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MIT·MIT 사람에게 유해”해외 임상 결과 확인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6.06.08 14:5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단독]공기로 CMIT·MIT 접촉해도 피부염·천식 등 일으킨다는 해외 논문 자료 입수

가습기 살균제 성분(CMIT·MIT)이 사람에게 유해하다는 해외 연구 결과가 확인됐다. 특히 그 성분은 직접 접촉이 아닌 공기를 통해서도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는 사실이 세계 의학지에 여러 건 보고됐다. 세계 여러 의학자는 이 성분에 대한 안전성을 재평가하고 성분의 사용을 전면 금지할 것을 제안했다. 현재까지 쥐 실험 결과로 안전성을 주장했던 우리 정부 및 제조사(SK케미칼)의 입장과 정면으로 상반되는 내용이어서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2012년 영국의 세계적인 의학지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BMJ)’에 ‘CMIT·MIT는 공기를 통해 접촉해도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가 게재됐다. 덴마크의 국립 알레르기 연구센터 등이 연구한 결과다. 이 결과를 근거로 연구진은 ‘기존 위험성 평가를 재평가하고, 안전한 농도 규정을 마련하거나 모든 제품에서 이 성분의 사용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분 안전 평가에 대해 당국 즉각 개입해야’

시사저널이 입수한 이 연구 문헌에 따르면, CMIT·MIT의 공기 접촉으로 피부에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난 사례가 여러 국가에서 증가하고 있다. 덴마크에서만 이 성분으로 인한 습진 등 알레르기 반응이 2009년 1.4%에서 2011년 3.1%로 높아졌다. 또 이들 환자의 4분의 3은 호흡기 질환인 천식을 동반하기도 했다. 주로 물티슈 등 화장용품과 페인트에 노출된 사람들이었다. 연구진은 시중에서 수거한 페인트 17종 모두에서 CMIT·MIT 성분이 검출됐고, 그 페인트를 칠한 유리접시에서 문제의 성분이 공기 중으로 최소 26일 동안 방출됐다고 밝혔다. 공기로 방출된 성분에 노출된 사람들은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 입원까지 필요하며, 평소 건강한 사람에게도 이런 반응이 나타난다고 연구진은 경고했다. 

 

이 연구진은 2013년 또 다른 의학 학술지 ‘Contact Dermatitis’에 흡입 독성의 연구 결과도 발표했다. CMIT·MIT를 흡입하면 알레르기 반응과 함께 천식도 유발될 수 있다는 결론이다. 32세 남성은 피부염과 습진이 생겼는데, 검사 결과 그 원인이 CMIT·MIT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몇 개월 전 사용한 변기 세척제 때문이었다. 변기 세척제에서 이 성분이 검출됐고, 세척제를 없앤 이후 모든 증상이 사라졌다. 연구진은 ‘특별히 이 성분에 심하게 노출되지 않아도, 변기 세척제에 하루 10~15분 정도만 노출돼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 성분에 대한 안전 평가에 대해 당국이 즉각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0년 같은 의학 학술지에 젤·핸드크림·손세정제·샴푸 등에 들어 있는 CMIT·MIT에 노출된 후 증상이 뒤늦게 나타날 수 있다는 스페인의 한 대학병원(Hospital General Universitario)의 연구 결과도 나온 바 있다.

 

2014년에는 같은 의학 학술지에 구체적인 사례까지 보고됐다. 영국 루이샴 병원(University Hospital Lewisham) 연구팀은 ‘CMIT·MIT 성분의 공기 접촉은 심각한 안면 피부염과 호흡 곤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논문을 게재했다. 이 임상 결과에 따르면, 52세 여성은 심각한 안면 피부염과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이 여성이 과거에 천식이나 호흡기 질환으로 치료를 받은 기록은 없었다. 이 여성은 자신의 방에 페인트칠을 한 후 뺨에 가려운 발진이 생기더니 얼굴 전체와 눈꺼풀, 가슴 윗부분, 오른손으로 번졌다. 항염증제를 5일 투여한 후 증상이 호전됐지만 투약을 중단하자 3일 만에 발진이 재발했다. 게다가 환자는 급성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응급처치가 필요했다고 이 논문에 기록돼 있다. 연구팀은 ‘CMIT·MIT에 공기로 접촉한 후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호흡곤란도 생긴다’며 즉각 해당 성분의 위험성을 평가하고 관리할 것을 제안했다. 한 대학병원 호흡기내과 전문의는 “신뢰 수준이 높은 학술지의 과학적이고 근거 있는 추정 논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정부의 쥐 실험 문제 있다” 지적

이처럼 세계 의학계에는 실험용 쥐가 아닌 사람에게서 살균 성분에 의한 이상 증상이 계속 보고되고 있다. CMIT·MIT는 공기 중에 방출되면서 사람의 피부나 호흡기에 영향을 주며, 증상이 당장 나타나지 않아도 다음에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 연구 논문을 살펴본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질병관리본부나 살균제 성분 제조사인 SK케미칼은 쥐 실험 결과를 앞세워 CMIT·MIT가 사람에게 해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처럼 외국에서 나온 임상 결과는 사람에게 이상 증상이 나타난 실제 사례”라며 “CMIT·MIT가 공기를 통해 사람의 피부와 호흡기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 입증된 연구 결과들이어서 코로 흡입하는 국내 가습기 살균제 사태 해결에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SK케미칼은 “정부의 쥐 실험에서 CMIT·MIT는 폐질환과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온 만큼 그 피해자들의 증상이 반드시 CMIT·MIT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질병관리본부의 쥐 실험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질병관리본부가 밝혔듯이 쥐 실험은 유럽연합(EU)의 소비자안전과학위원회 2009년 자료를 참고했다. 이에 따라 PHMG(옥시의 가습기 살균제품에 사용된 살균 성분)를 실험할 때는 쥐에게 농축액·원액·희석액을 각각 3개월씩 노출시켰다. 그러나 CMIT·MIT에 대한 실험은 희석액으로만 진행됐으므로 적은 농도만 사용한 실험만으로 독성이 있다, 없다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독성실험이 아니라 무독성 실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덕환 교수는 “해당 조건, 그러니까 희석된 성분에 노출된 쥐에서 독성 작용이 확인되지 않은 것일 뿐인데, 이 결과로 CMIT·MIT가 사람에게 해를 주지 않는다고 해석하면 곤란하다”면서 “2011년 당시 쥐 실험을 진행했던 연구원도 CMIT·MIT에 대한 실험이 갑작스럽게 잡혀 서둘렀다고 언론을 통해 말한 바 있다”며 당시 쥐 실험에 대해 신뢰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정부의 쥐 실험에서는 살균 성분이 폐섬유증과 관계가 있는지만 확인했고, 기타 폐 질환이나 다른 장기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은 검사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CMIT·MIT는 폐섬유증과 관련이 적은 것으로 기록됐다. 임종한 인하대병원 산업의학과 교수는 언론을 통해 “쥐를 살균 성분에 3개월 노출시켰는데, 이것으로 독성이 생기지 않는다고 판정하기에는 충분한 기간이 아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살균제 유해성 알고 있었을 가능성 높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대부분은 SK케미칼이 만든 PHMG와 CMIT·MIT 성분에 노출됐던 사람들이다. PHMG는 중간 도매상을 통해 옥시에 제공돼 가습기 살균제품에 사용됐다. SK케미칼은 PHMG를 중간 도매상에 판매할 때 유해성을 알렸고, 옥시가 그 성분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지는 몰랐다고 주장해 검찰 수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CMIT·MIT는 SK케미칼이 자체적으로 만든 가습기 살균제품에 사용됐다. 질병관리본부는 2011년 쥐 실험을 통해 이 성분이 폐섬유증을 일으키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SK케미칼은 이들 성분의 유해성을 몰랐을까. 살균제 성분의 유해성에 대해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는 정황이 몇 군데서 나타나고 있다. SK케미칼(당시 유공)은 1990~93년 자체적으로 가습기 살균제품(가습기메이트)을 개발해 1994년 출시했다. 4년 후인 1998년 미국 환경보호청과 EU는 CMIT·MIT를 유해물질로 지정했다. 이때라도 SK케미칼은 가습기 살균제 성분에 대해 경각심을 가졌어야 했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2001년 애경산업과 판매계약을 맺고 판매량을 늘렸다.

 

SK케미칼이 PHMG를 수출하기 위해 2003년 호주와 2004년 태국에 각각 보낸 문건이 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이 문건에는 피부 접촉, 눈 접촉, 흡입으로 사람 몸에 살균 성분이 들어갈 수 있음이 기록돼 있다. ‘자극이 발생했다면 신선한 공기가 있는 곳으로 옮겨 회복될 때까지 관찰할 것. 자극이 고통스럽거나 30분 이상 지속되면 의료진의 자문을 구할 것’이라고 표기돼 있다. 이 경고 문구는 국내 자료에는 없다.

 

호주 정부는 자료를 검토한 후 살균 성분의 유해성을 국민에게 알렸다. 일본 후생노동성도 2005년 SK케미칼로부터 자료를 받아 PHMG를 신규 화학물질로 지정하고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때라도 호주나 일본과 동일한 조치가 국내에서 이뤄졌다면 피해 규모가 크게 줄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송기호 변호사는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태의 진실과 책임 소재를 검찰 조사로 밝히지 않은 채 옥시에 대한 수사로만 끝낸다면 피해자들은 이중 삼중의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넓은 범위에서의 조사를 주문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