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보지 못하는 정부, 바로 발밑의 대책만 본다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6.09 17:3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근시안대책

“자, 문제 드릴게요~ 가까운 것은 보는데 멀리 있는 건 보지 못하는 것은?”

“정답, 정책!”

 

6월5일 KBS 2TV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퀴즈프로그램 형식의 코너에서 정치인 분장을 한 개그맨이 사회자가 내는 질문에 답했다. 정답은 ‘근시’였다. 정치인이 외친 ‘정책’은 오답이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던 많은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사회자가 당황하는 사이 답을 외친 개그맨은 이렇게 덧붙였다. “이러다가 고등어 구울 때 미세먼지 나온다고 고등어한테도 세금 내라고 할 판이야~” 정부의 근시안적인 ‘클린디젤 정책 폐기’에 대한 비판이었다.

 

일단 문제가 일어나면 정부는 바쁘다. 6월3일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관계부처 장관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에서는 ‘범정부 미세먼지 대책’을 확정해 발표했다. 대기질 개선에 대한 여론이 커지자 미세먼지 발생의 주범으로 경유차와 화석연료 소각 등을 서둘러 지목했고 그에 대한 대책을 내놓았다. 여기에는 미세먼지 발생 주요원인으로 지목되는 중국발 먼지 대책은 아예 포함되지 않았다. 미세먼지와 같은 환경문제의 해결은 주변국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정부가 발표한 주변국 환경협력의 경우 현재 추진하고 있는 정책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변죽만 울리고 실질적인 대기질 개선 효과는 미미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과)는 정부 대책이 발표된 뒤 한 언론에 “미세먼지 발생원에 대한 환경부의 조사와 분석이 부족한 것은 분명하다”며 “환경부는 대책 마련에 앞서 발생원을 정확히 파악하는 노력을 먼저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미세먼지만큼 우리 사회를 흔든 건 ‘묻지마 살인’이었다. 정부는 강남역 살인 사건으로 여론이 들끓자 5월23일 ‘묻지마 범죄’에 사전 대처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내용은 이랬다. 범죄가 우려되는 정신질환자를 발견할 시 공공기관이 치료를 목적으로 격리 보호해 주는 ‘행정 입원’ 조치를 활성화하겠다는 것. 여성 혐오 범죄 논란이 확산되자 6월1일 ‘여성대상 강력범죄 및 동기 없는 범죄 종합대책’도 발표했다. 여기에는 CCTV를 확충 및 안전 사각지대 해소, 중증 정신질환자 조기 발굴 체계 마련, 정신질환자 응급입원 조치, 행정입원 요청, 보호수용제도 도입 추진 등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들어갔다. 5월17일 서울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정신질환자에 의해 살해당하고, 5월29일 수락산 등산로에서 60대 여성이 정신질환자에 의해 살해당한 뒤 모두 마련된 것이다.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김락우 대표는 “정부와 경찰의 대책은 마치 모든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다”며 “정신질환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식의 근시안적인 대책이 아니라 이들을 사회구성원으로 자연스럽게 끌어안을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통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남 신안군에서 발생한 ‘여교사 성폭행’ 사건에 대한 정부의 해결책 역시 비슷한 지탄을 받고 있다. 교육부는 6월7일 도서벽지 교사 관사 안전관리 실태를 점검하고 관사에 CCTV와 안전벨을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히면서 여성 교원이 단독으로 거주하는 관사에 우선적으로 CCTV를 설치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교육부의 대책이 나오자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했다. “강남 살인 사건 이후 정부가 내놓은 대책과 무엇이 다른가.” 발밑만 보는 근시안적 대책이라고 입을 모아 지적했다. 정예원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CCTV 설치나 여교사 발령 자제 등은 강남역 사건 이후 화장실을 남녀 분리하고 CCTV를 설치한다는 대책과 같은 맥락”이라며 “정부는 범행이 발생한 특정 장소를 매번 문제 원인으로 삼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처럼 최근 발생한 각종 사건․사고․재난․그 밖의 사회적 이슈들을 다루는 정부의 모습을 본 뒤 매번 도돌이표처럼 같은 지적이 되풀이 되는 일이 돌고 돈다. 특정 이슈에 대해 여론이 끓어오르면 뒤늦게 사태 수습에 나서고, 그렇게 발표되는 대책들은 실효성이 떨어지거나 핵심을 비켜가는 땜질 처방식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부)는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이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보여주기식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