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평도 아닌 25평이 11억원이라고?
  • 노경은 시사비즈 기자 (rke@sisabiz.com)
  • 승인 2016.06.10 15:25
  • 호수 1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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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 포기한 동네’가 ‘개도 포르쉐를 타고 다니는 곳’으로 변신한 개포 재건축 단지의 치솟는 분양가

 

강남 재건축 1번지 개포동은 한때 ‘개도 포기한 동네’로 불렸다. 대중교통 형편이 좋지 않고 노후 정도가 심한 탓이었다. 지금은 이곳이 ‘개도 포르쉐를 타는 동네’로 불린다. 주택 공급이 포화상태라는 분석에도 불구하고 개포동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른 채 치솟고 있다. 지난 1년 완만하게 오르다 올봄 들어 급등하고 있다. 지금은 59㎡(25평) 아파트가 10억원을 훌쩍 넘어도 청약경쟁률이 80대 1에 육박한다. 청약에서 떨어져도 매수 의사를 밝힌 채 대기하고 있는 이도 여럿이다.

 

개포동 주공아파트 저층단지는 서울 남부권역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1970~80년대 서울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정부와 서울시가 주거난을 해결하기 위해 서울 곳곳에 택지조성 프로젝트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주거단지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연탄을 때고 살던 곳이라 단지 내에서 아궁이와 우물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주로 나이 든 노인들이 살고 있는데, 소유주 가운데 실거주 비율은 30%도 채 되지 않는다. 보통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0만~50만원가량 내고 사는 영세민들이다. 강남·서초·송파 등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아들·며느리 증여 목적으로, 또는 투자 목적으로 사 둔 경우가 상당수라고 인근 부동산중개업자는 말한다. 때문에 재건축되고 나면 거주민의 수준이 확 달라질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서울 개포주공 재건축 첫 번째 분양단지인 ‘래미안 블레스티지’의 견본주택에 수많은 방문객들이 몰려들었다.

 

2개월 새 수천만 원씩 웃돈이 붙기도

 

개포시영, 개포주공1~4단지 총 5개 단지는 2021년까지 1만4000세대의 미니 신도시급 초고층 아파트로 탈바꿈한다. 삼성물산·현대건설·GS건설·현대산업개발 등 국내 대형 건설사가 개포 재건축 단지 시공을 맡는다. 건설사들은 일렬로 늘어서게 될 초고층 단지들 가운데 랜드마크를 만들기 위해 자존심 대결을 펼친다. 경쟁에 불을 지핀 건 지난 3월 분양 스타트를 끊은 삼성물산 래미안 블레스티지다. 임홍상 당시 분양소장은 “개포지구는 건설사들의 각축장이 될 것”이라며 “삼성물산이 개포동 랜드마크를 만들기 위해 최고급 마감재를 쓰는 등 주거 품격을 높였다”고 소개했다.

 

개포주공2단지를 재건축한 삼성물산 래미안 블레스티지는 호텔신라와 제휴를 맺고 단지 내 카페테리아에서 호텔 조식 서비스를 누리는 호화판 아파트로 변화한다. 타워팰리스 등 일부 주상복합에서 이를 도입한 적은 있지만, 일반 아파트로는 처음이다. 수영장·골프연습장도 갖춘다. 이 아파트의 분양가는 소형 평형의 경우 3.3㎡당 4285만원이다. 전용 59㎡(25평) 아파트가 10억4900만원이나 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양 8일 만에 78대 1 경쟁률로 완판됐다. 2개월 새 수천만 원씩 웃돈이 붙었다.

 

 

재건축이 이뤄지는 서울 개포주공4단지.

 

현대건설은 다음 달 개포지구에서 두 번째로 일반분양에 나선다. 현대건설이 주공3단지를 재건축하는 THE H 아너힐즈 분양가에 업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자사 고급 아파트 브랜드인 ‘THE H’를 발표하고 첫 적용하는 단지다. 회사 측은 해당 브랜드를 3.3㎡당 3500만원이 넘는 강남 지역 고급 주거단지에만 적용한다고 밝혔다. 현대건설은 현대미술관을 콘셉트로 삼아 단지 내 커뮤니티를 고급화한다는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곳 소형 평형 분양가가 삼성물산보다 조금 더 비싼 3.3㎡당 4500만원 선에서 책정돼 전용 59㎡(25평) 기준 11억원이 넘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분양을 앞둔 나머지 단지들은 이미 분양한 단지에 비해 좋은 입지와 시공사를 앞세워 홍보한다.

 

“고급화 따른 고분양가 형성 당분간 지속” 

 

건설사들이 브랜드 고급화를 추구하면서 강남권 아파트 분양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25평형 분양가가 11억원을 넘는 것은 비상식적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판단한다. 재건축 분양가가 시세에 비해 높게 책정되자 일부 매수 희망자는 구가옥을 매입하고 있다. 준공 시기는 다소 늦더라도 2억원가량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래미안 블레스티지를 분양하던 지난 3월 사업 속도가 느린 옆 단지 아파트 값이 1개월 새 1억원 이상 뛰기도 했다. 

 

GS건설이 시공 예정인 주공4단지는 사업시행인가를 획득하고 관리처분인가 및 이주를 앞두고 있다. 가을께 관리처분인가를 받고 나면 내년 상반기에 철거하고 2020년 말 새 아파트로 입주하는 일정이다. 이미 분양한 삼성물산 래미안 블레스티지나 7월에 분양하는 THE H 아너힐즈가 구가옥을 철거한 데 반해, 이곳은 여전히 노후한 아파트 그대로다. 36㎡(11평형)를 매입하면 조합원으로서의 자격을 갖게 되고, 여기에 약 1억원에 달하는 추가분담금만 지불하면 59㎡(25평) 면적 새 아파트를 소유할 수 있다.

서울시부동산정보광장 실거래가에 따르면, 주공4단지의 경우 구가옥 36㎡(11평형)가 3월1일 기준 6억8000만원에 거래됐다. 그런데 삼성물산 래미안 블레스티지 분양가가 발표되고 난 뒤인 3월26일 8억2000만원에 거래됐다. 고작 방 2칸 11평 아파트 값이 1개월 만에 1억4000만원이나 오른 셈이다. 여기에 추가분담금 1억원을 더해도 9억원 초반대로 분양가 11억원 집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이유로 매수인은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건설업계 프리미엄 전략에 따른 분양가 상승과 강남권 아파트 값의 급등세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 팀장은 “지난 2년 사이 강남권 분양가가 지나치게 올랐다”며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 등도 결국 다 분양가를 올리기 위한 방안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그는 “단기적으로 고점을 찍었으나 특별히 하락 요인이 없어 고급화에 따른 고분양가 형성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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