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우 기자의 If] ①주택을 국가에서 사고판다면...?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06.20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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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에 앞서>

사회는 끊임없이 변합니다. 그만큼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도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바뀐다는 의미입니다. ‘무상의료, 무상복지’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빨갱이’라고 비난했습니다. 2004년 민주노동당이 그 말을 총선 구호로 내세우자 13%의 정당지지율을 획득했습니다. 그리고 8년 후 2012년 대선에선 보수정당조차 비슷한 복지 정책들을 내놨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조차 중증질환 건강보험을 확대하고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보편적 복지를 내세웠습니다.

 

이 글은 ‘대한민국은 과연 살 만한 나라입니까?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라는 화두에서 시작합니다. 현재의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나아갈지를 함께 고민하고 모색해보기 위한 ‘발제’와도 같습니다. 만약에 이렇게 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의 영역입니다. 현재 사회 각 분야의 문제를 하나씩 짚어보면서 어떤 방식의 대안이 있을지, 또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지 하나씩 따져볼 예정입니다.


물론 지금 당장 실현 불가능한 얘기들이 많을 듯합니다. 기자의 막연한 상상력을 기초로 쓰다 보니 당연히 《시사저널》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혹시 모르잖아요. 짧게는 10년, 길게는 100년 뒤에 현실이 될지요. 정치는 상상력이니까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수적인 요소는 의식주(衣食住)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현대에 들어 흔히 옷을 못 입거나 굶어 죽은 사람은 줄었으니 의(衣)와 식(食)은 상대적으로 문제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바로 사는 곳입니다. 주거 문제는 한국 사회의 핵심 난제 중 하나입니다. 

 


지난 5월 서울의 인구가 1000만명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집을 구하기 힘들다는 게 주된 이유였습니다. 형편에 맞는 집을 찾다보니 장시간 출·퇴근을 해야 하고, 결혼을 미루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의 시한폭탄이라는 빚 문제도 ‘집을 사기 위한 대출(주택담보대출)’이 가장 많으니 파생되는 문제 또한 심각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2014년 주택보급률은 103.5%에 달합니다.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가구 수에 비해 주택이 얼마나 보급됐는지 알려주는 지표입니다. 100%를 넘어갔다면 주택이 여유롭다는 의미입니다. 국토교통부 통계(2014년 기준)에 따르면, 전국의 주택수는 1943만호, 가구수는 1877만호입니다. 전국에 빈 집이 65만호에 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늘 집 때문에 힘들어 합니다. 왜 이런 불균형이 나타날까요. 대안은 없는 걸까요.

투기의 함정에 빠진 대한민국

흔히 부동산 버블이라고 합니다. 부풀어도 너무 부푼 게 집값입니다. 지난 4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109㎡)는 일주일 사이 1억원 이상 오르기도 했습니다.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 때문입니다. 비단 강남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 때 아파트 한 채만 사놓으면 보통 직장인 연봉보다 돈을 더 많이 벌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너도 나도 은행 빚을 얻어서라도 집을 사놓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한 쪽에선 살 집이 없어서 고생하는데, 다른 쪽에선 돈을 벌기 위해 집을 여러 채 사놓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른바 경제의 외부 불경제 효과가 발생한 셈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주택소유자 가운데 13.6%는 2채 이상의 집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통계청의 개인별 주택소유통계에 따르면, 2014년 11월을 기준으로 주택을 2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는 172만1000명에 달했습니다. 3건 이상 보유자도 30만5000명으로, 전체의 2.4%를 차지했습니다. 직장과 집이 멀어 집을 2채 써야 하는 사람을 제외해도 지나친 수치입니다.


투기 수요 탓에 한국과 같은 작은 나라에서 부동산 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습니다. 전국의 아파트 시가총액이 지난해 말 2000조원을 넘어섰습니다. 주식 시가총액(약 1300조원)보다도 훨씬 많습니다. 새 아파트를 짓기도 했지만 기존 아파트의 가격 상승도 계속됐습니다. 기존 아파트 값은 노무현 정부 때 15.2%, 이명박 정부 때 6.8% 상승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올해 1월까지 3년간 8.2% 올라 상승세를 이어갔습니다.
 


‘딜레마’에 빠진 정부…집값 떨어뜨릴 수 없는 이유

물론 버블(거품)은 꺼지기 마련입니다. 주택 상승에 대한 기대치가 사라지면 곧바로 곤두박질칠 것입니다. 실제로 최근 주택 수요가 급감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거품이 꺼질 것이란 전망도 많습니다. 그런데 주택 값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조금씩 변화는 있지만 사실상 ‘보합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정부의 정책 때문입니다. 부동산 가격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을 때마다 재건축 기준을 완화해 거래를 늘리려고 했습니다. 대출 규제인 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까지 완화시켜가면서 쉽게 빚을 얻도록 했습니다. 취득세 인하 등의 정책도 내놨습니다.


그 이유는 경제 공황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실제로 집값이 폭락하게 되면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때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키워드는 주택담보대출입니다.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을 얻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점입니다. 집값이 폭락하면 집을 팔아도 은행 대출을 못 갚는 깡통 주택이 속출하면서 ‘하우스푸어’를 양산하게 됩니다. 이들이 은행 대출을 제대로 못 갚을 경우 은행들이 부실해지게 됩니다.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한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주택을 사는(buy) 곳이 아니라 사는(live) 곳으로


주택 문제의 핵심은 투기 심리입니다.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주택을 사는(buy) 곳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란 인식부터 퍼져야 합니다. 물론 최근엔 이런 인식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버블이 너무 심각해지다보니 자연스레 투기 심리가 수그러든 셈입니다.
한 발 더 나아가면 주거의 공(公)개념을 말할 수 있습니다. 생활 목적의 주택 소유만 인정하고 자산 증식 목적의 소유는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목적이든 주택 소유를 국가에서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시장 경제의 논리에 어긋납니다. 하지만 정책적으로 유도할 수는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주택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들을 지속적으로 추진했습니다. 정부에서 분양가 원가를 공개하도록 하거나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한 것은 지나친 자산 증식 목적의 소유를 제한하는 목적이었습니다. 다주택자 양도세를 중과(重課)하는 정책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하지만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의 경우 부동산 가격 하락을 부채질할 수 있어서 쉽게 도입할 수는 없습니다.

나라에서 집을 사고파는 ‘주택환매제’

그렇다면 나라에서 주택을 사고파는 것은 어떨까요. 분양가 그대로 사고팔도록 하는 것입니다. 주택을 건설한 뒤 사람들한테 적절한 분양가에 판매합니다. 그리고 주택을 구입한 사람은 나중에 팔 때 분양가 그대로 나라에 다시 팔아야 합니다. 집값이 오르지도 않지만 떨어질 걱정도 안할 수 있는 셈입니다.


물론 예산 문제도 걱정해야 합니다. 집 한 채에 수억원씩 하는 상황에서 국가 재정 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부담해야 할 돈은 집을 되파는 기간 동안 들어간 돈의 이자비용입니다. 5억원짜리 집을 1개월 보유한 뒤 다른 사람에게 되팔게 되면 현재의 기준금리(1.25%)를 기준으로 52만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미분양 물량이 넘치면서 건설사의 도산 위기가 커지자 대한주택보증이 미분양 물량을 환매조건을 내걸어 매입한 적도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이 같은 정책이 도입된 적도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환매조건부분양’이란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덕분에 싱가포르 국민의 80% 이상이 공공주택에 살게 됐습니다. 중국에서도 집값 폭등에 따른 사회적 문제가 심각해지자 북경(北京)시는 서민용 주택에 대해 취득세 가격으로 시에 다시 매도하도록 의무화하는 ‘주택환매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비슷한 정책이 나오긴 했습니다. 미분양 물량이 쏟아지자 건설사 차원에서 환매를 보장하는 형태입니다. 일단 살아보고 마음에 들면 분양을 받으라거나, 건설사에 되팔 수 있도록 보장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주거 공개념 차원의 접근이라기보다는 미분양 해소에 초점을 맞춰져 있으니 약간 다른 접근방식입니다.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유권’에 대한 인식입니다. 집은 삶의 보금자리일까요, 아니면 부(富)를 축적할 자산일까요. 정부 정책의 방향은 결국 사회 구성원들의 선택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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