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범죄’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5.25 16:29
  • 호수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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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 사건 통해 본 범죄 실상 주로 길거리나 공공장소에서 발생

도심 한복판에서 충격적인 ‘묻지마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5월17일 오전 1시쯤 김 아무개씨(34)는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인근의 한 건물 남녀 공용화장실에 숨어들었다. 인근 음식점 종업원인 김씨는 전날 자신이 일하는 식당 주방에서 흉기를 챙겨둔 상태였다. 

 

 

5월20일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과 관련해 서울 지하철 강남역 10번 출구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잠시 후 남자친구 등 지인들과 1층 주점에서 술을 마시던 A씨(여·23)가 화장실로 들어왔다. 김씨는 A씨에게 다가간 후 들고 있던 흉기로 왼쪽 가슴 등을 2~4차례 찔렀다. 김씨는 곧바로 달아났다. 화장실에 간다던 A씨가 돌아오지 않자 남자친구가 찾아 나섰다. 화장실은 건물 2층 노래방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 있었다. A씨의 남자친구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화장실 바닥에 피가 흥건했고, 여자친구는 피를 흘리며 변기 옆에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남자친구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A씨를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숨졌다. 경찰은 사건 현장 부근 폐쇄회로(CCTV) 영상을 분석해 범행 추정 시간대에 김씨가 화장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그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그리고는 이날 오전 10시쯤 출근하는 김씨를 잠복 끝에 검거했다. 당시 김씨는 CCTV에 찍힌 모습과 똑같은 옷차림으로 바지 주머니에 범행에 사용한 흉기를 소지하고 있었다.

 

김씨는 왜 A씨를 살해한 것일까. 놀랍게도 김씨와 A씨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김씨는 ‘왜 A씨를 죽였느냐’는 경찰의 물음에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여성에 대한 혐오가 ‘묻지마 살인’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경찰은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김씨의 심리 상태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심각한 수준의 정신분열증이 범행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김씨는 서울 지역 한 신학대학을 다니다 중퇴했으며 한때 목사를 꿈꿨다고 전해진다. 김씨는 2008년부터 올해 1월까지 정신분열증으로 4차례나 정신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했던 병력을 갖고 있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서초경찰서는 “김씨가 2008년부터 정신분열증·공황장애 등으로 4차례에 걸쳐 입원한 기록이 있다. 알려진 대로 ‘묻지마 살인’ ‘여성혐오 살인’으로만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뒤 온라인에서는 ‘여성 혐오가 묻지마 살인까지 불렀다’며 사회적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또 이번 사건을 ‘묻지마 살인’이 아닌 ‘여성혐오 범죄’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여성으로 대상이 분명히 국한됐기 때문에 ‘묻지마’라는 모호한 단어를 쓰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피해 여성에 대한 추모 물결도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하게 일고 있다. 강남역 10번 출구는국화꽃과 추모 메시지로 가득 찼다. 트위터 계정 ‘강남역 살인 사건 공론화(0517am1)’도 만들어졌다. 5월18일에는 “강남역 10번 출구 국화꽃 한 송이와 쪽지 한 장. 이젠 여성 폭력, 살해에 사회가 답해야 할 차례입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사건 현장에는 수천 장의 추모 쪽지가 나붙었다. 여기에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죽지 않을 세상을 만들게요’ 등의 글이 담겨 있다. 페이스북에는 ‘강남역 10번 출구’라는 이름의 페이지가 생겼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위험한 공중화장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 등이 공개 장소에 설치한 공중화장실 범죄 중 성폭행·강제추행 등 성 관련 사건 비중이 매년 늘고 있다. 2014년에는 1795건 중 835건(46.5%)이 성범죄였다. 일반 상가 등에 설치된 남녀 공용화장실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강남역 살인 사건 용의자가 5월19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묻지마 범죄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수년 동안 거의 두 배로 늘어났다. 살인 사건 중 상당수가 피해자와 아무 상관이 없는 ‘묻지마 살인’이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최근 3년(2012~14년)간 발생한 묻지마 범죄는 163건에 달한다. 매년 50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그 횟수가 더 증가하고 있다. 범죄 원인으로는 정신질환(36%), 알코올·약물 중독(35%), 현실 불만(24%) 순이다. 묻지마 범죄에는 예외가 없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희생양이 될 수 있다. 묻지마 범죄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도 않는다. 묻지마 범죄의 61.5%가 길거리나 공공장소에서 발생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길을 가거나 운동하다가,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심지어 출근하던 지하철 안에서도 당할 수가 있다. 이유 없이 흉기를 휘두르는 탓에 방어하기도 어렵다.

 

지난 4월17일 광주 광산구에 있는 어등산 등산로에서 김 아무개씨(48)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60대 남성이 숨졌다. 당시에 김씨는 아무런 이유 없이 등산객에게 칼을 휘두르면서 위협을 했고, 그옆에 있던 피해자가 휴대전화를 보고 있자 “신고하는 거 아니냐”며 무려 9차례나 찔러 살해했다. 지난 3월 서울 성동구의 한 횟집 앞 거리에서는 횟집 주인이 “빚 때문에 경제난에 시달렸고 감옥에 가고 싶었다”며 흉기를 휘둘러 2명의 행인이 부상을 입었다. 지난해 9월 서울 양천구에서는 자신의 집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던 40대 남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묻지마 범죄 중 상당수는 정신장애 등을 이유로 죄질에 비해 아주 가벼운 형을 선고받는 데 그치고 있다. 

 

‘묻지마 범죄’ 이런 사람 조심하라

 

‘묻지마 범죄’는 누구나 당할 수 있지만, 미리 대응하면 화를 면할 수도 있다. 묻지마 범죄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사전 징후를 잘 파악해야 한다. 지금까지 발생한 묻지마 범죄 용의자들의 범행 동기는 크게 정신병 등 개인적인 요인, 경제적 어려움, 실직, 채무 압박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묻지마 범죄자들의 공통적인 특성은 스스로 고립된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인간관계를 단절하고, 사회와의 소통도 끊는다. 즉 ‘자신만의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사회에 대한 불만과 함께 개인적인 스트레스도 증가한다. 결국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데 이것이 묻지마 범죄로 연결되는 것이다.

 

우선 ‘정신이상자’들이 관리 대상 1순위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주변에 있는 정신이상자들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당사자나 그 가족들은 이런 사실을 철저하게 숨긴다. 주민들이 의심을 해도 극구 부인한다. 때문에 범죄가 발생한 후에야 범죄자의 ‘정신병력’이 알려지게 된다. 우리 주변에서 비정상적인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환청이 들린다며 떠들고 다니는 사람, 아무 이유 없이 이웃에게 욕하거나 의심하는 사람, 반복적으로 괴성을 지르는 사람, 극도의 경계심을 표출하는 사람 등이다. 이런 사람들은 특별 경계 대상이다. 아파트 관리실 등에 신고해서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관찰하거나 가급적 마찰을 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학교·공원·아파트·지하철역 등을 비정상적으로 배회하는 사람도 의심해야 한다. 길을 가는데 누가 따라오거나 신변의 위협을 느낄 때는 동선을 바꿔야 한다. 이때는 인적이 드문 골목보다는 대로변을 선택해야 한다. 같은 동선이라고 해도 일정 정도 거리를 둬야 갑작스러운 행동에 대처할 수 있다. 음주를 하거나 맨 정신인 상태에서 극도로 사회 불만을 표출하거나 “다 죽여버리고 싶다”는 등 범행을 고지하는 사람도 잠재적인 위험인물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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