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범죄의 대두를 우려하면서
  • 최재경 법무연수원 석좌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01 11:18
  • 호수 1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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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경 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최재경  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증오범죄(hate crime)’ 또는 ‘혐오범죄’라는 생경한 단어가 이제 우리 사회에도 익숙해지려 하는 것 같아 무섭다. 증오범죄는 소수 인종이나 민족, 동성애자나 특정 종교인 등 자신과 다른 사람 또는 여성·장애인·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이유 없는 증오심을 갖고 무차별적으로 테러를 가하는 범죄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유색인종 테러 등이 전형이다. 증오범죄는 범죄자들이 양심의 가책 없이 이념적 근거를 갖고 저지르는 경우가 많아 대개 잔혹성과 집단성을 띠는 경향이 있다. 

 

다민족 사회인 미국이나 종교 갈등으로 참혹한 전쟁까지 치렀던 유럽과 이슬람 국가에서는 증오범죄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간주해서 전 국민이 관심을 갖고 대처해왔다. 미국은 지난 1991년부터 증오범죄를 공식 범죄통계의 한 유형으로 별도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다. 최근 미국에서 올랜도 총기난사 사건이 엄청난 충격을 줬고, 프랑스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IS)에 충성을 맹세한 테러리스트가 경찰관의 자택에 침입해 경찰관 부부를 잔인하게 살해했다. 영국에서는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를 앞두고 반대하는 여성 정치인이 대낮에 총격을 받고 숨지기도 했다. 

 

오랜 단일민족의 전통 속에서 억강부약(抑强扶弱)과 관용의 문화가 강조돼 온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을 금기시해 증오범죄가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경제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청년실업이 증가하고 빈부격차가 심화됨에 따라 대한민국도 증오범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이민자나 탈북자, 다문화가정 자녀들에 대한 왕따나 폭행 등이 증가하면서 우려가 적지 않던 차에 지난 5월의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은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다.

 

증오범죄는 사회 분위기에 따라 일종의 유행병처럼 확산되는 경향이 있고, 방치할 경우 국가·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심각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조기에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 대처는 쉽지 않다. 우선 증오범죄를 엄정하게 처벌하고 재범을 방지할 수 있도록 기존의 형사법제를 면밀하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증오범죄를 범죄자에 대한 ‘증오’로 해결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에 헌법 원칙에 따른 통합의 정신을 확산시켜야 한다. ‘하나의 대한민국’을 위해 사회적 약자를 더욱 배려하고 관용하는 기풍이 확산될 수 있도록 광범위한 국민 교육과 캠페인이 이뤄져야 한다.

 

지난해 파리 테러로 아내를 잃은 남편은 “그들은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빼앗아 갔지만 나는 그들에게 내 분노를 선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한 6월16일 사망한 영국의 조 콕스 하원의원의 남편도 “모두 힘을 합쳐 내 아내를 죽인 증오범죄와 맞서 싸워달라”고 호소했다. 더 이상 우리나라도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닌 것 같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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