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저 오해영 ’의 삶, 女心을 저격하다
  •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22 14:37
  • 호수 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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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또 오해영》에 미치도록 공감하는 여성들, 평범한 게 한이 되는 ‘루저 정서’ 자극

 

 

 

《또 오해영》은 고교 시절 잘난 친구와 비교당하며 억눌려 살았던 여주인공의 이야기다. 여주인공 오해영(서현진)

‘신(新)드라마 왕국’으로 불리는 tvN이 마침내 ‘월화드라마’에서도 터졌다. 그동안 tvN에선 《응답하라 1988》 《미생》 《시그널》 등이 신드롬을 일으켰고, 《오 나의 귀신님》도 상당한 호응을 얻었지만, 모두 ‘금토드라마’였다. 월화드라마는 tvN의 숙원 부문으로 남아 있었다. 올 초 《치즈인더트랩》이 화제를 모으면서 tvN 월화드라마 부흥에 시동을 거는 듯했지만, 그 후속작인 《피리부는 사나이》가 1%대 시청률에 그치며 상승세가 꺾였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또 오해영》이 월화에서 터졌다.

 

여주인공이 서현진이란 점이 의외였다. 서현진은 그동안 악역이나 주인공 친구 정도의 위상으로 ‘로코 여주’(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여주인공)급은 아니었다. 남자주인공인 에릭도 과거 지상파 드라마 주연급으로 활동하긴 했었지만 최근엔 존재감이 하락한 상태였다. 이 둘과 함께 4각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전혜빈과 이재윤도 그렇게 핫한 배우들은 아니었다. 이들의 신작이 케이블에서 시작된다고 하니 기대치가 높지 않았음은 당연했다. 그렇게 낮은 기대 속에 출범한 드라마였는데 시작하자마자 터졌다. 초반 시청률은 2% 정도 수준이었지만, 인터넷에서 감지되는 화제성이 심상치 않았다. 지상파에서도 나타나기 힘든 화제성이었다. 시청률도 차근차근 상승해 12회에서 마침내 평균 9.3%(케이블플랫폼 가입 가구 기준), 순간 최고 10%를 돌파했다. 시청률 수치로도 지상파급 반열에 오른 것이다. 특히 20~40대 여성 시청자층 사이에서 뜨거운 관심이 나타난다.

 

《또 오해영》의 성공은 tvN 성장사에 한 이정표가 되고 있다. 금토드라마뿐만 아니라 월화드라마에서도 지상파에 대적할 수 있는 방송사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조연을 전전하던 서현진도 ‘인생역전’급 대박을 맞았다. 차세대 로코퀸이라고까지 불리며 차기 행보에 관심이 집중된다. 관심에서 멀어져가던 에릭도 여심을 달구는 핫스타로 거듭났다. 서현진의 연적으로 출연하는 전혜빈에게도 CF 출연 제의가 쏟아진다고 한다. 대중문화계 지형을 바꿀 정도의 폭발력이다.

 

 

 

‘그냥 오해영’과 ‘예쁜 오해영’의 비교되는 삶

 

《또 오해영》은 고교 시절 잘난 친구와 비교당하며 억눌려 살았던 여주인공의 이야기다. 여주인공 오해영(서현진)이 다녔던 학교에 같은 이름의 오해영(전혜빈)이 또 있었는데, 예쁘고 똑똑하고 붙임성도 좋아서 남학생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에 반해 주인공 오해영은 평범한 얼굴, 평범한 재능에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거나 자신을 어필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학교에서 여주인공은 ‘그냥 오해영’, 또 다른 오해영은 ‘예쁜 오해영’이라고 불렸다. 

 

여주인공 오해영은 그렇게 평범하게 자라나 평범한 직장에서 평범한 30대 대리가 되었다. 직장에서 특별히 튀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무시당하는 것도 아닌 그저 그런 사원이다. 자신의 성과를 어필하지 못해 동기들 다 하는 승진에서 누락되고 상사에게 무시당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잘릴 정도는 또 아닌, 그저 그렇고 그런 인생. 이 평범한 여주인공 인생에 엄청난 사건이 찾아온다. 결혼식 전날 차인 것이다. 기록적인 ‘쪽팔림’ 속에 오해영은 집에서 나와 쪽방에 사는 신세가 된다. 그 쪽방 옆집엔 영화음향사 대표인 박도경(에릭)이 살고 있었고, 둘은 사랑을 키워가게 된다. 박도경도 결혼 직전에 차인 상처를 가진 인물이었는데, 그를 찬 신부가 바로 예쁜 오해영이었다. 이 기묘한 인연으로 넷 사이에 예측불허의 이야기가 전개된 것이 현재까지의 드라마 내용이다.

 

 

오해영(서현진)이 다녔던 학교의 같은 이름 오해영(전혜빈)


 

여성 시청자들을 감정 이입시킨 것은 바로 여주인공의 평범함이었다. 학창 시절 잘난 동급생들에게 치여 별다른 주목도 받지 못하면서 컸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승승장구하는 동기생들에 치여 사는 인생. 오해영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삶을 집약적으로 형상화한 캐릭터다. 요즘 같은 승자독식, 양극화 시대에 사람들에게 가장 스트레스가 되는 것은 바로 상대적 박탈감, 열패감 같은 비교로부터 비롯되는 감정들이다. 이 작품은 그 비교의 상황을 같은 이름의 두 인물이라는 설정으로 극대화한다. 학창 시절 그렇게 비교됐던 두 오해영은 나중에 회사에서 또다시 만나게 되는데, 예쁜 오해영은 팀장이고 그냥 오해영은 대리다. 그냥 오해영은 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평생 잘난 오해영에게 치이는 것이다. 그렇게 치여 사는 게 이 시대 대다수 사람들의 삶이다. 평범한 게 한이 되는 삶. 《또 오해영》은 그런 삶을 작심하고 형상화했고, 그 ‘루저 정서’에 시청자들이 마치 자기 일처럼 빠져든 것이다. 

 

그 루저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서현진은 한껏 망가진다. 남주인공인 박도경을 처음 만나는 장면부터 산발에 코피를 줄줄 흘리는 모습이었다. 자신을 예쁘게 꾸밀 줄도 모르고, ‘밀당’도 할 줄 모른다. 박도경이 부르기만 하면 달려가는 ‘쉬운 여자’이고, “나 생각해서 일찍 일찍 좀 다녀주라. 사랑은 바라지도 않는다. 나 심심하다”면서 솔직하게 매달리는 여자다. 이런 설정의 드라마는 많았지만 《또 오해영》이 가장 적나라하게 루저 여심을 표현했고, 서현진이 가장 생생하게 그것을 연기했다. 그 결과, 여성 시청자들이 ‘나 생각해서 예고편 좀 해주라. 스포는 바라지도 않는다. 나 심심하다 진짜’라며 《또 오해영》을 갈구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쪽방 옆집 남자인 영화음향사 대표 박도경(에릭)


 

일상생활 안전조차 담보되지 못하는 여성의 삶 투영

 

여주인공이 평범해서 한이 맺힌 루저 여심의 표상이라면 남주인공은 그런 루저의 삶에 기적처럼 비친 햇살 같은 존재다. 《또 오해영》엔 그동안 질리도록 봐왔던 ‘왕자님’이 등장하는데, 그간의 왕자님과 다른 것은 재벌 2세가 아니란 점이다. 돈으로 여자를 신분상승 시켜주는 게 아니라, 여자를 불안으로부터 지켜주는 존재라는 게 특이하다. 쪽방에 혼자 사는 오해영은 음식을 시켜 먹을 때도 혹시 성범죄를 당할까 봐 전전긍긍하는데, 박도경이 그럴 때마다 나서서 지켜준다. 기본적인 일상생활에서의 안전조차 담보되지 못하는 여성의 삶이 로맨틱 코미디에 투영되는 것이다. 이제 여성들은 신분상승은 바라지도 못하고 그저 안전하게 숨 쉴 수만 있다면 감지덕지한 신세가 돼가는 것일까? 《또 오해영》엔 그런 시대의 불안이 담겼다. 불안으로부터 여성을 지켜주는 역할로 ‘당첨’된 에릭은 제3의 전성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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