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사태로 보는 협상의 기술 ①] 우리 패부터 까고 시작하는 정부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6.02 17:5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가 개입하면서 싸움의 주도권은 저쪽으로 넘어갔다”

[현대상선 사태로 보는 협상의 기술 ②] 가격 후려치기엔 ‘결렬’로 대응해야 했다


현대상선 용선료(일종의 선박 임대료, 용선자가 선주에게 용선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 협상이 진행 중이다. 외국 선주를 대상으로 한 용선료 협상은 지난 1월 현대그룹이 현대상선의 재무건전성 확보를 위해 내놓은 방안으로 ‘자구계획’의 일환이다. 현대상선은 5년간 지속된 적자의 고리를 벗어나기 위해 자산 매각과 오너의 사재 출연․채권단의 출자전환과 채무연장 등과 함께 용선료 인하를 내걸었다. 현재와 같은 고액 용선료로는 현대상선의 적자 구조를 개선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었다. 

용선 계약은 통상 5~15년 장기계약을 맺게 돼있다. 현대상선은 호황기 때 선박을 장기계약한 탓에 시세보다 5~10배 많은 용선료를 외국 선주에게 지급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해운 운임이 오르고 시황이 살아나더라도 용선료를 현재 수준으로 지급하면 흑자 전환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연 2조원 수준의 용선료는 악화된 재무구조의 주범 중 하나로 꼽혀왔다. 현대상선이 운영하고 있는 선박은 현재 총 125척이다. 이 가운데 ‘조디악’‘다나오스’ 등 외국 컨테이너 선사 5곳이 전체 용선료의 70%를 차지한다. 

용선료 할인은 쉽지 않다. 계약 변경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대외 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운업계 관계자는 “최근 운임이 사상 최저로 떨어지고 있고 선박 대여료도 비정상적으로 하락 중이라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5월 중순부터 언론에는 ‘산업은행 관계자’ ‘현대상선 관계자’ 등의 입을 빌어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전망이 밝다”는 기사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채권단은 용선료 협상이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해 조건부 채무 재조정에 합의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5월30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외국 선주들과의 용선료 인하 협상에 상당히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일단 상황은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하다.

이번 용선료 협상을 보는 협상전문가의 시각은 어떨까. 국제비즈니스분쟁 컨설턴트로 활동 중인 박상기 교수(한양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는 “이번 협상은 한국 정부와 관계당국의 국제협상력이 얼마나 함량미달인지를 보여줄 뿐”이라고 말했다. 매번 되풀이되는 ‘협상 호구’의 악몽을 또 한 번 재현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를 만나 현대상선의 용선료 협상과정에서 드러난 협상의 기술에 대해 들어봤다. 

2016년 6월1일 김충현 현대상선 최고재무책임자가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지동 현대상선에서 열린 마지막 사채권자 집회에서 채무조정안이 가결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현대상선 용선료 인하를 위한 협상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협상 과정이 정부의 말처럼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보나?

이번 협상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그리고 언론이 보여준 행태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계약 관계에는 반드시 ‘갑’과 ‘을’이 있다. 이 경우 갑은 선박을 사는 고객인 현대상선이다. 요구 조건을 들어주고 말고 하는 것은 갑의 일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외국 선주들이 갑인 것처럼 돼버렸다. 협상을 거부하고, 용선료 인하율을 조정하지 않으면 협상에 응하지 않겠다고 나온다. 

여기에 정부까지 개입했다. 힘을 실어주겠다며 개입한 정부는 협상을 본격적으로 하기에 앞서 협상의 목표치부터 알렸다. ‘28% 이상의 인하율’과 ‘5월20일 데드라인’을 공공연히 내걸었다. 게임에 임하기 전에 가진 ‘패’를 모두 까면서 시작한 것과 다름없다. 상대방(외국선주들)은 우리가 달성하고자하는 바를 이미 알고 시작한 거다. 

협상 게임에서 가장 치명적인 패가 ‘절대 ~만은 안 된다’는 패다. 상대편은 이미 우리의 치명적인 패를 알고 있다. 협상에서 ‘결코 실패해선 안 되는’ 정부가 개입하면서 이 싸움의 주도권은 저쪽으로 넘어갔다.

협상의 기본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우리의 다음 수를 알게 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상대가 예측할 수 없게 움직여 그들이 현재의 단계에 집중할 수밖에 없도록 해야 한다. 정부의 지원은 현대상선 입장에서 큰 힘이 되겠지만 그 의도를 알게 된 상대는 이 힘을 이용해 역공을 펼칠 수도 있다.

이미 당초 정부가 제시했던 협상 시한을 넘겼다. 그래도 일각에선 이번 주 내로 마무리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처음부터 데드라인을 공표했다. 아마도 우리가 협상시한을 정하고 협상을 시작하면 선사들이 압박을 느껴 협상에 전향적인 태도로 나올 확률이 조금이라도 있지 않을까 싶어 그랬던 것 같다.

협상에 있어 데드라인(deadline)은 단순히 시간 제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협상시한을 정한 측은 그 협상시한을 상대가 준수하지 않을 시 상대가 감당하기 힘든 페널티를 가할 수 있어야 한다. ‘시한을 정한 협상’이란 건 상대에게 ‘이 때까지 안 되면 페널티를 가한다’ 혹은 ‘협상은 결렬된다’와 같은 최후통첩을 한 것과 같다. 압박전략인 것이다. 

그런데 최후통첩을 날리고도 상대가 시한을 어겼을 때 우리가 아무런 페널티를 주지 못한다면? 그때부터 주도권은 완전히 상대편으로 넘어가 버린다. 이빨 빠진 호랑이인 셈이라 오히려 상대에게 질질 끌려 다닐 위험이 있다.

지금 상황은 어떤가. 이미 1차 데드라인(5월20일)과 2차 데드라인(5월30일)을 넘겼다. 외국 선주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담판을 짓겠다던 관계당국의 호언장담은 어떻게 됐는가. 일부 대형 선주의 불참 선언으로 부랴부랴 개별 협상에 임해야 했다. 용선료 협상의 경우 선주들은 초반부터 비타협․회피 전략으로 임하고 있다. 선주들은 급할 것이 없는 입장이다. 

우리가 갑으로서 주도권을 되찾을 방법은 없나

협상은 협상 테이블 위의 룰(rule)을 정하는 자에게 유리한 싸움이다. 선박을 이용하는 고객으로서 당연한 권리이기도 하다. 작은 변화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문서의 포맷에 맞춰줄 것을 요청하고, 계약서 조항, 문구 하나하나를 우리나라 법에 맞는 표현으로 바꿀 것을 요구해야 한다. 물론 지금까지 그래왔듯 상대는 거부할 것이다. 자국 법률 제한, 보안상의 이유 등을 들어 우리 측 요구에 난색을 표할 것이다. 

하지만 협상은 예의를 갖추자는 자리가 아니다. 특히 이번 건은 협상 당사자뿐만 아닌 수많은 사람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한 번 물었다면 상대방이 죽는 시늉을 하더라도 물고 늘어져야 한다. 우리도 역시 법적 제약, 국민 정서 등 불가항력적 이유를 들어 그들에게 관련 자료를 갖출 것을 요구해야 한다. 그렇게 하나 둘, 야금야금, 상대의 내부사정을 노출시켜야 한다. 작은 변화는 연쇄작용을 이끌어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