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돈 풀어라”고 강제하는 정부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06.24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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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조기집행 평가 반영하기로...공공 부채 증가 우려 커져


 

정부가 올해 상반기 공기업의 ‘돈 풀기’를 사실상 강제하는 규정을 마련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기업의 부채증가와 재정낭비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2016년 5월 중순께 공기업․준정부기관에 ‘재정 조기집행 이행실적’을 2016년 경영평가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또 각 공공기관에 이와 관련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기재부는 새로운 기준의 평가 대상으로 주요 에너지․건설․물류 공기업과 준 정부기관 33곳을 선정했다. 한국석유공사․한국도로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인천국제공항공사 등 주요 공기업 대다수가 ‘재정집행 관리 대상 기관’에 포함됐다.

기재부의 방침에 따라 ‘재정집행 관리 대상 기관’은 올해 상반기에 얼마나 재정 집행을 하느냐가 경영평가에 반영된다. 기재부가 마련한 기준에 의하면 이 항목에서 좋은 점수(가중치)를 받기 위해서 공기업은 상반기에 연간 재정의 약 70% 가량을 집행해야 한다. 

기재부는 이에 대해 “정부는 성장률 제고와 경기 대응을 위해서 재정 조기집행을 추진하고 있으나, 공공기관의 입장에서 조기집행에 대한 유인이 부족한 상황”이라면서 “공공기관의 재정 조기집행에 대한 공감대 확산과 추진동력 확보를 위해 정부권장정책 평가항목 신설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재부의 이런 방침에 대해 현 정부가 공기업에 부채를 떠넘긴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기재부는 이와 같은 경영평가 기준을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에 한시적으로 도입한 적이 있다. 당시 이 조치는 ‘공기업 부채 폭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상반기에 재정을 조기집행하며 하반기에 쓸 예산이 부족해진 공기업들이 빚을 내어 이를 충당했기 때문이다. 2009년 12개 부채 상위 공공기관의 부채 총액은 412조3418억원으로 2008년의 206조7550억원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게다가 공기업의 재정조기 집행 강행은 이자수입을 줄인다는 비판도 나온다. 연간 예산을 빨리 써버리면 이 예산을 보유하고 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자수익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지방자치단체의 사례에서 재정 조기집행의 이자수입 감소 문제가 지적된 바 있다.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자체가 재정 조기집행을 시행한 이후 6년간(2008년~2014년) 이자수입이 약 8500억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재부의 이 같은 방침이 공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조장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주요 공기업 예산 부서 관계자는 “기재부가 재정 조기집행을 경영평가 지침에 넣으면서 상반기에 재정 집행이 가능한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기재부가 ‘무슨 사업이든지 상관없이 상반기에 돈만 풀면 된다’고 나오니 공기업 경영진 입장에서는 경영평가를 잘 받기 위해 예정에 없거나 굳이 필요 없는 새로운 사업을 기획해 재정 집행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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