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러온 ‘반기문’이 박힌 ‘새누리 잠룡들’ 빼다
  •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06 04:01
  • 호수 1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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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발언’ 후 새누리 전통 지지층 반기문으로 이동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5박6일 방한 일정을 마치고 돌아갔다. 하지만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은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대선주자 반기문’은 한국에 남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저기 반기문 효과를 남기고 있다. 총선 참패로 무기력하던 새누리당이 갑자기 활기를 찾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다른 대권주자들이 마치 바둑의 초읽기에 몰린 듯 바빠지기 시작한 것도 반기문 영향이 크다. 

반 총장의 방한과 대권 도전 시사 발언이 대권 경쟁구도에 미친 영향은 결코 간단치 않다. 기본적 지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이 하늘을 찌르지만, 대선의 경우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은 그 자체로 강력한 프레임으로 작동한다. 선두 그룹에 들어가 있는 인물들 위주로 대중의 인식이 강화되는 특성을 보인다. 대중은 ‘바쁘다’. 그래서 모든 주자들에게 관심을 줄 여유가 없다. 대중이 지니고 있는 ‘관심’의 양은 제한적이다. 누군가 갑자기 나타나 대중의 관심을 독점하면 다른 인물들은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 어려움이 커진다. 과감한 행보를 보이고 도발적인 발언을 하더라도 대중의 눈길을 얻는 게 녹록지 않다. 여러 명이 무대에서 군무를 펼칠 때 맨 앞에 있거나 가운데 있는 한두 사람에게 시선이 쏠리기 마련 아닌가. 뒤쪽 구석에서 아무리 발군의 실력을 보이더라도 관객의 눈을 사로잡기는 쉽지 않다.

단순히 대중의 관심을 획득하는 데 제한이 생긴다는 문제뿐만이 아니다. 당장 실질적 손해가 발생한다. 누군가 나타나서 20% 이상의 지지율을 가져가면 다른 후보들이 얻을 수 있는 지지율의 영역은 그만큼 줄어든다. 링 위에 올라오지 않았던 사람이 갑자기 뛰어올라 25%의 지지율을 얻게 되면 다른 후보들은 나머지 75%를 나눠 가져야 한다. 그러니 애초에 얻고 있던 지지율에서 대부분의 후보들이 떨어지게 된다.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것은 새누리당의 후보군이다. 전통적인 새누리당 지지층에서 반 총장에게 가장 적극적인 호감과 지지를 표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 총장 지지층의 구성을 살펴보면, 세대로 보면 50대와 60세 이상 고령층이고 지역으로 보면 대구·경북(TK)과 충청이다. 또 이념성향층에선 보수층에서 다른 후보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기존 새누리당 후보들이 그나마 지지를 얻던 안방이었는데 반 총장이 다른 후보들을 밀어낸 셈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버린 것이다. 여당 성향 후보들의 지지율은 총선 후 전반적으로 낮아졌는데 반 총장의 등장으로 더 추락했다. 두 자릿수를 넘보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지지율은 5% 아래로 떨어졌다.

안철수 등 중도 성향 후보군도 타격 받아

다음으로 타격이 큰 후보군은 중도를 표방하는 그룹이다. 반 총장은 앞서 살펴본 대로 보수층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중도층에서도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다. 기존 정치권에 속해 있던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기성 정치에 반감이 큰 중도층에서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또 이른바 중도층은 정치적 관여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대선주자들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데 반 총장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지지를 쉽게 표출할 수 있다.

그간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중도층에서 가장 소구력(호소력)이 높았다. 단순히 호남뿐 아니라 서울 등 수도권에서도 높은 지지를 얻고 있었던 것은 중도층에서 안 대표에게 마음을 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정당투표에서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을 앞섰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반 총장의 전면적 등장은 안 대표의 지지율 하락으로 나타났다. 반 총장이 빠진 조사에선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와 경합을 벌이지만 반 총장이 포함되면 경쟁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호남에서의 이탈은 적지만 중도층에서 얻던 지지의 일정 부분이 반 총장에게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안 대표뿐만이 아니다. 대선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던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와 김부겸 의원 등 중도적 특성을 지닌 인물들로서도 진입 공간이 갑자기 좁아져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진보성향층에서 주로 지지를 받고 있던 문재인 전 대표의 경우 상대적으로 타격이 적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중도층으로의 확장을 강화해야 하는 문 전 대표로서도 장애물을 만났다고 할 수 있다.

총선이 끝난 후 대권 경쟁구도의 유동성이 매우 큰 상황이었는데 반 총장의 조기 등판으로 인해 유동성이 크게 줄어들었다. 반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의 임기를 연말에 마치고 국내로 들어와 본격적으로 국내 대선행보를 보일 경우 상호 간 공방에 따라 변화 가능성이 커지겠지만 당분간은 별 변화가 없을 수도 있다. 반 총장이 한국에 없으니 경쟁자들로서는 마땅히 흔들 방도도 없다. 본격적 검증 국면에 들어가면 타격을 가할 수도 있지만 당사자가 한국에 없을뿐더러 국내의 주요 이슈에 직접 나서지도 않을 텐데 검증의 칼날을 들이대는 일이 자연스럽지는 않아 보인다.

지표상 가장 앞서 있는 인물이 정작 한국에는 없는 기이한 대선구도가 만들어졌다. 통상적으로 1위 주자와 맞대결 구도를 만들려는 게 일반 후보들의 기본 전략인데 흔들어야 할 대상이 눈앞에 없어 다른 주자들로서는 매우 난감한 상황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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