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국공립박물관 누적 적자만 2000억대
  • 정준모 前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24 13:49
  • 호수 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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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인구절벽 시대 대비,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 구조조정’도 시급

 

경기도의 한 박물관에 전시물이 놓여 있다.

요즘 대한민국의 계절은 여름인데, 나라 형편은 겨울에 가깝다. 조선업에서 시작된 구조조정의 바람이 해운·철강·건설·석유화학 등 전 산업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전환기에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번 구조조정을 경제 분야에 국한시킬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사회 전반을 구조조정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문화와 예술 부문도 예외는 아니다. 인구절벽이나 저성장이라는 ‘저승사자’가 눈앞에 와 있음에도 정부나 지자체는 여전히 개발도상국 시절의 문화정책만을 답습해오고 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말, 박물관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 1000개의 박물관을 건립하겠다는 계획은 이미 실현됐다. 하지만 박물관의 공공성과 비영리성이라는 기본원칙을 무시한 채 건립과 개관에만 정책목표를 두었다. 때문에 현재 전국 시·도의 국공립박물관은 2000억원이 넘는 누적 적자를 기록 중이다. 

 

 

361곳 축제행사 중 흑자는 달랑 한 곳뿐

 

‘내 고장에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지역이나 지자체장의 자존심 때문에 너도나도 박물관을 건립했지만, 뒷감당을 못해 애물단지가 된 것이다. 소장품이나 프로그램도 없이 달랑 건물만 있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애당초 적자를 면치 못할 형편이었다. 노령화 속도도 빨라지는 만큼 다른 자구책을 찾지 못한다면 통폐합을 통해 규모의 경제화를 도모해야 할 판이다. 이제라도 인구절벽이나 저성장 시대에 맞는 문화 구조조정이 필수적인 것이다. 

 

물론 적자에도 불구하고 있어야 할 것은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중복·과잉은 곤란하다. 한글박물관은 개관해서 이미 운영 중이니 그렇다 쳐도, ‘세계문자박물관’은 무엇이며, 국립한국문학관은 또 무엇일까. 게다가 각 부처마다 제각각 건립해 운영 중인 박물관들도 이미 애물단지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군부대가 이전하는 용산공원에 국립과학문화관과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이 포함된 국립여성사박물관, 국립경찰박물관, 아리랑무형유산센터 등 8개의 박물관과 공연·전시 시설을 계획 중이다. 이미 유사 시설이 있는데 그것을 확대 발전시키기보다는 무조건 새로 짓고 보자는 것은 무슨 배짱일까. 과연 그곳을 채울 소프트웨어, 즉 유물이나 작품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어느 대통령 후보의 공약으로 지난 10년간 총 7030억원을 들여 광주에 ‘아시아문화전당’을 건립 개관하고는 또 부산에 173억원을 들여 2017년까지 ‘아시아문화원’을 개관한다는 보도도 있다. 2023년 세종시에 개관 예정인 국립박물관단지는 약 7만5000여㎡의 부지에 45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이곳에 국가기록박물관과 디자인박물관, 도시건축박물관, 디지털문화유산영상관, 어린이박물관 등 5개 박물관과 통합수장고, 통합운영센터 등이 들어선다. 개관 시점의 세종시 인구와 기타 수요가 이미 예상되는데도 이런 구름 잡는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봄, 가을이면 정신 못 차리게 많은 지역 축제행사도 문제다. 5억원 이상의 광역자치단체 축제행사와 3억원 이상의 기초자치단체 축제가 현재 361곳이나 된다. 이 가운데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곳은 달랑 1개뿐이다. 5건은 ‘본전’이고, 나머지 360개의 축제는 적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축제행사가 횡행한 것은 자치단체장들의 선심 쓰기와 재선관리용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법 이름이 알려진 ‘나비축제’나 ‘머드축제’조차도 모두 적자라면 이 또한 구조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개발도상국가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했다. 또 성장사회에서 성숙사회에 도달했다. 아쉽게도 GNP(국민총생산) 3만 달러 시대를 넘어가지는 못했는데 경제성장판은 이미 닫혀가고 있다. 따라서 이에 걸맞은, 아니 지난 성장기에 대책 없이 저질러 놓았던 문화 관련 인프라를 구조조정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마다 있는 잔디구장은 인구고령화로 이미 저 푸른 초원이 됐다. 조금 잘나갈 때 대책 없이 건립한 지방 박물관과 미술관은 ‘박물관의 저주’로 돌아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성장을 외치고 문화적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인다. 현재 있는 것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이런 현실을 냉철하게 받아들여 미래를 준비해야만 한다. 언제까지 고성장할 것이라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이제라도 문화 부문의 구조조정이나 정책조정이 필요한 때가 됐다. 아니 불가피하다. 이를 위해서는 향후 미래사회를 예측하고 이에 걸맞은 문화정책을 수립해 나가야 한다. 우선 우리나라는 더 이상 단일민족국가가 아니다. 다인종·다민족국가가 불가피한 상황이고, 이미 다민족국가로 나아가고 있다. 따라서 민족을 대체하는 개념으로 미래 한국문화에 대한 정의가 새롭게 필요하다. 국민통합과 문화적 동질체로서 국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문화에 대한 정책적인 고민과 결과 도출이 오히려 시급하다. 50년 뒤의 한국문화를 과제로 정책적인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문화시설, 중복·과잉 투자 없도록 해야 

 

사실 문화융성의 목표를 너무 가시적인 것에 둘 것이 아니라 이런 것에 두어야 했다. 이제부터라도 양보다는 질에 중점을 둔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 ‘개점휴업’ 상태인 지방 박물관들의 경우, 기획전시 기능이 없는 상설전시관이기 때문에 한두 번 다녀오면 그다음에는 갈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국민 일반의 교육수준과 생활수준에 맞는 정책전환이 시급하다. 

 

그리고 중복투자와 과잉투자가 없도록 문화시설의 경우, 예비타당성 조사에 향후 20년 동안의 운영계획 및 프로그램계획, 예산운용계획 등을 포함시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제 문화부가 할 일은 사업이 아니라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일이다. 보다 큰 문화에 대한, 미래 한국을 상상할 수 있는 밑그림을 그리는 일, 그리고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야말로 중요한 것이 아닐까. 이제 더 이상 ‘실적지상주의’가 아닌 ‘실력지상주의’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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