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사태로 보는 협상의 기술 ②] 가격 후려치기엔 ‘결렬’로 대응해야 했다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6.0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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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국제적으로 ‘쉬운 협상 상대’로 유명하다”

⇒ [현대상선 사태로 보는 협상의 기술 ①] 우리 패부터 까고 시작하는 정부

⇒ [현대상선 사태로 보는 협상의 기술 ③] 외국인 변호사 쓰는 이유? 면책 때문이다 

 

현대상선은 현재 진행 중인 용선료 협상과 관련해 “빠른 시일 내 합의에 도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상선은 그동안 해외 선주 22곳과 용선료 인하 협상을 진행해왔다. 이 가운데 용선료의 약70%를 차지하는 5개 외국 선주사들과의 협상이 관건이다. 현대상선은 “대형 선주사들에게는 최종 제안을 제시한 상태로 조속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국제비즈니스분쟁 컨설턴트로 활동 중인 박상기 교수(한양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는 “이미 우리의 목표 인하율이 만천하에, 상대에게도 알려졌다는 점이 문제다”고 지적한다. 

2일 서울 종로구 현대상선 본사에서 정례 회의를 마친 G6 해운동맹 관계자들이 협상장을 나서고 있다.
용선료 인하율이 당초 현대상선 측이 제시한 28%보다 하향조정됐다고 알려졌다.

우리의 목표 인하율은 협상 초기단계부터 공표됐다. 협상 초기부터 ‘목표 인하율 28%’란 말이 언론 등에 노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용선료 인하목표치 얘기는 그 이후로 꾸준히 나왔다. 6월2일 현재까지도 실제 성사된 용선료 인하폭은 20%대 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추측컨대 앞으로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인하폭은 지금 상태를 유지하거나 더 내려갈 것이다.
통상 가격협상의 시작은 브라케팅(Bracketing) 협상기법을 응용한 최초 조건 제안으로 시작된다. 브라케팅이란 판매자(최고가)와 구매자(최저가)가 최초 제시한 조건인데 여기서 1차 협상범위(negotiation zone)가 형성된다. 이때 쌍방이 제시한 조건의 2분의 1, 즉 중간값이 최종협상 합의가가 될 것이란 암묵적 합의를 하게 된다. 현대상선 협상의 경우 용선료로 적은 비용을 내는 게 유리한 우리는 최저가를, 많은 비용을 받는 게 유리한 선주는 최고가를 제시한다. 
맨 처음 가격 제시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브라케팅이 달리 형성된다. 싸게 사야하는 입장에선 첫 제시 가격을 낮게 잡아야 낮은 지점에 브라케팅이 형성되고, 비싸게 팔아야 하는 입장에선 높게 불러야 높은 지점에 브라케팅이 형성된다. 두 번째 협상은 이렇게 형성된 브라케팅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협상 테이블에서의 초기대응은 매우 중요하다.
국제 비즈니스협상 때 대부분의 이해관계 당사자들은 첫 번째 제시 가격을 황당할 정도로 후려친다. 실제 기업이나 제품 가치의 반토막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후려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최초 제안 조건을 마치 더 이상 조정이 불가한 ‘Best & Final’ 조건으로 인식시켜 ‘심리적 못박기(anchoring effect)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번 용선료 협상의 경우 현대상선은 용선료 인하율을 (상대가 터무니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높게 잡아야 하고 선주는 인하율을 안 잡거나 최소한으로 잡아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30% 인하율을 목표로 했다면 초반에 제시 인하율을 80%처럼, 훨씬 높게 부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문제는 이미 우리의 목표 인하율이 만천하에, 그것도 상대에게도 알려졌다는 점이다. 상대방은 우리가 어떻게든 30%에 가깝게 맞출 것이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인하율 폭을 후려치며 시작할 수 있다. 협상 과정에서 마지못해 인하율을 올려준다는 몸짓을 하며 추가 조건을 요구할 수 있는 여건을 우리가 스스로 조성해준 셈이다. 우린 이미 몇 점이나 내주고 게임에 임한 꼴이 됐다.

우리나라의 협상 초기대응전략이 부재하다는 것인가.

초기대응전략의 부재는 우리나라 협상의 고질적 문제다. 협상의 주체로 참여하는 우리나라 고위공직자나 경영진들은 가시적인 성과에만 목을 맨다. 언론은 뭐라도 하나 쓰자는 생각뿐이다. 초기에 우리의 전략과 전술을 최대한 숨겨야 할 판에 시끌벅적하게 협상 전략을 모두 노출시킨다. 문제는 이게 실제 협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다는 거다.
현재 우리는 외국 선주들의 초기 대응 전략에 이미 걸려들었다. ‘거부 전략’이다. 조디악을 포함해 일부 선주들은 초기 대규모 협상에 불참했다. 현대상선 측의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법률적 문제, 기밀보안 문제 등을 들어 거부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 정부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약점을 잘 알고 있다. 바로 ‘성과’다. 그들은 우리가 원하는 ‘성과’를 줄 듯 줄 듯하며 쉽게 내어주지 않으면서 잇속을 다 챙길 것이다. 
용선료 인하율만 봐도 그렇다. 이미 인하율이 20% 초반에 형성될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다. 용선료 계약서에는 제3자에게 용선료를 공개할 수 없다는 조항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대상선과 채권단은 사채권자에게도 구체적인 숫자는 공개 안할 방침이라고 한다. 

우리 정부와 기업 경영진들이 이토록 협상에 취약한 이유는 뭔가.

우리나라 선박회사의 경영진은 협상능력이 전무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지난 10여 년 간 우리나라 해운업․조선업은 호황을 누렸다. 정부기구나 금융기관 협상대응력이 부족해도 큰 문제가 없었다. 협상을 잘 못하더라도 저(低)마진으로 영업을 해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면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 ‘온실 속 화초’로 자란 셈이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초반부터 목표치를 언론에 공개하고 아직 끝나지도 않은 협상을 두고 “잘 되어간다” “분위기가 좋다”고 하는 건 실제 협상에 전혀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는 오로지 성과를 중시하는, 보여주기식 공치사에 불과하다. 
2007년 방한한 미국의 협상 전문가 허브 코헨은 한국의 협상력을 평가해달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지리도 못한다”고 말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한국은 국제적으로 ‘쉬운 협상 상대’로 유명하다. 조금만 치켜세워주고 칭찬해주면 원하는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상대로 통한다. 
때문에 외국의 협상가들 사이에서 한국 측을 상대할 때 가장 효과적인 언어적 전략(verbal strategy)으로서, 추켜세워주는 멘트를 하는 게 정석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다. 

이번 현대상선 용선료 인하 협상에서 우리 측을 칭찬할 만한 점은 없나.

전략적으로 봤을 때 칭찬할 만한 것도 있다. ‘용선료 인하가 불발되면 현대상선은 법정관리에 들어간다. 그렇게 되면 선주들도 무사하지 못 할 것이다. 용선료 인하가 우리의 마지막 제안이다’라며 들어간 것이다. 이는 까다로운 외국 선주들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냈으며 현대상선의 법정관리도 피할 수 있게 하는 ‘한 수’가 됐다. 이번에 현대상선 측 자문 변호사로 고용된 마크 워커 변호사 역시 이 같은 압박전술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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