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자에 발목 잡힌 호텔롯데 상장
  • 이석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0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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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 지배구조 개선 청사진 첫 단추부터 제동…롯데그룹 측 “예정대로 상장 진행”

검찰 관계자들이 2일 서울 소공동 롯데면세점 본사를 압수수색한 뒤 압수물품이 든 박스를 들고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롯데家 ‘왕자의 난’이 절정에 달하던 때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해 8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형제간 재산 다툼 과정에서 투명하지 못한 지배구조가 도마에 올랐고, ‘롯데=일본기업’이라는 이미지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당시 신 회장은 “호텔롯데를 상장해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롯데 지배구조의 맨 꼭대기에 있는 호텔롯데 주식을 상장해 논란이 됐던 순환출자 고리를 끊겠다는 취지였다. 

 

5월30일 국내 기관투자자들을 상대로 열린 IR(기업설명회)에는 이례적으로 신 회장이 직접 참석했다. 그는 “(호텔롯데의) 기업공개(IPO)를 통해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개선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관투자자들의 협조를 요청했다.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로 호텔롯데의 상장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검찰은 5월 초 네이처리퍼블릭의 롯데면세점 입점을 도운 혐의로 브로커 한 아무개씨를 체포했다. 검찰은 입점 로비의 배경으로 신영자 롯데복지장학재단 이사장을 지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6월2일 서울 소공동 호텔롯데 면세사업부와 신영자 복지장학재단 이사장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6월 말로 예정됐던 호텔롯데의 상장 역시 연기됐다. 롯데그룹 측은 “상장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얼마 전 금융위원회에 제출했던 증권신고서를 수정해 다시 제출할 계획”며 “처음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담지 못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다소 일정이 지연될 수 있지만 주주가치 제고와 보호 차원에서 하는 것인 만큼 상장 계획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신 이사장은 한때 호텔롯데 면세사업부를 총괄했다. 현재도 호텔롯데의 사내이사로 등재돼 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신 이사장이 입점 로비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날 경우 기업 이미지뿐 아니라, 상장에도 큰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호텔롯데를 시작으로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를 개편하겠다던 신동빈 회장의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동안 잠잠했던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특히 면세점사업부는 현재 호텔롯데 기업가치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호텔롯데가 최근 상장을 앞두고 평가한 면세점사업부의 기업가치는 12조478억원이다. 호텔롯데 전체 기업가치(12조9231억원)의 93%에 이른다. 때문에 롯데뿐 아니라, 면세점 업계 역시 검찰 수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검찰 수사는 올해 말로 예정된 서울 시내면세점 추가 사업자 선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월드타워점은 지난해 매출 6112억원을 기록했다. 2014년보다 26.79%나 매출이 늘어났다. 오는 12월 잠실 롯데월츠타워가 완공되면 연매출 1조원 이상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지난해 시내면세점 신규 선정 과정에서 롯데는 특허권을 박탈당했다. 정부는 최근 두 세 곳의 특허권을 추가로 내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 배경에 롯데가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정 이사장이 비리에 연루돼 비난 여론이 확산될 경우 시내면세점 선정에도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면세점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면세점 사업자 추가 선정을 두고 특혜 논란이 일고 있다”며 “입점 로비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롯데에게 추가 사업권을 내주기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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