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유럽 아닌 ‘그레이트 브리튼’을 택했다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6.2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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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브렉시트 선택…43년만의 EU 탈퇴로 세계 정치·경제 출렁

 

 

브렉시트 국민투표 개표현장

 

투표는 끝났다. 영국 국민은 EU 탈퇴를 선택했다. ‘설마’했던 영국의 브렉시트(BREXIT)는 현실이 됐다. 브렉시트를 묻는 국민투표 결과는 찬성 1741만742표(51.9%), 반대 1614만1241표(48.1%). 126만표 이상 차이가 났다. 


6월23일(현지시각) 영국의 EU 회원국 탈퇴를 결정지을 국민투표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이 같은 결과를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투표가 이뤄지는 동안에도 ‘잔류’가 우세하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하지만 세대 투표가 이루어지면서 예상은 뒤집어졌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투표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18~24세, 25~49세 청년층은 ‘잔류’에, 50~64세의 중장년층과 65세 이상 노년층은 ‘탈퇴’에 표를 던졌다.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서 글로벌 경제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됐다. ‘탈퇴’가 ‘잔류’를 앞질렀다는 영국 선덜랜드 지역 개표결과가 전해지자 국제 증시는 출렁이기 시작했다. 브렉시트 개표율이 70%를 넘기며 ‘탈퇴’ 쪽으로 결과가 굳어질 때쯤 증시는 말 그대로 ‘패닉’ 상태가 됐다.


브렉시트 리스크, 한국 경제도 휘청


한국 경제도 그랬다. 개표율 70%를 넘긴 6월24일 오후 1시 쯤 코스피는 장중 1900선이 붕괴됐다. 코스피는 이날 아침 만해도 영국의 EU 잔류에 대한 기대감으로 2000포인트를 넘으며 상승 출발했다. 코스닥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오후 1시쯤 사이드카 발동했다. 사이드카는 선물의 가격이 급격하게 오르거나 떨어질 때 현물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현물 프로그램 매매 체결을 지연시키는 장치다. 증권가 관계자는 “결국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며 “오늘은 역사에 ‘검은 금요일’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금융시장은 지난 몇 달 간 브렉시트발(發) 리스크에 울고 웃었다. 국민투표 결과에 대한 여론조사 발표가 하나하나 나올 때마다 기대감과 위기감에 출렁댔다. 올해 4월 중순까지만 해도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EU잔류파가 탈퇴파를 앞섰다. 브렉시트 우려가 확산되자 원-엔 환율이 급등했다. 브렉시트 이후 금융․경제 분야 등 전반적으로 불확실한 리스크가 증가할 것을 우려해 안전자산인 엔화로 수요가 몰린 탓이었다. 6월16일 정오(현지시각) 무렵 엔-달러 환율은 2014년 9월 이후 처음으로 105엔 선이 붕괴됐다. 전날인 15일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Fed)가 6월 정례회의에서 정책금리를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일파만파 확산되던 브렉시트 리스크에 대한 위기감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반전됐다. 6월16일(현지 시각) 영국의 EU 잔류를 지지하던 조 콕스 노동당 하원의원이 한 극우주의자에 의해 피살당했다. 이 사건으로 브렉시트 반대 여론이 우세하는 듯했다. 국내외 증시도 영국의 EU 잔류에 대한 희망이 보이자 안정세를 회복했다. 


운명의 국민투표가 실시된 6월23일까지 이런 기조는 유지됐다. 초반 개표 결과 역시 근소한 차이긴 해도 ‘잔류’가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은 달랐다. 영국 국민들은 결국 ‘탈퇴’의 손을 들어줬다.
 

영국 유권자들은 EU탈퇴 찬성(51.9%), 반대(48.1%)에 표를 던졌다. 영국 BBC 공식 개표 사이트 캡쳐

영국의 탈(脫)유럽 본게임은 이제부터

 


이제 영국과 세계 경제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까. 영국이 선택할 경우의 수에 따라 한국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일까. 여기저기에서 제기되는 브렉시트 공포는 어느 정도나 현실이 될까. 


전문가들은 브렉시트가 결정되면 파운드화가 급락하고 글로벌 증시가 출렁이는 것은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실제 투표가 끝나기 전부터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개표 결과가 하나 둘 나오면서 파운드화와 엔화 등 주요 통화 가치는 널뛰기했다. 일단 파운드화는 폭락했다. BBC는 장중 한 때 1파운드당 1.5달러였던 환율이 1시간 반 만에 4.8% 급락했고 이후 9%나 더 추락해 파운드당 1.3459달러를 기록했다고 긴급 보도했다. 1985년 이래 최저점이다.


엔화도 브렉시트 국민투표 개표 중간결과에 따라 급등락을 반복했다. 엔화 환율은 투표 시작 후 달러당 106.84엔까지 올랐으나 ‘EU 탈퇴’가 선전하고 있다는 속보가 전해지면서 103.07엔까지 떨어졌다. 장중 기준으로 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원/달러 환율 역시 오르내리다 달러당 1150원선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문제는 한국 금융시장 내 영국 자본이 무시 못 할 수준이라는 거다. 영국은 올해 1~4월 사이에 한국 주식 4200억원을 순매수 했다. 전체 외국인 순매수 금액 2조8000억 원 중 15%에 해당하며 미국 다음으로 큰 규모다. 강선구 LG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의 경우 국내 금융시장에서 영국의 영향력이 높은 편이라 브렉시트가 상당 기간 동안 리스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국 금융시장에서 대대적인 해외자금 유출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계 자금이 나가는 것도 있지만 영국과 긴밀한 아일랜드나 네덜란드 등 유럽계 자금들이 회수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어서다. 


원화 환율도 불안해진다. 글로벌 안전 자산으로 평가받는 일본 엔화의 가치가 절상되는 것과 반대로 원화는 평가절하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엔화 평가절상이 지속될수록 한국 수출 기업은 가격 경쟁 측면에서 유리해질 수 있다.


물론 이번 투표 이후 영국이 바로 EU를 탈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영국 의회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EU와 단일시장 영역에 대해 2년 이내에 재협상을 거쳐야 하는 일도 남았다.


○ 영-EU 단일시장 범위 재협상이 성공할 경우
 

일단 브렉시트가 통과됐으니 단기적으로는 영국과 유럽의 증시가 폭락하고 이에 따른 연쇄효과로 전 세계 증시가 출렁일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유럽경기가 위축되면서 유로화와 파운드화의 동반약세가 진행되는 등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도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장기적으로 영국 교역이 관세화되면서 영국 수출이 위축되고 수입물가가 상승할 수 있다. 유럽시장의 경제 금융 중심지였던 영국의 지위도 약화되면서 국제 투자자금이 유출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그래도 영국이 무역․서비스․인력․자본 면에서는 여전히 EU 단일시장에 참여하고 정치나 안보 영역 등에서 독립성을 유지하는 게 좋은 그림이다. 이렇게 된다면 국내의 피해가 제한적일 수 있어서다. 영국이 더 이상 EU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FTA 체결국들과 별도의 협상을 거쳐야 하지만 기존의 교역관계는 유지할 수 있다. 영국은 여전히 EU내 상품뿐만 아니라 서비스나 인력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니 글로벌 금융 중심으로서의 지위가 어느 정도 유지된다. 금융 불확실성 역시 상당 부분 사라지고 안정될 수 있다. 다만 영국과 EU의 재협상기간 동안에 생길 시장 불안정은 어쩔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영-EU 단일시장 범위 재협상이 실패할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다. 2011년부터 한국은 EU와 FTA로 무역 관계를 맺고 있다. EU회원국인 영국과는 거의 무관세 교역이 이뤄지고 있다. 재협상이 실패한다면 금융시장 타격은 물론이고 영국이 EU 회원국이었던 때 맺었던 FTA가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영국은 한국을 포함해 기존의 무역 상대국들과 FTA를 새롭게 체결해야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관세 문제가 부담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이런 여파로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이 감소하게 되면 연쇄적으로 수입 규모가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국과 영국의 무역규모는 중장기적으로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투자지로서의 영국도 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확대되면서 국내 및 아시아 시장에 대한 투자가 감소할 여지도 있다.
 

지난 6월16일(현지시각) 조 콕스 하원의원 피살사건은 브렉시트 여론을 '잔류'로 돌려세우는 기점을 마련하기도 했다.


 

요동치는 스코틀랜드…대영제국 해체되나


영국이 ‘탈퇴’로 결론내자 스코틀랜드의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알렉스 살몬드 전 스코틀랜드독립당 대표는 6월24일(현지시각) 성명서를 내고 “이번 결과가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을 묻는 두 번째 국민투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스터전 대표는 이미 지난주 EU탈퇴에 대비해 스코틀랜드 독립 재투표를 위한 비상계획 설립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코틀랜드는 지난 2014년 9월 열린 독립 찬반 주민투표에서 부결됐다. 당시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반대한 쪽이 내세운 논리가 바로 ‘EU 잔류를 위한 선택’이란 점이었다. 영국의 EU 탈퇴가 현실이 됐으니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운동이 재점화될 수 있다는 여론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전체 개표결과는 탈퇴 52%, 잔류 48%였다. 반면 스코틀랜드는 잔류가 62%로 탈퇴(38%)보다 20%p 이상 높았다. 


스코틀랜드의 이탈이 영국연방의 몰락을 불러올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15세기 대항해 시대 이후 19세기부터 20세기초반까지 영국은 세계 최대 강국으로 군림해왔다. 1921년 대영제국은 당시 전 세계 인구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인구와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영토(식민지 포함)를 가진 나라가 됐다. 이번 브렉시트를 주도한 EU 탈당파들도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자”며 보수층의 결집 및 외국인의 배척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의 바람과 반대로 영국이 작은 섬나라로 쪼그라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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