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의 ‘특허 기술 도용’ 의혹 제기한 중소기업 대표 두고 입장 엇갈린 검·경
  • 송응철 기자 (sec@sisapress.com)
  • 승인 2016.05.27 14:33
  • 호수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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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불기소 의견을 뒤집은 검찰, 왜?

“잘못했다고 언론에 발표하고, 우리은행에 빌면 고발을 취하해주겠다. 당신이 옳으면 우리 직원 두 명 해고하면 그만이다.” 

 

우리은행의 한 전직 임원이 중소 IT업체인 ‘비이소프트’의 표 아무개 대표에게 한 말이다. 표 대표는 우리은행이 자사의 보안 솔루션 특허 기술을 도용했다는 의혹을 앞서 제기했다. 이 일로 그는 우리은행으로부터 고발을 당했고, 그 직후 우리은행 측 임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이런 협박에 가까운 요구를 전달받았다.

 

우리은행 측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서 표 대표는 결국 법정에 서게 됐다. 경찰은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지만, 검찰이 이를 뒤집고 표 대표를 불구속 기소했다. 우리은행의 법률대리인을 맡은 곳은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반면, 표 대표는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채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연상되는 상황. 그러나 표 대표는 자기와 같은 또 다른 피해자가 양산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싸우겠다는 입장이다.

 

 

 

“언론 통해 사과하고, 빌면 고발 취하하겠다”

 

시간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이소프트는 그해 2월 금융 보안 솔루션인 ‘유니키(Uni-Key)’를 개발해 특허를 출원했다. 사용자가 스마트폰에 설치된 유니키로 ‘ON’을 해야만 금융거래가 시작되는 기술이다. 비이소프트는 이렇게 만든 기술을 2014년 3월부터 우리은행에 제안했다. 같은 해 10월엔 우리은행 고객정보보호부 박 아무개 차장의 요구에 따라 유니키 관련 자료를 넘기기도 했다.

 

문제가 생긴 건 이듬해인 2015년 4월이다. 같은 달 6일부터 8일까지 비이소프트는 박 차장의 요구에 따라 유니키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전달했다. 이후 비이소프트는 우리은행이 본인의 계좌를 스마트폰을 이용해 ON·OFF할 수 있는 ‘원터치리모콘’이란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우리은행은 언론을 통해 해당 기술을 자사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주장했다. 

 

우리은행에 따르면, 원터치리모콘은 2015년 1월 기술검토를 하고, 2월 개발에 착수해 4월 개발을 완료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이소프트의 표 대표는 우리은행이 자신의 기술을 도용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즉각 문제 제기를 시작했다. 이런 사실은 복수의 언론을 통해 외부로 알려졌다. 표 대표의 문제 제기에 정치권과 시민단체도 가세했다.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경제민주화실현전국네트워크,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은 지난해 9월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편취 사례를 다룬 ‘제5차 중소기업 피해사례 발표회’에서 비이소프트-우리은행의 사례를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자 우리은행은 표 대표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형사 고발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우리은행은 표 대표에게 협박에 가까운 언사로 공식 사과를 강요하기도 했다. 그가 제시한 녹취에 따르면, 당시 우리은행의 정 아무개 상무는 “언론을 통해서 사과하고 우리은행에 빌면 고발을 취하해주겠다”고 말했다. 표 대표가 “만일 내가 옳은 것이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자 “(담당 직원) 두 명만 자르면 그만”이라는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당시 정 상무는 현재 우리은행을 떠난 상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정 전 상무의 발언은 우리 은행의 공식 입장이 아니며, 그의 퇴사는 이번 일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밝혔다. 정 전 상무도 “당시 화가 나서 그런 말을 했을 뿐, 공식 입장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결국 표 대표는 이런 제안을 거절하고 경찰 수사에 임했다. 그 결과 경찰은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검찰은 경찰의 의견을 뒤집고 지난 5월8일 표 대표를 불구속 기소했다. 우리은행의 주장을 받아들여 표 대표가 유니키의 사업 제안이 채택되지 않자 앙심을 품고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로 인해 표 대표는 오는 6월1일 법정에 서게 됐다.

 

 

표 아무개 비이소프트 대표가 5월17일 “우리은행이 자사가 개발한 금융 보안 솔루션 ‘유니키’를 무단 도용하고, 자신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언론플레이로 은행 상당한 피해 입게 돼”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표 대표의 주장대로 우리은행이 비이소프트의 기술을 도용했는지 여부다. 우리은행은 원터치리모콘이 유니키의 기술을 도용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비이소프트로부터 사업 제안을 받고 자료를 넘겨받은 고객정보보호부와 원터치리모콘을 개발한 스마트금융부가 우리은행 본점 6층과 21층에 각각 위치해 업무 교류가 전혀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우리은행은 을지로위원회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박 차장이 4월6일부터 비이소프트 측에 유니키 관련 정보를 달라고 한 것은 스마트금융부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이전부터 스마트금융부가 유니키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방증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주목된다.

 

우리은행은 또 원터치리모콘과 유니키가 전혀 별개의 기술이라는 입장이다. 원터치리모콘의 경우 인증이 필요 없고, 지정된 스마트폰에서만 작동된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이에 대해 표 대표는 원터치리모콘도 인증이 필요하며, 유니키 역시 지정된 스마트폰에서만 작동된다고 맞서고 있다. 사실상 차이가 없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변리사들도 두 기술을 사실상 같은 기술로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양두열 공감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와 김종화 김종화특허법률사무소에서 원터치리모콘이 유니키의 권리 범위에 속한다는 취지의 감정평가서를 내놓은 바 있다는 것이다.

 

우리은행은 무엇보다 유니키의 기술이 보편적인 것이어서 특허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반면 표 대표는 유니키를 개발할 당시 선인기술 조사와 사용자 조사를 벌인 결과, 어디에서도 이 기술을 쓰는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표 대표는 또 “우리은행 역시 원터치리모콘을 발표한 2015년 4월 해당 기술을 특허출원했다”며 “이는 보편적인 기술로 특허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과 서로 모순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표 대표가 앞서 기술 탈취 의혹을 처음 제기할 당시 언론플레이를 통해 우리은행은 상당한 유·무형의 피해를 입게 돼 (불가피하게)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며 “이번 재판을 통해 시시비비가 가려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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