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끊긴 요양병원 왜 이러나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6.06.27 16:03
  • 호수 1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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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금 수천만원 미납해 단전 조치…직원들 급여도 밀려 고발당해

 

충남 홍성의 한 요양병원이 전기가 끊긴 채 사실상 폐업에 들어갔다. 병원 입구가 잠겨 있다.

 

충남 홍성의 한 요양병원이 전기 공급이 끊겨 사실상 폐업 상태에 들어갔다. 한국전력 홍성 지사에 따르면, 이 요양병원은 지난해 12월부터 전기요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당초 한전은 올해 4월까지 이 병원의 전기요금 미납액이 6500만원에 달해 5월17일 오후 병원 시설에 단전 조치를 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한전은 2층 중환자실과 3~5층 입원실에 필요한 최소한의 전기만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다행히 이 병원의 의료법인이 5월 중순 미납요금의 일부인 2300만원을 납부해 정전 사태는 모면했다. 하지만 이 금액은 전체 미납금액 7200만원(5월분 포함)의 2개월분으로, 한전이 6월15일까지 단전을 유예한 것이어서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못했다. 급기야 6월16일 오후 이 요양병원의 모든 시설에 대한 전기 공급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130여 명에 이르는 입원 환자는 인근 다른 요양병원으로 거처를 옮겼고, 간호사 등 70여 명의 직원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게 됐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병마와 싸우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주로 입원하는 요양병원이 전기요금을 납부하지 못해 문을 닫았다는 사실은 상식적이지 않다. 한때 190여 명의 환자가 입원해 있을 정도로 상당한 규모를 지닌 요양병원이 전기요금조차 못 낼 정도로 경영이 악화됐다는 점도 믿기 힘든 대목이다. 전기요금을 못 낼 정도였다면 약품 대금이나 직원 급여 등 병원 운영에 필수적인 비용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 걸어 잠가 사실상 폐업

 

6월22일 오후 홍성 중심가에 위치한 요양병원을 찾았다. 병원 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다. 병원 앞 주차장에 차들이 주차돼 있기는 했지만 병원을 드나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 병원 앞으로 걸어오는 사람이 있어 병원이 왜 문을 닫았는지 물었다. 그는 곧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고 병원 직원인 최아무개씨가 와서 사정을 설명했다.

 

최씨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2015년 1월 이 요양병원을 운영할 의료법인이 설립됐다. 이전에는 병원장의 개인병원이었다. 그런데 법인 설립 후 김아무개 병원장과 윤아무개 이사장 간 법적 분쟁이 불붙었다. 윤 이사장은 이사회를 열어 김 원장의 형수인 법인 대표 김아무개씨를 해임했다. 이후 윤 이사장 측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급하는 보험급여를 받을 수 없도록 해 병원을 운영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김 병원장 측 주장은 윤 이사장 측이 한 달에 3억원에 이르는 보험급여를 못 받게 해 직원 급여는 물론 전기요금까지 못 내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 요양병원의 경우 매월 3억원이 넘는 보험급여와 환자 본인부담금 3000여만원으로 운영이 됐는데, 윤 이사장 측이 공인인증서를 주지 않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보험급여를 신청조차 못했고 이후에는 법원에 채권추심·처분금지 및 지급금지가처분 신청을 해 보험급여를 못 받도록 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윤 이사장 측이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병원으로 쳐들어왔다’거나 ‘이전에도 사채업을 했고 이런 식의 업무방해를 했다’고 김 병원장 측은 주장했다.

 

 

보험금 400억원 병원장 아들에게 채권 양도 

 

김 병원장 측 이야기만 들으면 의료법인을 설립하는 데 자금을 댄 윤 이사장이 조폭을 낀 악덕사채업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현장 상황은 달랐다. 시사저널이 요양병원을 방문한 시각 홍성군청 앞에서는 요양병원에 근무했던 직원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멀쩡한 병원을 패쇄시켜 직원들의 생업터전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처벌을 요구한 대상은 윤 이사장이 아니라 김 병원장이었다. 한 간호사는 급여가 2개월 이상 밀리고 퇴직금도 받지 못했으며 4대 보험은 33개월이나 미납돼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모든 책임이 김 병원장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 요양병원에서 근무했던 김아무개 간호사를 비롯한 15명의 직원은 6월13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김 병원장이 병원을 폐업시키기 위해 요양 중인 환자들 모두를 다른 의료기관으로 전원(轉院)시키고 병원 직원들에게 부당해고와 사임서를 강제로 작성하게 해 쫓아냈다”며 김 병원장에 대한 처벌을 요구했다. 김 병원장이 고의로 직원들 2개월 급여를 체불하고 4대 보험료를 직원 급여에서 제외하고 지급했음에도 체납해 횡령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전기요금뿐 아니라 수도요금도 체납 중이며 세금을 내지 않아 국세청으로부터 압류가 들어왔다.

 

 

요양병원 직원들이 홍성군청 앞에서 시위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보험급여를 받지 못하게 된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달랐다. 직원들은 김 병원장의 형수가 의료법인 대표로 있을 때 공단으로부터 받을 예정인 보험금 400억원을 김 병원장의 아들에게 채권 양도해 18억원을 받았는데 이 돈이 병원을 운영하는 데 제대로 사용됐는지가 의심스럽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유 이사장 측이 법원에 낸 채권추심·처분금지 및 지급금지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의료법인은 김 병원장을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김 병원장 측은 가처분 신청을 풀어야 병원을 운영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유 이사장 측은 400억원 채권을 법인에 돌려주는 게 우선이라고 맞서고 있다. 유 이사장 측 인사는 “개인병원도 아닌데 400억원이나 되는 채권을 아들에게 양도한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한 후 “이미 18억원을 받아갔는데 전기요금을 못 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인사는 “조폭을 동원했다거나 사채업자라는 말도 터무니없다”고 밝혔다. 유 이사장은 조선소와 자동차운전면허학원을 운영한 사업가이고 지금은 건물 임대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 요양병원은 4년 전 한 종편 고발 프로그램에서 ‘생지옥 요양병원’으로 방송된 적이 있는데 욕창 환자에 대한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으로 나와 논란이 됐다. 당시 병원 내부를 촬영해 제보한 김아무개 간호사는 내부고발자로 찍혀 해고를 당했다. 부당해고라는 법원 판결이 있었지만 복직이 되지는 않았다. 김 간호사는 “욕창이 심해 뼈가 보이기 직전인데도 소독처리만 하라고 했다. 보험급여 1등급이면 매월 200만원가량이 나오는데 이 때문에 환자를 방치한 것으로 보였다”며 “보다 못해 환자를 치료하다가 폭행까지 당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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