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사무총장의 나라, 난민법의 나라라더니 겉과 속이 다르군요”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06.20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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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 갇힌 시리아 난민 A씨의 증언 재구성

 

2015년 11월18일 오후 자신이 시리아에서 한국에 도착한 난민이라고 밝힌 가족이 인천국제공항 내 입국심사장 근처에 앉아 있다.

시리아 난민 A씨의 하루는 퀴퀴한 악취와 함께 시작된다. 그도 그럴 것이 A씨가 2015년 12월부터 거주한 이곳 인천국제공항 외국인 송환 대기실은 좁디좁다. 30여명이 써야 할 470㎡ 넓이의 방에는 최소 100명에서 최대 160명의 난민들이 북적거린다. 100명이 넘는 사람이 뿜어내는 체취에 이 많은 사람이 오늘보다 허기질지 모르는 내일을 위해 남겨둔 음식물 냄새는 방안 공기를 더욱 탁하게 만든다. 

A씨는 주거공간인 송환 대기실에서 햇빛을 받아본 적도, 바깥공기를 쐬어 본 적도 없다. 창이 없는 대기실은 24시간 불이 켜져 있다. 그래서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 알 수가 없다. A씨는 눈을 뜨는 순간이 그저 아침이겠거니 생각한다.

대기실에는 벼룩이 들끓는다. 몸을 ‘벅벅’ 긁으며 허리를 세운 A씨의 시선은 곧장 샤워실로 향한다. 시계를 보니 아직 새벽이다. 그런데도 샤워실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은 도통 줄어들 줄 모른다. 100명이 넘는 수용 인원이 함께 쓰는 샤워실은 단 한 칸이다. 이곳에서 난민들은 샤워와 빨래를 모두 해결해야 한다. A씨는 최대한 자주 씻으려고 노력하지만, 샤워실 앞의 ‘기다림’에 지칠 대로 지쳐 있다. A씨와 함께 생활하는 몇몇은 위생문제로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는 중이다.

A씨는 식사시간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에게 식사는 ‘생존’을 위해서만 필요하다. 약 반 년 동안이나 A씨의 식사는 ‘예측 가능’했다. 아침․점심․저녁으로 치킨버거와 콜라가 배급됐다. 무슬림인 A씨가 먹을 수 있는 ‘할랄푸드(이슬람 율법에 따라 무슬림이 먹고 쓸 수 있도록 허용된 제품)’가 아니었기에 고통은 더했다.

그는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돼 있다. 송환대기실로 오면서 휴대폰도 압수됐다. 방안에 인터넷을 할 수 있는 도구는 아무 것도 없다. 와이파이(wifi)도 되지 않는다. 송환대기실에서 밖으로 나가는 길은 항공사 직원과 출입국 사무소 직원이 차단했다. 때때로 이들에게 A씨는 의미는 모르지만 거친 말을 들었다. A씨는 그것이 욕설인 것만은 분명히 느꼈다. 

A씨가 한국에 온 건 2015년 11월이었다. 그는 ‘난민 인정’이 아니라 ‘난민 신청자’가 되기까지 긴 기다림과 마주해야 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그는 난민 신청 대상자인지 평가하는 면접 조사를 받았는데 허술하게 이뤄졌다. 출입국사무소 인터뷰 담당자는 “빨리해라” “요약해서 해라”고 했다. 통역을 맡은 사람은 사무소 직원이 아니라 학생이었고, 그마저도 아랍어에 서툴렀다. A씨는 면접조사에 무슨 내용이 적혔는지 제대로 확인도 하지 못했다. 

한국 정부는 그를 ‘난민신청자’가 아닌 ‘출국대상자’로 분류했다. 터키와 러시아, 중국 등을 거쳐 온 A씨가 “비교적 안전한 국가에서 왔다”는 이유를 들었다. A씨는 생활환경이 좀 더 나은 난민심사 대기실이 아니라 송환대기실에 사실상 ‘구금’됐다. 

다행히 A씨의 사연을 듣고 최근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이가 있었다. 2016년 초부터 한국의 공익 변호사․인권단체와 연락이 됐다. 이들이 도와주면서 A씨가 비로소 ‘난민 심사’를 받을 길이 열렸다. 인천지법 행정2부는 6월17일 A씨를 포함한 시리아 남성 19명 각각이 인천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장을 상대로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모두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A씨처럼 변호인단의 도움을 받아 소송을 제기한 이들은 법의 구제를 받아 ‘난민 심사 대기실’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A씨가 ‘난민’으로 최종 인정받기 위해서는 심사를 거쳐야한다. 2015년을 기준으로 한국 정부의 판단으로 순수하게 난민으로 인정을 받은 비율은 전체 신청 건수에서 0.7%에 불과했다. 

A씨는 한국이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고 2013년 ‘아시아 최초 난민법 제정’을 자부하던 나라란 걸 알았다. A씨가 수많은 나라 중에서 한국에 난민 신청을 한 이유기도 했다. 하지만 A씨가 직접 보고 느낀 한국은 겉과 속이 달랐다. 

“한국은 당신 같은 XX의 나라가 아니니 본국으로 돌아가라.” 최근 항공사 직원에게 들은 욕설은 ‘난민’을 보는 한국정부의 시선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A씨의 사례는 난민지원네트워크와 대한변호사협회과 주최한 ‘한국의 공항, 그 경계에 갇힌 난민들’에서 발표한 실태조사 보고서를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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