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도 눈물도 없는 SNS 폭력자들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24 11:10
  • 호수 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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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카톡방 집단 따돌림…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 마녀사냥 나서기도

 

요즘 카카오톡 단체방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의 집단 따돌림, 성적(性的) 놀림 등이 심각한 상황이다. 심지어는 성적 놀림과 집단 따돌림을 당한 학생이 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최근 고려대 남학생들이 단체 카톡방에서 여학생들을 성적 놀림의 대상으로 삼아온 것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내용만으로도 상당히 심각하다. 가해자들은 지난해 교양수업 2과목을 함께 수강한 남학생 8명이다. 이들은 단체 카톡방에서 동기 여학생과 선후배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상습적으로 모욕했다. 음담패설은 일상적인 대화였다. 이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성폭행을 암시하는 내용까지 서슴없이 주고받았다. 이런 사실은 카톡방에 있던 한 남학생이 A4 용지 700매 분량으로 대화내용을 정리해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들의 대화에서 ‘지성인’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 학생이 “진짜 새따(새내기 따먹기)를 해야 한다”고 말하자, 다른 학생이 “형이면 한 달이면 된다”고 맞장구쳤다. 그러자 또 다른 학생은 “○○○은 먹혔잖아” “씹던 껌 성애자 단물 다 빠진 게 좋노” 등과 같은 대화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고 갔다. 사태가 일파만파 번지자 고려대는 ‘카카오톡 대화방 언어성폭력 사건피해자 대책위원회’까지 꾸렸다. 

 

이런 움직임에 부담을 느꼈던지 가해 학생들은 고려대 정경대 후문 게시판에 사과문 형식의 대자보를 게시했다. “저희는 언어 성폭력에 관련된 혐의를 모두 인정한다”며 “형사처벌을 포함한 징계 역시 달게 받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저희는 그러한 언행을 행하며 그 문제성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를 희화화시켰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피해 여학생들을 거론하며 “다시 한 번 카카오톡 언어 성폭력으로 피해자께 평생 남을 상처와 실망감을 남겨드린 점, 주변 지인과 학우 여러분께 충격과 불쾌감을 드린 점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죄한다”고 밝혔다. 때늦은 사과와 반성을 한 것이다. 

 

 

서울 광화문 KT 건물 앞에 사이버폭력 예방의 필요성을 알리는 광고물이 전시돼 있다.

 

집단 따돌림이 자살로 내몰기도

 

카카오톡에서의 집단 따돌림은 피해자를 자살로 내몰기도 한다. 지난해 5월에는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욕설 등 따돌림을 당하던 여중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 갓 입학한 A양은 같은 초등학교 출신의 또래 4~5명과 친하게 지내다가 사이가 틀어졌다. 그러다 친구들로부터 카톡 대화방에서 욕설 등 심한 말을 듣고는 자살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모바일 등 온라인상에서 피해자를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집요하게 괴롭히는 것을 ‘사이버불링(Cyber bullying)’이라고 한다. 최근의 학교폭력은 오프라인에선 줄어들었지만, 카톡 등을 이용한 사이버폭력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전체 학교폭력은 20% 이상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사이버폭력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14년 5월 중·고등학생 4000명을 조사한 결과, 3명 중 1명(약 27.7%)이 사이버불링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학교폭력이 진화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행 법(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도 사이버불링을 학교폭력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사이버불링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일종의 놀이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사이버상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장난 같은 폭력’이 서슴없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사이버불링의 형태도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카톡 단체방으로 피해 학생을 초대한 후 단체로 욕설을 퍼붓는 ‘떼카’, 대화방을 나가도 끊임없이 초대하는 ‘카톡 감옥’, 단체방에 피해 학생을 초대한 뒤 한꺼번에 나가버려 혼자만 남겨놓는 ‘방폭’, 스마트폰 테더링 기능을 이용해 피해 친구의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빼앗아 쓰는 ‘WIFI셔틀’까지 있다. 

 

관련 전문가들은 이에 대한 대처법으로 폭력 내용이 들어 있는 화면을 캡처해서 증거를 확보한 후 부모님이나 담임교사 등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말한다. 학교전담 경찰관이나 학교폭력 상담전화인 117에 전화해서 상담을 받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사회구성원들이 사이버불링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카톡 왕따나 집단 따돌림은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학교 담을 넘어 직장이나 동호회 등 어른들 사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단체 카톡방이나 단체 채팅방이 정보 공유나 소통의 중요한 수단이 되면서 생긴 현상이다. 예를 들어 직장의 경우 부서나 팀 전체의 공식 카톡방이 아닐 경우 팀원들 중 몇 명을 임의로 뺀 후 별도의 단톡방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를 통해 ‘끼리끼리’만 점심 약속을 따로 잡아 의도적으로 특정 팀원을 배제시키는 방법이다. 

 

서울 소재 중견기업에 다니는 2년 차 직장인 최아무개씨(남·31)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어느 날부터 점심시간이 됐는데도 팀원들이 ‘점심 먹으러 가자’는 말을 안 했다. 점심 식사가 끝날 무렵이면 팀원들이 함께 들어오곤 했는데 의도적으로 나를 배제시켰다는 것을 알았다”고 털어놨다. 

 

또 한번은 우연히 동료의 휴대전화에서 자신을 빼고 찍은 팀원들의 사진을 보기도 했다고 한다. 보통 직장인들 사이에서의 카톡방 왕따는 남성 직원들보다 여성 직원들 사이에서 더 심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런 때 따돌림을 당한 사람은 있어도 없는 ‘투명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사회 동호인 모임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진다. 한 자전거 동호회 소속이던 40대 남성 윤아무개씨는 얼마 전 모임에서 탈퇴했다. 그에 따르면, 집단 따돌림이 시작된 것은 주말 라이딩 코스를 정하면서 회원들과 의견충돌이 생긴 후부터였다. 윤씨가 소속된 동호회 모임은 단체 카톡방을 통해 주요 행사 등을 공지하고 회원들 간 의견을 교환했다. 한번은 주말 라이딩 코스로 윤씨는 다수 회원들과 다른 코스를 제안했는데 이게 감정싸움으로 퍼졌다.

 

그 이후부터 단톡방의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윤씨가 하는 말에는 회원들이 대꾸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 윤씨가 어떤 의견을 제시하면 무조건 반대하는 식이었다. 윤씨가 스스로 단톡방에서 나가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윤씨 생각에 단톡방은 특정 몇몇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었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2014년 5〜6월, 전국 중·고등학교 남녀 학생 4000명 대상

자료: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마녀사냥에 신상털기까지

 

페이스북 등 SNS에서 벌어지는 폭력도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안양 소재 한 마트 배달원 조아무개씨(남·37)는 6월1일 오후 동료 계산원 전아무개씨(여·43)의 머리 등을 2차례 때린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며칠 후 전씨의 딸은 페이스북에 조씨의 폭행 장면이 담긴 CCTV 동영상을 글과 함께 올렸다. 

 

영상에는 조씨가 계산대에서 일을 하고 있는 전씨를 향해 물건을 집어 던진 후 뒤에서 손으로 머리 쪽을 내리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전씨의 딸은 “남자분이 어머니 몸을 만지고, 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 만져서 어머니가 직원분들께 말씀드리려 하자 태도가 돌변해 욕하고 막 대하셨다고 한다”며 “저렇게 어머니를 때리고 마지막에 보이다시피 직원 휴게실 같은 곳에서 계속 때리셨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저희 어머니가 많이 맞으셔서 턱뼈가 들어가고 많은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것을 본 네티즌들은 공분했다. 조씨에게 일방적으로 악담을 하거나 욕설을 퍼붓는 댓글을 남겼다. 일부 네티즌들은 조씨의 신상을 털어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은 달랐다. 폭행은 있었지만 ‘성추행’은 없었고, ‘잦은 신체접촉’이나 ‘턱뼈가 들어갔다’는 것도 증거가 없거나 사실이 아니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반전이 있었다. 조씨는 뇌병변장애 5급 판정을 받은 지적장애인으로 그동안 전씨로부터 수차례 무시와 괴롭힘을 당해 폭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그는 “평소에도 배달할 물건 중 일부를 빼놔 여러 번 배달하게 하는 등 괴롭힘을 당해왔다. 그날도 무더웠는데 또 물건을 빼놔 배달을 갔다 다시 돌아와야 했고 순간 화가 치밀어 때리게 됐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양 소재 한 마트에서 일어난 폭행 동영상을 피해 점원의 딸이 SNS에 올리면서 큰 파장을 불러왔다.

 

전씨 딸의 일방적인 주장에 동조한 네티즌들로 인해 조씨는 한순간에 파렴치범으로 몰려야 했다. 그의 피해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조씨를 공격했던 네티즌들은 이번에는 전씨와 딸을 맹비난하는 등 양극단을 오가는 상황이 연출됐다. 

 

SNS상에서는 범죄 피해자도 ‘마녀사냥’에 시달려야 한다. 40대 여성인 조아무개씨는 지난 3월 씻지 못할 범죄 피해를 당했다. 조씨는 너무 억울해서 이런 사실을 SNS에 올렸다. 그런데 “미안하다” “사과한다” “죽을죄를 지었다”고 했던 가해자 측은 한순간에 돌변해 조씨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여론몰이에 나서면서 조씨를 ‘나쁜 사람’으로 깎아내리며 흠집내기를 시작했다. 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들이 피해자이고, 조씨를 가해자로 몰아가는 인면수심의 모습까지 보였다. 가해자 측에 동조한 사람들은 피해자인 조씨를 공격하고 악플을 달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조씨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자살시도까지 했다. 그는 “나는 범죄 피해자인데도 한순간에 가해자로 몰려 명예가 훼손되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정신적인 피해까지 입었다. 사이버상이라고 해서, 잘 몰랐다고 해서 그들을 용서할 수는 없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진행되면 나를 죽이는 데 앞장섰던 악플러 등을 모두 형사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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