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군 나눠줄 돈 안 주고 전임자 사업 나 몰라라
  • 이민우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07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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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 ‘채무 제로’ 달성의 이면

나랏빚 615조원. 1인당 국가채무 1212만원. 빚에 허덕이는 대한민국을 보여주는 부끄러운 통계들이다. 1초에 약 158만원씩 나랏빚이 늘고 있다고 하니 ‘부채 공화국’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국가결산 결과에 따르면, 지자체는 약 34조원의 빚을 지고 있다. 갈수록 국고보조사업의 국고보조금은 줄고, 각종 복지사업의 예산을 지자체에 떠넘긴 결과다. 2013년 기준으로 18개 시(市), 68개 군(郡), 39개 자치구 등 125개 시·군·구가 지방세 수입으로 인건비를 충당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 가운데 경상남도가 광역지자체 가운데 최초로 ‘채무 제로’를 선언했다. 경남도는 홍준표 도지사의 지휘 아래 민간 전문가와 함께 재정건전화 대책과 로드맵을 수립한 뒤 빚을 줄여갔다. 덕분에 5월31일 경남도의 채무는 0원이 됐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3년6개월 동안 지속적인 행정개혁과 재정개혁, 예산개혁으로 도 재산 한 평도 팔지 않고 1조3500억원에 이르던 채무를 하루 11억원씩 갚았다”며 소회를 털어놨다. 하지만 부러움과 놀라움의 시선 속에 시큰둥한 반응도 있다. 야권과 시민사회는 물론 경남 소속 기초자치단체들의 반응도 싸늘하다. 어찌 된 일일까.

 

 


“채무로부터 해방된 첫날입니다”
6월1일 경남도의 분위기는 한껏 들떠 있었다. 홍준표 지사를 비롯한 공무원과 시장·군수·도의원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선포식을 열었다. 채무 감축에 기여한 김윤근 경남도의회 의장과 윤한홍 의원 등에게도 감사패가 전달됐다. 선포식 이후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사과나무’ 식수 행사까지 벌였다. 홍 지사는 “국가와 가계, 기업 등 경제 3주체의 부채가 5000조원을 넘어서 ‘부채 공화국’으로 가고 있는 국가 현실이 안타까웠다”며 “미래세대에 빚이 아닌 희망을 물려주기 위해 사과나무를 심었다”고 밝혔다.


2013년 1월 경남도의 채무는 1조3488억원에 달했다. 지역개발기금 차입금 7908억원, 공공자금관리기금 차입금 3080억원, 통합관리기금 차입금 2000억원, 채무부담행위 500억원 등이었다. 하루 이자만 1억원에 달할 정도로 심각했다.
2003년 1158억원이던 채무는 2004년부터 지방도 사업을 위한 지방채 발행이 지속되면서 급격히 증가했다. 리스차량 등록 감소로 인한 세수 감소와 대형 국책사업에 따른 부담 증가도 한몫했다. 2011년 이후에는 통합창원시의 출범과 김해시 인구 50만 초과로 인한 조정교부금이 연간 1000억원 이상 증가해 부담을 가중시켰다. 한국컨설팅산업협회에서는 경남도의 재정 상태를 파산의 전 단계인 ‘재정고통단계’로 분석하기도 했다.


경남도는 이때부터 재정건전화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재정점검단을 꾸리고 민간 전문가와 함께 강도 높은 재정건전화 대책을 시행했다. 무분별한 선심성 사업 폐지(3388억원), 보조사업 재정점검(793억원), 복지누수 차단(588억원), 낭비성 예산 구조조정(624억원) 등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적자에 허덕이던 진주의료원을 폐쇄하고 경남개발공사·마산의료원·경남문화예술진흥원 등 출자·출연기관의 구조조정(615억원)도 단행했다.


아울러 도 재정에 가장 큰 부담을 준 거가대로의 재구조화, 체납·탈루 은닉세원 발굴, 지역개발기금의 효율적 운영, 비효율적인 기금 폐지 등으로 7024억원을 상환했다. 특히 거가대로 재구조화를 통해 실시협약을 최소수입보장방식(MRG)에서 비용보전방식(SCS)으로 변경하면서 1186억원의 채무를 상환했다. 거가대로 운영비용이 줄면서 향후 37년간 5조8617억원의 재정절감 효과까지 예상되고 있다.


홍 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동안 진주의료원 사건 등 구조조정을 하다가 반대파로부터 욕도 많이 먹었지만, 도 재산을 팔지 않고 각 분야 개혁만으로도 빚을 청산할 수 있다는 것을 국민에게 보여줬다”며 “이제 경남은 튼튼한 재정기반 아래 서민복지, 미래 50년 준비사업에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채무 0원 아니다” 엇갈린 평가
하지만 경남 전체가 축제 분위기는 아닌 듯하다. 더불어민주당 경남지방의원협의회는 5월30일 경남도의회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남도가 밝힌 채무 제로는 진정한 채무 제로라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아직 미지급 조정교부금이 남아 있다”며 “경남도는 이번에 2016년 추경 예산을 편성하면서 감사원에 의해 지적된 미지급 조정교부금 3443억원 중 1566억원을 편성했고, 여전히 각 시·군에 지급돼야 할 조정교부금 1877억원이 남아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의당 경남도당도 “18개 시·군 부채와 재정 어려움은 눈감은 채 경남도 부채만 줄인 것은 자랑할 일이 아니라 반성해야 할 일”이라고 비판했다.

 


경남도는 지난해 12월22일 18개 시·군에 조정교부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감사원으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감사원에 따르면, 경남도는 재원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각 시·군에 지급해야 할 조정교부금을 지연 지급했다. 감사원 감사가 진행 중이던 2015년 4월까지 3443억원을 미지급한 상태였다. 김지수 경남도의원에 따르면, 아직까지 각 시·군에 미지급된 교부금만 1877억원에 달한다. 김 의원은 “경남도가 교부금을 미지급해 시·군의 예산 편성과 집행에 악영향을 준 것이라 할 수 있다”며 “미지급 조정교부금 1877억원이 남아 있다는 것은 경남도가 여전히 그 금액만큼의 채무를 안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행정자치부 지방재정통합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경남도의 재정자립도는 2010년 34.2%에서 2014년 36.5%로 2.3%포인트 올랐다. 하지만 경남도의 18개 시·군 재정상황은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갔다. 경남도가 부채를 줄여가는 동안 18곳 시·군의 재정자립도는 평균 2.1% 정도 낮아졌다. 11곳의 재정자립도는 오히려 떨어졌다. 창원시의 재정자립도는 통합 등으로 인해 9.9% 떨어지기도 했다. 일부 기초단체는 자체 재원으로는 공무원 월급도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재정 운영에 허덕이면서 국비나 도비에 더욱 의존하게 됐다는 의미다.


무리한 채무 감축으로 지역 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표적인 것이 마산자유무역지역 구조고도화 사업이다. 이 사업은 1단계 사업까지 진행됐지만 경남도가 분담금을 낼 수 없다고 입장을 바꾸면서 2단계 사업에서 멈춰 있다. 지난해까지 국비 1324억원, 지방비 427억원이 투입된 상태에서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경남지방의원협의회는 “국비 65%, 지방비 35%(도 17.5%, 시 17.5%)의 비율로 예산을 투입해 진행하기로 정부와 협약을 맺은 사업을 경남도가 분담금을 내지 않아 멈춘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두관 전 경남지사의 모자이크 프로젝트 사업을 전면 중단한 것도 반발이 거세다. 김 전 지사는 균형 발전과 지역별 특색에 맞는 발전 방향을 수립하도록 18개 시·군에 200억원씩 나눠줬다. 하지만 홍준표 지사가 취임한 이후 이 사업은 전면 백지화됐다. 경남도는 모자이크 사업 가운데 일부 사업만 별도로 예산을 지원했다.

 

경남도가 6월1일 홍준표 경남지사(왼쪽 아홉 번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채무 제로 선포식’을 열었다.


전문가들 “채무 0원이 무조건 옳은가”
민간단체에 지원되는 노동·환경·장애인 예산 등이 크게 삭감됐다는 부분도 비판의 대상이다. 진주의료원 폐쇄, 무상급식 중단 등이 대표적이다. 경남도는 또 19개 기금 중 중소기업육성기금·환경보전기금·재해구호기금 등 12개(1377억원)를 없앴다. 여영국 도의원은 “(경남도가) 공공의료기관을 폐업하고 양성평등기금 등 각종 사회적 기금을 폐지했다”며 “공공성을 약화시킨 대가로 빚을 갚는다는 것은 자랑할 거리가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빚을 줄이기 위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것이 합리적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경남도는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는 입장이다. 경남도는 “각 시·군에 미지급된 조정교부금은 전임 도지사 시절에 누락된 것으로 홍준표 지사 취임 이후 지연된 교부금은 없다”며 “조정교부금은 채무에 포함되지 않는 데다 내년 1월까지 모두 지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산자유무역지역 구조고도화 사업에 대해서도 “올해 추경을 통해 2단계 사업 예산 30억원을 편성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자이크 사업의 경우 “예산 배분 원칙에도 맞지 않고, 사업 실효성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어 폐기한 사업”이라고 반박했다.


경남도의 채무 제로 달성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지방자치위원장인 손희준 청주대 행정학과 교수는 “광역단체의 채무 제로는 자랑할 일이 아니다”며 “중장기 계획을 세워 일부 빚을 지더라도 사회기반시설(SOC), 청년실업, 사회복지 등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석 좋은예산센터 부소장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는 지자체가 ‘마중물 예산’을 통해 투자 유도를 하면서 경기를 살릴 필요가 있다”며 “경기 침체가 심각한 거제시 등 시·군의 사정도 살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행정자치부는 경남도의 행정적인 채무는 0원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통상적으로 지역개발채권 등 도지사 명의로 발행한 지방채까지 채무로 계산한다는 게 행자부의 설명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경남도의 채무는 여전히 5914억원에 달한다. 이에 대해 경남도는 “지역개발 채권의 경우 5년 거치 일시상환 방식”이라며 “경남도는 발행 금액과 이자 상환금을 포함한 6334억원을 금융기관에 쌓아놓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채무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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