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面獸心(인면수심)’ 성폭행범들 사전에 범죄 공모했나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6.06.13 11:19
  • 호수 1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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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교사 집단 성폭행’ 사건 당일 행적을 통해 본 공모 가능성

 

전남 신안군의 한 섬에서 발생한 여교사 성폭행 사건이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스릴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끔찍한 범죄가 현실에서 버젓이 자행됐기 때문이다. 범행을 저지른 파렴치한들이 자녀를 둔 학부모라는 사실이 충격을 더한다. 분노를 넘어 공포가 밀려들 정도다.

 

전남 목포경찰서는 6월10일 박아무개(49)·이아무개(34)·김아무개씨(38) 등 피의자 3명을 기소 의견으로 광주지검 목포지청에 송치했다. 경찰은 당초 이들을 유사강간과 준강간 혐의로 구속했지만 피해 정도와 주거 침입, 범행 공모 정황 등을 토대로 형량이 더 무거운 강간치상 혐의를 적용했다. 강간치상의 경우 최고 무기징역 처벌을 내릴 수 있다.

 

 

6월10일, 3명의 피의자가 검찰 송치를 위해 호송차에 오르기 전 경찰서를 나오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주말이면 관사 텅 빈다는 사실 알아

 

수사가 진행되면서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는 범죄 행태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의 피의자들이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여교사의 부푼 꿈을 어떻게 짓밟았는지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피의자들은 주장하고 있지만 정황을 놓고 볼 때 사전에 공모했을 가능성이 크다.

 

범행 공모 여부는 죄질과 형량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향후 검찰에서도 이 부분에 수사의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사건 당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들의 행적을 되짚어 보면 피의자들 주장대로 우발적인 범죄인지 아니면 사전에 범죄를 공모했는지 여부를 짐작해볼 수 있다.  

 

피해여성 A 교사는 지난 3월 신안군의 한 초등학교에 부임한 새내기 교사다. 자신의 꿈을 펼칠 첫 부임지라 기대가 컸을 것이다. 하지만 섬 생활은 고달플 수밖에 없다. 특히 현지 주민들과 불편한 관계가 되면 학교 업무에도 지장을 줄 수 있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을 것이다.

 

성폭행범들은 이러한 A 교사의 처지를 악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 사람은 평소 친분이 두터웠다. 박씨와 이씨는 서로 ‘삼촌’ ‘조카’라고 부를 만큼 막역한 사이고 김씨도 평소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누군가 평소 A 교사를 노리고 범행 기회를 엿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그날 술자리를 갖게 된 과정부터 상식적이지 않다. 범죄 현장인 관사는 학교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 평일에는 A 교사를 비롯해 교장과 남자교사 등 4명이 사용했다. 하지만 주말에는 모두 가족을 만나러 육지로 나가기 때문에 관사는 텅 빈다. 사건이 발생한 5월21일 토요일에도 관사에는 아무도 없었다. 전날인 5월20일 금요일 모두 섬을 빠져나갔다.

 

A 교사도 여느 때처럼 금요일 수업을 마친 후 육지로 나갔다가 토요일 오후 목포에서 마지막 배를 타고 섬으로 돌아왔다. 5월22일 일요일 동료교사 등과 홍도 여행을 약속했는데 표를 구하지 못해 예정보다 일찍 복귀했다고 한다. A 교사는 관사에 들어가기 전에 저녁을 먹으러 선착장 인근에 있는 박씨의 식당을 찾았다.

 

박씨는 다른 일행들과 야외 테이블에서 술자리를 갖고 있었다. 그는 다른 교사들이 육지로 나가 관사가 비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A 교사 혼자 섬으로 돌아왔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박씨는 식사를 하러 온 A 교사에게 접근해 술을 권했다. 평소 술을 즐겨 하지 않던 A 교사가 거절하자 선원들을 시켜 술을 권하기도 했다. 뒤늦게 합류한 이씨도 A 교사에게 술을 권했다. 주말이라 관사에 아무도 없고 A 교사 혼자 섬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이 처음부터 범행의도를 갖고 술을 먹인 게 아닌지 의심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시나리오 짜놓은 듯 연이어 범행 저질러

 

계속 뿌리칠 수 없었던 A 교사는 한두 잔씩 술을 받아 마셨다. 박씨는 알코올 도수가 높은 인삼주까지 가지고 나왔다. 인삼주를 10잔 넘게 마신 A 교사는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취했고 식당에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술자리는 1시간 정도 더 이어졌다. 밤 11시쯤이 돼서야 박씨는 A 교사를 자신의 승용차에 태워 관사로 데려갔다.

 

박씨는 정신을 잃은 A 교사를 등에 업고 관사 안으로 들어가 방에 눕힌 후 본색을 드러냈다. 만취해 잠든 A 교사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고 만행은 20여 분에 걸쳐 진행됐다. 박씨는 경찰에서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만졌다”고 주장했지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워 보인다. 박씨가 관사를 나간 후 이번에는 이씨가 A 교사의 휴대전화를 들고 나타났다. 박씨의 차가 동네 어귀를 벗어나자 관사로 들어가 쓰러져 있던 A 교사를 성폭행한 것이다.

 

이씨는 경찰에서 “A 교사가 휴대전화를 식당에 놓고 간 것을 가져다준 것이다”고 했지만 이 또한 곧이곧대로 들리지는 않는다. 술자리에 동석했던 그가 휴대전화를 발견해 A 교사에게 가져다주려고 관사를 찾아갔더니 마침 박씨가 관사를 떠난 직후였다는 것을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씨가 경찰에서 “관사를 찾지 못해 박씨의 차량이 관사를 빠져나오는 것을 보고 들어갔다”고 증언한 부분도 쉽게 납득이 안 된다. 섬 마을 주민이 식당에서 2km 남짓한 관사로 가는 길을 몰랐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

 

또 다른 성폭행범 김씨가 식당으로 돌아가는 박씨에게 전화를 건 시각도 절묘하기는 마찬가지다. 박씨는 전화통화에서 “이씨가 무슨 큰일을 저지르는 것 같으니 관사에 좀 가봐라”고 김씨에게 말했다고 한다. 관사로 간 김씨는 A 교사를 보호하기는커녕 자신도 성폭행을 자행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관사를 나왔던 이씨가 재차 들어가 A 교사를 또 성폭행했다. 이러한 세 사람의 만행이 마치 시나리오를 짜놓은 듯 차례차례 진행된 것이다.

 

이들의 대담하고 치밀한 범행을 보면 여죄가 의심되기도 한다. 실제 김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지난 2007년 대전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성폭행 사건의 범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의 DNA가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용의자의 DNA와 일치한다는 분석 결과가 나온 것이다. 성범죄는 다른 범죄에 비해 재범 가능성이 크다. 2012년부터 2015년 7월까지 3년 반 동안 성범죄자 중 5400여 명이 다시 성범죄를 저질렀다.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더욱 철저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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