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Insight] 인민은 ‘금연’ 김정은은 ‘줄담배’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16 11:08
  • 호수 1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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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관영매체 “흡연은 몰상식” 대대적 금연 캠페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6월4일 만경대 소년단 야영소를 시찰했다고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지난 3월15일 이후 처음으로 담배를 들고 있다.

 

5월20일부터 북한 관영 조선중앙TV에 금연 캠페인 영상이 등장했다. 세련된 모습의 젊은 여성 10여 명을 동원한 이 코너에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아주 건전치 못하고 주위에 불쾌감을 주는 몰상식한 사람”이라고 비판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또 다른 여성은 “요만한 담배, 요거 하나 제대로 못 끊는단 말이냐”며 금연하지 못하는 남성들의 ‘의지박약’을 힐난한다. “여자 말을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로 듣는다”는 하소연까지 등장한 이 영상물은 포스터나 계도 형태의 과거 캠페인과 달리 감성에 호소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붙여진 제목은 ‘생명을 위협하는 특등기호품’이었다.


하지만 이런 대대적 캠페인에도 아랑곳 않는 ‘간 큰 남자’가 있다. 바로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다. 집권 5년 차인 김정은의 담배 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조선중앙TV나 노동신문을 통해 김정은이 줄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지속적으로 공개됐다. 김 위원장은 군부대나 공장·기업소 방문 때는 물론이고 병원이나 육아원 같은 절대 금연구역에서까지 담배를 문 모습을 드러내 외부 세계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임신한 아내 리설주 옆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새로 제작한 전동차를 방문했을 때는 좌석에 크리스털 재떨이까지 놓아두고 흡연을 즐기기도 했다. 북한 매체들은 외부의 곱지 않은 시각에 “우리 최고존엄(김정은 지칭)을 헐뜯고 있다”며 엄호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김정은은 과거 스위스 조기유학 시절인 10대 나이에 담배를 배운 것으로 그의 어린 시절을 지켜본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는 전하고 있다. 대북 정보 관계자는 “북한이 김정은 집권 이후 스위스에서 담배제조 관련 설비를 지속적으로 수입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5월 말 스위스가 대북 독자제재 차원에서 사치품목 25개를 지정했는데 여기에 담배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된다.


北 남성 흡연율 55% 세계 최고 수준


북한의 담배 사랑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한때 성인 남성 흡연율이 54.7%(세계 평균 48%)로 나타나기도 했다. 6월 초 공개된 세계보건기구(WHO) ‘2015 세계흡연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말 52.4%이던 북한 남성 흡연율은 2014년 말 43.9%로 8.4%포인트 줄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높을 것이란 진단도 나온다. 북한이 “여성 흡연자는 없다”는 내용을 포함한 비현실적 자료를 제출하는 등 흡연율을 의도적으로 낮추려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다. 


북한은 경제수준에 비해 담배의 종류가 매우 다양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정은은 북한산 ‘7.27’(북한이 ‘전승절’로 주장하는 휴전협정체결일) 담배를 즐기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실제로는 외국산 담배를 피울 것이란 견해도 있다. 김정은이 줄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TV 등을 통해 주민들에게 지속적으로 공개하는 걸 두고 부족한 카리스마를 의식한 때문이란 해석도 나온다. 의도적 연출을 통해 나이 많은 고위 간부들을 장악하고 있다는 걸 과시하려 한다는 얘기다. 또한 높은 흡연율과 그에 따른 다양한 담배 종류는 억압적 북한체제 속에서 흡연을 낙으로 삼고 있는 주민들의 삶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대적인 금연캠페인과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끽연 행보는 절대권력을 거머쥔 최고지도자가 움직이는 체제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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