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의 인내심 테스트 “자살보험금? 판결 나오면 줄게”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05.26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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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권고․대법원 판결에도…보험사 자살보험금 소송 이어간다

# A씨는 2003년 한 생명보험의 ‘종신보험’상품에 가입했다. 이 약관의 '재해사망 특약'에는 가입 뒤 2년이 지나 당사자가 자살하는 경우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고 기재돼 있었다. 2014년 A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들은 재해사망 보험금을 청구했다. 하지만 보험사는 지급을 거부했다. 오히려 A씨 유족은 생명보험사로부터 '채무부존재 소송'을 당했다.
 

 

보험사가 자살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며 유족과 소송전을 이어오고 있다. 대법원과 금융당국이 최근 생명보험사에 "자살보험금을 고객에게 지급하라"는 판결과 권고 조치를 냈지만 유가족이 약정된 자살 보험금을 받기 위해서는 여전히 2~3년의 소송전을 견뎌야 하는 상황이다.

법조계와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 10개 생보사는 최근 5년 간 수십 건에 달하는 자살보험금에 대한 '채무부존재' 소송을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보험사는 소비자가 공동으로 자살보험금 청구 소송을 낸 건에 대해서도 항소와 상고를 거듭하며 시간을 끌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보험사들이 "자살 보험금을 주지 않겠다"며 소송으로 끌고 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소멸시효 탓이다. 보험금 청구권소멸시효는 2년이다. 보험사고가 발생한 뒤 2년이 지나면 보험금을 받을 수 없다. 소송 등으로 시효를 중단시키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받아야 할 보험금도 받지 못하게 된다. 보험사가 고의로 보험금을 주지 않은 경우라도 민법상 발생일로부터 10년, 이 행위를 안 날로부터 3년이 지나면 법적으로 문제 삼기 어렵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소송을 통해 시간을 벌수록 보험금 지급을 최대한 피할 수 있는 셈이다.

보험사가 소송전을 벌이는 또 다른 이유는 소송을 번거롭게 여기게 만들어 소비자가 포기하는 것을 노려서다. 소비자 입장에서 목돈을 써서 변호사 수임료를 내고 소송에 참여하기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일부 소비자는 소송을 피하기 위해 보험금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보험법 전문가인 박기억 변호사는 "보험사가 소송을 통해 지급을 미루면 포기하는 사람도 생기기 때문에 지급액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약관에 자살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돼 있다면 지급하는 게 당연한 거다. 대법원이 이번 자살 보험금 판결을 전원합의체까지 회부했다가 소부에서 선고한 것은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기욱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도 "자살 사망 보험금 사건이 대법원 판결까지 나려면 3년쯤 걸린다. 하지만 그 전에 소비자는 지친다. 보험사는 이때를 노려 일정금액을 주고 소비자에게 합의하자는 경우도 있다. 소비자가 긴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길 기다리는 것이다"면서 “주주의 이익을 위해 소비자에게 소송을 건다는 것은 반사회적이고 비도덕적이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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