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자르는 구조조정은 합리적 대안 될 수 없다”
  • 하장청·이준영 시사비즈 기자 (jcha@sisabiz.com)
  • 승인 2016.06.14 16:05
  • 호수 1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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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없는 정부의 기업구조조정 대책…인력감축보다 재정 투입이 관건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차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한 뒤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 등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정부가 6월8일 발표한 기업 구조조정 방안에 대해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대책은 조선사 자구계획에 치우쳐 있다. 산업은행(산은)·수출입은행(수은) 등 국책은행의 형식적인 구조조정 계획에 대한 실망감도 엿보인다.

 

정부는 이날 ‘산업·기업 구조조정 추진체계 개편방향’을 발표했다. 이는 구조조정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를 잠재우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조선·해운 등 경기민감 업종을 신속히 구조조정해 경제체질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구조조정을 서둘러 금융시장 불안을 불식하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정부는 한국은행(한은)과 재정·통화정책의 조합을 통한 국책은행 자본 확충과 시장안정화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이날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구조조정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이해관계자들이 고통스럽겠지만, 우리 경제가 재도약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며 “규모를 줄이기보다 일자리와 성장 활로를 기반으로 하는 구조조정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수출과 경제성장을 이끌어왔던 주력산업의 경쟁력은 약화되고 있다. 수주 물량 급감으로 조선·해운업 부실 규모는 나날이 눈덩이처럼 커져만 가고 있다. 정부가 혈세를 투입하며 부실경영을 방조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국책은행도 위기를 키웠다는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추가 부실을 막기 위한 구조조정, 체계적 사업재편 등 산업개혁이 절실한 상황이다.

 

“인수·합병이 가장 효율적인데, 빠져 있어”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이른바 ‘조선사 빅3’는 10조3000억원 규모 자구계획을 확정했다. 정부와 한은은 조선과 해운 등 한계산업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해 11조원 규모의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를 조성하고, 1조원의 현물출자를 포함해 총 12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현대중공업은 하이투자증권 등 3개 금융사를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대우조선해양은 14개 자회사를 단계적으로 매각하거나 청산하기로 했다. 삼성중공업은 거제호텔·산청연구소 등 비핵심 자산 매각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조선·해운업 위기는 공급과잉과 방만경영으로 인해 야기됐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기업 간, 사업별 통폐합 등 몸집 줄이기가 대안으로 부각됐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업 구조 개선에서 인수·합병(M&A)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이번 대책에서는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대우조선해양의 방위사업 부문을 떼어내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에 통합시키는 사업별 통폐합 논의도 있어왔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정부 대책은 조선사 자구계획안에 초점을 맞추는 등 원론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가 쏟아진다. 업계 관계자는 “사업별 통폐합 없는 조선사 자구계획안에 대한 실효성 논란만 가중될 것”이라며 “강제성 없는 자구안 이행 여부도 불투명하다”고 꼬집었다.

 

조선 3사의 도덕적 해이도 도마 위에 올라 있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2014년 상반기 각각 1조2926억원과 100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반면 대우조선해양은 같은 기간 1833억원 영업이익을 냈다고 공시했다. 대우조선해양은 해양플랜트 부문 손실 충당금을 선반영해 어닝쇼크를 피했다고 설명했다. 대우조선해양의 회계 감사를 맡고 있는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은 지난 3월,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의 영업손실 5조5000억원 가운데 2조원은 2013~14년 회계연도 장부에 반영해야 했다고 뒤늦게 밝혔다. 대우조선해양 사태 이면에는 방만경영, 대주주인 산은의 관리소홀, 회계법인 부실감사 등이 자리하고 있다. 또 수조원대 분식회계를 통해 총 10조원대의 사기대출을 받은 정황이 포착돼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대우조선해양의 ‘병렬 해상크레인을 이용한 원타임 세팅 공법’ 작업 현장

 

국책은행의 쇄신안, 크게 미흡하다는 비판

 

부실을 방조한 산은과 수은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정부는 국책은행에 대해 오는 9월 말까지 정책금융 효율성 및 구조조정 전문성 제고를 위해 인력·조직 등을 포함한 전면적이고 근본적인 쇄신안 마련을 주문했다. 이에 산은과 수은은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서며 인력·조직 쇄신, 성과주의 확대, 자산매각 등을 추진키로 했다. 주요 내용은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 임원 연봉 5% 삭감, 인력·조직 쇄신을 통한 슬림화 경영 추진, 자산매각·예산절감 등 비용축소 등이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국책은행의 쇄신안이 크게 미흡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구조조정 대책에 따라 형식적인 수준에서 참여하겠다는 의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부 구조조정안이 유명무실해질 것이란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김성진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부소장(변호사)은 “산업의 건전한 역량 존속을 위해서는 채무조정을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부소장은 “원칙적으로 구조조정은 이해관계를 고려해서 진행해야 한다. 채권자 중심 구조조정은 추가 자금을 지원하며 손실을 줄이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국가경제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조선·해운사 추가 지원 방안에 대한 사각지대도 존재한다. 정병천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부위원장은 “협력사 직원에 대한 지원대책은 빠졌다”고 날을 세웠다. 정 부위원장은 “정부는 조선 협력사를 특별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협력사 대표에 대한 지원이다. 직원들에게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협력사 직원 대부분이 단기 계약직으로 4대 보험조차 가입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결국 해고되더라도 서류상 근거가 없어 정부 보호를 받지 못한다. 정부가 이런 면을 살펴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놨어야 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김성진 부소장은 “노동자들은 경영에 책임이 없음에도 부실경영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고용 안정을 도모하고 회사 역량을 키우며 살려야 한다. 사람을 자르는 식의 구조조정은 합리적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역설했다. 그는 “조선업이 존속하려면 핵심이 인력이다. 인력이 기술이고, 기술이 곧 생산성으로 직결된다. 실업자가 넘쳐나는 구조조정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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