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자가 잠재적 범죄자일까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6.06.02 21:30
  • 호수 1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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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행정입원 적극조치 발표…“범죄 예방에 도움 안 된다” 지적 나와

 

강남역 살인 사건의 피의자 김 아무개씨는 청소년기부터 이상 행동을 반복하고 2008년부터 피해망상 증상 등으로 입원을 하는 등 조현병 진단과 치료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 사건을 피의자의 정신질환에 따른 ‘묻지마 범죄’로 판단했다. 5월23일 강신명 경찰청장은 정신질환자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체크리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정신질환자의 행정입원을 요청해 이와 같은 범죄를 막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실효성과 함께 인권침해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모든 정신질환자에게 ‘잠재적 범죄자’라는 낙인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4월에도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이 ‘정신질환자 범죄 대응체계’ 구축을 위해 관련 자료를 경기도 등에 요구하면서 ‘정신질환자는 잠재적 범죄자’라는 언급을 해 논란이 일었다. 

5월23일 서울 서초경찰서 앞에서 20대 여성들이 강남역 살인 사건을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범죄’라고 규정한 경찰 결론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조현병 환자들 범죄와 폭력 위험성 낮다”

강신명 경찰청장의 대책 발표 이후 반대 성명서를 발표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 2월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정신질환 관련 오해와 진실 자료집’을 보면 정신질환 중 공격성과 잠재적 범죄를 일반적인 증상으로 하는 정신질환은 ‘반사회적 인격장애’ 한 가지뿐이며, 조현병 환자들은 범죄와 폭력의 위험성이 매우 낮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나와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정상인 범죄율의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역시 ‘정신질환자들의 경우 일시적으로 조절되지 않는 충동성으로 자해나 타해(他害)의 위험성이 있기는 하지만 매우 드물고 타해의 위험성은 극히 적다’는 입장을 보인다. 박지선 전 경찰대 교수는 “정신장애인들이 일반인보다 범죄의 위험성이 더 높다고 볼 수는 없다”며 “단순히 정신장애 자체를 범죄의 원인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이와 동반해 나타나는 사회적 고립이나 약물남용 등이 범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통합적인 고려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특정 범죄의 원인이 정신적 질환이라는 개인 증상에만 맞춰져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대검찰청이 매년 발간하는 범죄분석 보고서를 보면, 정신장애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범죄자들의 통계가 드러나 있다. 2014년 대검찰청 범죄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128만여 명의 범죄자 중 범행 시 정신장애 상태에 있었던 범죄자의 비율은 0.4%로 5241명이다. 정신이상, 정신박약, 기타 정신장애를 모두 포함한 수치다. 정상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비율인 42.8%(54만5887명)와 비교해볼 때 매우 적은 수치다. 2015년 범죄분석 보고서에 드러난 ‘2014년 전과자 범행 시 정신 상태’ 통계치도 유사하다. 2014년 총 전과자 71만여 명 중 정신장애 상태에 있었던 전과자는 0.5%(3802명)다. 이 중 정상인이 56.5%(39만9259명), 주취(酒醉) 상태가 42%(29만6854명) 등으로 범행 시 정신장애 상태에 있었던 전과자들의 수가 정상인과 주취자에 비해 극히 적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강남역 살인 사건과 같은 흉악범죄를 저지른 정신장애인들의 비율은 어떨까. 2014년 검거된 살인 범죄자의 50.6%는 범행 당시 정신 상태가 정상이었으며, 41.9%는 주취 상태였다. 정신장애가 있는 경우는 7.5%였다. 아동대상 성폭력 범죄자의 경우 정상 상태는 66.1%, 주취 상태는 30.3%였고,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는 범죄자의 비율은 3.6%였다.

“기준 모호한 상태, 인권침해 가능성 있어”

경찰의 입원요청으로 수반되는 정신질환자들의 인권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개정된 ‘정신보건법’에 따라 경찰관은 정신질환으로 자?타해 위험이 있다고 의심되는 사람을 발견하면 정신과 전문의에게 진단과 보호를 요청할 수 있으며, 이후 행정입원 절차에 따라 정신의료기관에 입원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 법의 이해당사자인 정신질환자들은 “개정안 내용을 검토할 시간도 없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정신장애인단체 ‘카미’ 관계자는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이후인 5월3일에야 법안을 전달받고 검토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강신명 청장은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를 줄이기 위해 범죄의 우려가 있을 경우 ‘행정입원’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며 “이는 위헌적인 인권침해로 범죄 예방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정신질환자들을 단속하고 억지로 입원시키겠다는 사정당국의 태도가 오히려 이들이 치료를 받는 것을 회피하게 만들어 극단적인 사건사고의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는 “경찰의 입원 요청은 현재도 가능한데 정신보건법에 (경찰의 입원 요청을) 명시하면서 공권력이 남용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며 “형제복지원 사건 등 기준이 모호한 상태에서 시설에 입소시키면서 발생한 수많은 인권침해 사례가 있었다. 정신보건법 개정은 인권적 방향으로 가는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현행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라서도 정신 착란을 일으키거나 술에 취해 남의 생명과 신체, 재산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은 의료기관 등에 긴급 구호를 요청하거나 경찰관서에 두고 보호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정신보호법에 이 조항을 넣은 것은 ‘공권력에 의한 강제 입원’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의학계도 이 사건의 원인을 정신질환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5월24일 성명서를 내 “(강남역 살인 사건이) 경찰의 심리면담에서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범죄’로 결론 났지만 아직 피의자의 충분한 정신감정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범죄에 대한 사회의 분노가 모든 조현병 환자들에게 향하게 될까 봐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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