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믿은 호남사람 집단으로 바보 됐다”
  • 노병하 전남일보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03 20:23
  • 호수 1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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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비 리베이트 사건’에 속 끓는 광주·전남 민심

국민의당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사건을 바라보는 호남 민심은 싸늘하다. 청렴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존 정당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참신할 것이라는 지역민의 믿음에 큰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사건 초기부터 명확한 의혹 해소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호남지역에서 국민의당 입지가 크게 줄어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국민의당은 악수(惡手)를 자초했다. 서둘러 사건을 무마하려 한 것이다. 그 결과, 호남 그중에서도 광주·전남 분위기는 냉랭하다 못해 조소까지 터져 나왔다. 국민의당의 뿌리인 광주·전남이 불과 3개월여 만에 국민의당에 차디찬 비웃음을 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비웃음은 수장인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가 물러났음에도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화근은 6월16일부터였다. 국민의당 김수민 의원의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수수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서부지검은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왕주현 전 사무부총장을 소환했다. 왕 전 부총장은 4·13 총선 과정에서 국민의당 선거대책위 홍보위원장이던 김수민 의원이 홍보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수수하는 과정에서 박선숙 의원과 함께 이를 사전 논의·지시한 혐의로 중앙선관위로부터 검찰에 고발당했다. 김수민 의원은 선거공보 업체 B사와 TV광고업체 S사로부터 모두 1억782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민의당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사건을 바라보는 호남 민심이 싸늘하다. 총선 하루 전인 4월12일 광주 풍금사거리에서 유권자들이 총선 후보들의 유세를 지켜보며 박수치고 있다. © 연합뉴스
“호남 출신 비례대표 없어도 불평 안 했는데”

수사야 그렇다 치더라도 문제는 리베이트 의혹 진상조사단장을 맡은 이상돈 국민의당 최고위원의 발언이었다. 그는 라디오에 출연해 “공천 자체에 대해서는 절차 면에서 하등의 문제가 없다는 것이 당의 판단”이라고 발언함으로써 지역의 공분을 불렀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만큼이나 세간의 관심이 주목되는 밀실 공천 의혹에 대해 당 지도부가 ‘조사 배제’ 방침을 정하고도 은근슬쩍 넘어가는 분위기를 풍긴 것이다.

이번 20대 국회에서 의원 수 14%를 차지하는 국민의당은 38명의 의원 중 23명이 호남의원이다. 이 지역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는 당이다. 그렇기에 당초 비례대표에 호남 출신이 한 명도 없는 것에 대해서도 큰 불평이 없었다. 신생정당이라는 입장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30살 최연소 여성의원과 관련해 비례대표 공천과정에서 당규를 위반하고 밀실위임을 통해 성급한 공천을 했다는 증거와 의혹이 제기됐다. 이는 호남민들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을 정면에서 부인하는 행위임에도 중앙당은 “리베이트는 없었다”만 되풀이한 것이다.

지역정가엔 찬바람이 불고 있다. 지역정가 한 관계자는 “어이가 없어서 말도 나오지 않는다”면서 “국민의당이 왜 호남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자리를 차지하게 됐는지 그 의미를 중앙당이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을 꺼냈다. 이 관계자는 “의혹이 터졌는데, 유야무야 덮는 것은 신생정당이 할 행동이 아니다. 죄가 있다면 스스로 달게 받아라. 그나마 그것이 조금이라도 기사회생할 방법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역정가 관계자는 “이렇게 덮고 나서 조금만 지나면 다 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여기는 광주·전남이다. 그런 것은 안 통한다”고 성토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새누리당도 이런 짓은 안 한다. 이 사건 하나 때문에 국민의당을 찍은 호남사람들이 욕을 먹는다”며 “대충 덮으려는 행위는 명백히 호남에 대한 배신이고 모독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당 지지율도 하락했다. 여론조사 전문 기관 리얼미터가 6월20∼24일 전국 유권자 2539명을 대상으로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1.9%포인트)한 결과, 국민의당 지지율은 일주일 전 조사(6월13∼17일)보다 0.5%포인트 내려간 15.5%를 기록해 최근 3개월간 가장 낮았다. 특히 최대 지역기반인 호남의 지지율이 24.9%로 11.8%포인트나 급락했다. 이에 따라 광주·전남지역 정당 지지율 1위는 37.2%를 기록한 더불어 민주당에 빼앗겼다. 6개월 만에 더민주가 이 지역 정당 지지율 1위를 회복한 것이다. 

‘총선 리베이트 의혹’을 받고 있는 국민의당 박선숙 의원이 6월27일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조사받기 위해 출석해 취재진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더민주, 광주·전남 정당 지지율 1위 회복

이 반응에 화들짝 놀란 국민의당 안철수·천정배 대표가 사퇴를 했지만 분위기는 요지부동이다. 광주·전남의 분노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리베이트 건 자체에 대한 분노와 이를 무마하려는 국민의당의 태도다. 정확히는 전자(前者)보다 후자가 더 강하다. 광주에 거주하는 정진혁씨(43)는 “광주와 전남이 국민의당에 요구하는 것은 작지만 당당함이었다. 더욱이 국민의당은 광주·전남에서 만들어준 당이다. 그들이 사건을 무마하려는 행동은 곧 광주·전남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라면서 “나도 타지(他地) 사람들에게 ‘너희가 찍은 당이 하는 짓을 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었다”고 말했다. 박수민씨(36)도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 그것도 기분이 나쁘지만 ‘우리는 죄 없다’ ‘모른다’고 발뺌하는 것에 더 화가 난다”며 “국민의당 가능성과 새로움을 믿은 지역민들이 집단으로 바보가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결국 국민의당이 이 악재를 딛고 다시 상승기류를 타기 위해선 분노한 광주·전남 지역민에게 그들 스스로가 강조한 청렴한 당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길밖에 는 없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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