민 의원의 조기 복당 가능성 봉쇄였다는 관측이 나온다. 친박 이장우 의원은 “비대위원들이 첫 회의 때부터 당 내부를 공격하고 유 의원을 빨리 복당시키라는 얘기를 서슴없이 하지 않았느냐”며 “지금 당내 구성원 중에서 유 의원을 빨리 입당시키라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느냐. 대부분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대위원으로 내정됐던 비박 김영우 의원이 5월16일 유 의원의 복당 문제를 전당대회 전에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김 의원 외에도 김세연 의원, 이혜훈 당선자 등 유 의원과 가까운 인사들이 비대위원에 내정됐다. 김용태 전 혁신위원장도 유 의원의 복당문제를 빠른 시일 내에 결정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한 친박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의도가 뻔히 보이지 않느냐”고 말했다.

 

현행 당헌·당규는 무소속으로 출마한 인사들의 복당은 최고위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최고위의 권한을 가진 비대위 구성이 비박계 위주로 이뤄진다면 유 의원의 복당은 빠른 시일 내에 가시화될 수 있다. 유 의원은 총선 직후 복당계를 대구시당에 제출했다. 차기 전당대회를 앞두고 유 의원이 복당한다면 당내 권력구도는 큰 폭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유 의원 복귀는 친박계에 비해 구심점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비박계 내에 ‘원심력’이 생성된다는 의미다. 특히 이번 전당대회는 내년 대선 경선을 관리할 새 지도부를 선출한다는 점에서 친박과 비박 간 전면전이 예고되고 있다. 그래서 친박은 당내 권력 탈환 구상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는 유 의원 조기 복당을 막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유 의원의 복당은 그 시점이 전당대회 전이냐 후이냐에 따라 정치적 의미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 원내대표의 독단에 대한 친박의 불만도 작용한 듯하다. 정 원내대표는 청와대와 상의 없이 비대위원과 혁신위원장을 일방적으로 선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박 한 의원은 “정 원내대표가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과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되지 않자 현 수석과 상의 없이 비대위원과 혁신위원장 인선을 자신의 뜻대로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박, 정진석 대표 독단에 대한 불만도 작용

 

정 원내대표는 원내수석부대표 선임을 놓고선 친박 좌장인 서청원 의원과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 의원은 친박 김태흠·이우현 의원 등을 원내수석부대표로 추천했으나 정 원내대표는 친박 실세 최경환 의원과 가까운 김도읍 의원을 임명했다. 정 원내대표가 현 수석과 서 의원에게 찍힌 것이 친박 쿠데타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태흠 의원은 정 원내대표에 대해 “원내 대표가 되고 난 뒤 언행이나 인사 측면에서 봤을 때 ‘자기 정치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희들 입장에서는 신뢰감을 못 주는 일련의 행동들을 보여왔다”고 비판했다.

 

친박 패권주의는 2007년 대선 때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태동했다.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친박은 18대 총선 공천에서 학살을 당했다. 이때부터 비주류의 설움을 겪었던 친박은 내부결속을 다져나갔다. 친박 패권주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것은 2012년 19대 총선 공천에서 친이(친이명박) 학살을 단행하면서다. 4년 전에 친이에게 당한 수모를 되갚아 준 셈이다. 이 과정에서 친박이 당내 최대 계파가 됐다. 

 

친박 패권주의는 반기를 든 자파 인사들에까지 자행됐다. 친박의 공격 대상은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진영 의원 등 한솥밥을 먹던 원조 친박이었다. 김 전 대표는 이명박 정부 시절 세종시 수정 국면에서 친박들로부터 배척당했다. 유 의원은 2015년 국회법 개정 사태 때 박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로 낙인찍혀 20대 총선 공천에서 배제됐다. 특히 유 의원과 더불어 친유승민계로 불리는 의원들도 대거 공천에서 탈락하거나 탈당했다. 진 의원은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기초연금 체계를 두고 박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다가 20대 총선 공천에서 배제돼 새누리당을 탈당해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총선 참패는 친박이 주도한 공천파동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친박은 비박을 대거 솎아낸 20대 총선에서 다시 최대 계파를 형성했다. 새누리당 지역구 당선자의 계파를 분석하면 친박은 68명이고 비박은 37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친박은 같은 계파 인사라도 박 대통령과 다른 생각을 가지면 함께 갈 수 없다며 ‘뺄셈 정치’를 하고 있다. 주류세력인 친박은 지난 3년간 박 대통령에게 쓴소리는커녕 대통령 눈치만 보는 거수기 역할을 해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친박이 이념이나 정책 성향으로 결합된 정치 집단이 아니라 ‘오너’인 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을 기준으로 모인 전근대적 정치 집단이기 때문에 맹목적 추종이 정치 지향점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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