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미국 손 잡았지만 중국 손도 놓지 않았다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5.29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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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선택은 중국 말고 미국?

 

전쟁을 벌였던 상대가 동지로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5월23일(현지시간) 미국은 베트남에 대한 무기 수출금지 조처를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1990년 프랑스 파리에서 22개 국가들이 재래식무기감축조약(CFE)에 서명해 냉전 시대가 종식된 지 26년 만이다.

미국은 2014년 10월 이미 베트남에 대한 무기 금수조처를 일부 해제한 바 있지만 이번 ‘전면 해제’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양국의 관계가 경제적 동반자를 넘어 군사적 협력관계로까지 확장될 수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양국은 냉전시대가 남긴 마지막 흔적을 정리하고 새로운 시대를 위한 새로운 관계 정립에 나서게 됐다. 관계정립에 필요한 조건은 다름 아닌 ‘중국 견제’다.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를 읽는데 있어 이제 중국은 빼놓은 수 없는 요인이다. 그간 미국과 중국, 베트남은 시대에 따라 이해관계를 달리하며 이리저리 우호협력관계를 만들어왔다.
 

 

미국-중국 vs 베트남 → 미국-베트남 vs 중국

냉전 이후 미국은 소련을 고립시키기 위해 중국과 전략적으로 손을 잡으면서 베트남에서 철군했다. 1979년 중국의 덩샤오핑은 지미 카터 당시 미 대통령의 후원을 받아 중국-베트남 전쟁을 치렀다. 공산주의 국가로 소련의 대리인격이었던 베트남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고픈 미-중의 공동 의지가 있어서 가능했던 합작이었다.

1989년 5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중국을 방문했다. 소련과 중국이 화해 모드로 들어서자 미국은 베트남에 화해의 몸짓을 보내기 시작했다. 양국은 1995년 정식 수교를 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그리고 2000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했다.

2010년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 중시정책’을 표방하고 동남아 국가들이 얽혀있는 남중국해 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2011년 미 해군 함정이 베트남 남부와 남중국해의 깜라인만을 방문하기도 했다. 2014년 남중국해 베트남 연안에서 중국이 석유시추를 한 사건은 미-중-베 3국 관계에 전환점을 가져왔다.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에서도 두 정상은 중국과 베트남 등 동남아국가들이 분쟁 중인 남중국해 문제를 두고 “영유권과 해양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베트남은 중국에게 결코 만만치 않은 인접국가다. 그간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중국과 견제와 갈등 관계를 유지해 와서다. 그러다보니 남중국해 스프래틀리군도(난사군도) 등의 영유권 분쟁에서 중국 견제의 주축국으로 떠올랐다. 오바마 대통령은 여기에 든든한 아군이 되기로 했다.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면서 동시에 남중국해 주변국과의 관계를 강화해 동남아로 영향력을 확장하는 계기도 마련했다. 베트남은 선봉장을 맡았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미국과 베트남의 양국 관계 강화를 단순히 경제 증진을 위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중국에 대한 실질적․영토적 압박의 차원이라고 보는 이유다.

중 “두 국가 관계 환영” 진짜 속내는?

중국은 의외로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 개선을 두고 차분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오바마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이 공식화된 지난 5월17일 주베트남 중국대사관은 베트남 국방부 장관을 만나 양국 관계의 공고함을 확인하는 등 선제 외교를 단행했다. 중국 신화통신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중국과 베트남 양국의 군사 협력강화에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하지만 외교전문가들은 ‘베트남이 진심으로 합의했을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모양새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더디플로매트’는 “남중국해를 둘러싼 양국 이해관계를 고려했을 때 베트남이 중국과 이 같은 동의를 했다고 이해하기 어렵다”며 “원칙상의 합의에 불과할 것이다”고 분석했다.

오바마의 금수조처 해제 발표 직후 중국의 반응도 진짜 속내를 감추고 있는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금수조처는 냉전시대의 유물로 애초에 있어서 안 될 것이었다”고 말했다. 중국이 미국과 베트남 양국 관계가 돈독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을 거라는 일각의 추측에 대해서도 “우리는 베트남과 미국의 정상적인 관계를 환영한다”며 담대한 입장을 보였다. 뉴욕타임스는 5월23일 “이 같은 베이징의 점잖은 반응 뒤에는 베트남의 의도에 대한 깊은 우려가 깔려 있다”고 내다봤다. 여기에는 베트남의 줄타기 외교가 한몫했다. 일단 중국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전략을 취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중국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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