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면 임우재 인터뷰를 보도했을까요?”
  • 김회권․김경민․박준용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06.16 18: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침묵과 보도 사이...언론사 데스크급 6인에게 물어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혼소송 중인 임우재 삼성전기 고문의 인터뷰 기사가 관심을 끌고 있다. 2014년 10월부터 시작된 소송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6월15일 조선일보는 임 고문과의 인터뷰를 실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임 고문은 “내가 삼성물산 전산실에 입사했다는 이야기는 삼성에 의해 꾸며진 것이며 이건희 회장 경호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고 바로 잡았다. 그는 소송을 진행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내가 여러 차례 술을 과다하게 마시고 아내를 때렸기 때문에 아내가 이혼을 결심했다는 주장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가 문제가 된 것은 당시 자리에 동석했던 혜문스님의 글 때문이다. 혜문스님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저는 임우재 씨, 월간조선 기자를 비롯해 7명이 함께 만나는 자리를 가졌다”면서 “임씨가 돈이나 바라는 몹쓸 남편으로 비춰지는데 대해 기자들에게 조언을 구하려고 내가 제안해 만들어진 자리”라고 설명했다. 주목할 대목은 따로 있었다. 혜문스님은 “가벼운 식사 자리였고 기자들과는 절대 기사화하지 않기로 한 만남이었다”고 설명하며 “참석자(기자)들은 다 같이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동의했다”고 밝혔다. 비보도를 약속해놓고 파기한 이 기사를 어떻게 봐야하는지 갑론을박이 오고갔다.

비보도 파기에 대한 논란은 과거에도 적지 않게 있었다. 2004년 6월11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가진 언론사 경제부장단 간담회에서 발언했던 “신행정수도 국민투표 하지 않겠다”는 발언이 보도돼 논란을 낳았다. 당시 청와대는 허심탄회한 대화를 위해 포괄적으로 비보도를 요청해놓은 상황이었다. 

2007년 2월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비보도를 조건으로 “한나라당이 집권 가능성이 99%가 됐다”라고 발언했다가 한 매체가 이를 기사화했고 문제가 됐다. 

현 정부에서도 논란은 있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일 당시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의전용 의자에 앉아 라면을 먹는 사진이 논란거리가 되자 비보도를 전제로 “계란을 넣어 먹은 것도 아니고 끓여 먹은 것도 아니다. 쭈그려 앉아서 먹은 건데…”라고 말했다. 이 발언을 두고 참사에 어울리지 않은 발언이라고 일부 언론에서 보도하자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해당 매체 기자들에게 출입정지 징계를 내렸다.

보통 정치의 영역에서 자주 벌어지는 비보도 파기가 이번에는 재벌가의 이혼 소송의 사이에 비집고 들어온 셈이다. 비보도 약속을 깨고 임 고문의 이야기를 기사화한 조선일보의 판단이 옳았는지 여부는 좀 더 따져봐야 한다. 임 고문과 이부진 사장을 공인으로 봐야하는지, 그들의 이혼 소송이 알권리에 해당하는 사건인지, 조선일보의 기사가 공익적 목적이 있는 것인지 등등을.

‘신뢰’와 ‘알권리’를 사이에 놓고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 그래서 언론사 데스크들에게 급히 물어봤다. 당신이라면 후배가 가져온 임우재 고문의 발언을 기사화 시켰을까.

 

 

 

 

경제일간지 A 차장

기자가 정보보고를 했다면 자기가 쓴다는 뜻 아닌가. 비보도를 전제로 만나는데 썼는데 그게 개인적인 문제였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건 신뢰의 문제다. 내 경우는 그런 경우가 온다면 쓰라고 하지 않을 거다. 사람이 다치는 문제다. 기사를 쓰게되면 취재원이 다치는 게 분명하고 동시에 보도를 안 하겠다는 약속도 어긴 게 되니까.


 

인터넷 매체 B 부장 

“기사를 쓴 것 자체가 나쁘다기 보다는 인간적인 약속을 깨고 보도할만한 사안이냐를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삼성가(家) 이야기지만 가정사다. 만약 내가 해당기자라면 데스크에 보고도 안 했을 것 같다. 아마 기자 입장에서는 욕심나는 아이템이었을 것이고 데스크 입장에서도 기사 욕심이 당연히 들었을 거다. 그래서 기사가 나간게 아닌가 싶다.”

 


 

주간지 C 편집장

 

비록 가정사지만 임우재 고문과 이부진 사장의 이혼 소송은 유명 인사니까 그들이 감수해야할 부분일 수는 있다. 유명 인사는 부와 특권을 누리는 게 많다. 그 대가로 그 정도는 감수를 해야 한다. 분쟁의 당사자가 나 이런 거 있다고 말하고 그 자리가 오프를 명확하게 명시해서 끊은 게 아니라면 보도 가치는 있다. 
직접 현장에 있었던 것은 아니니 분위기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오프를 명백하게 걸었는지 따져봐야 한다. 비보도를 전제로 말하는 거였다면 그것은 지키는 게 바람직하다. 만약 우리 기자가 그걸 가지고 왔다면 오프를 먼저 확실하게 걸었느냐 안 걸었느냐를 먼저 따져보고 판단을 할 거다. 오프를 상대가 명확하게 걸었고 그걸 깬 거라면 잘못된 거다.

 

 


 

월간지 D 전 편집장 

기자 입장에서 보면 임우재 고문과 약속을 어기고 기사를 썼다고 굉장히 잘못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일단 대부분의 기업인이나 정치인들은 기자를 만날 경우 그들은 기자 앞에서 한 말은 뭐든 기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만난다. 비공식 만남이라 해도 그런 암묵적 합의가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깊은 신뢰관계가 있다면 장기적인 관계 지속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기사화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삼성가의 일이라 기사가치가 워낙 크니 그런 선택(약속을 깨고 보도하는)을 한 게 아닌가 싶다. 자리에 함께 있었던 다른 기자들은 신뢰관계를 더 무겁게 본 거다. 뭐가 좋다 나쁘다 할 수는 없다. 만약 나라면? 나라도 쓰라고 했을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그건 편집장의 판단에 따르는 거니까.

 


 

경제일간지 E 부장

 썼다고 해서 뭐라고 할 건 아닌 것 같다. 공익성 판단 부분에서 의견이 갈리는데, 데스크라는 입장에서는 쓰는 것도 안 쓰는 것도 뭐라 할 수 없다. 특히 해당 기자가 쓴다고 했다면 더욱 그렇다. 다만 기자로서 개인적인 생각은 그렇다. 임우재 고문이 이혼하고 가정사를 이야기하 는 것이 공적인 영역은 아니지 않나. 그냥 가십 폭로하는 것 같고 그래서 이번 건은 조금 부정적이다. 인터뷰 내용에 다른 무언가가 포함됐다면 몰라도 지금까지 공개된 걸 봤을 때는 가정사니까 말이다.

 


 

종합일간지 F 부장

특종과 신뢰가 상충하는 문제는 기자 생활을 하다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부딪힐 수 있는 문제다. 그때 판단을 잘 해야 한다. 이건 1차적으로 데스크의 잘못이다. 후배한테 잘못 한 거다. 후배 기자가 비보도라고 말하고 정보보고를 했는데 데스크가 기사 지시를 내렸다면 자기 욕심 때문인 거다. 만약 후배 기자가 자신이 기사를 쓰겠다고 해도 꼼꼼히 검토해서 아니다 싶으면 스톱시키는 게 데스크의 역할이다. 비보도를 어긴 그 기자에게 앞으로 어떤 취재원이 얘기를 하겠나. 길게 봤을 때 앞으로 기자 생활에 좋지 않은 기사가 될 수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