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 시절 보도지침 사건 흑역사 재연한 이정현 前 수석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6.07.04 09:56
  • 호수 1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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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위적 보도통제 있었을 것… 이제 와 새로울 것도 없다”

청와대 홍보수석 시절 보도통제를 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

 

 

“국가가 어렵고 온 나라가 어려운데 지금 이 시점에서 그렇게 해경하고 정부를 두들겨 패다니….”

“지금은 뭉쳐가지고 정부가 이를 극복해 나가야지 공영방송까지 전부 이렇게 짓밟아가지고….”

“그래 한번만 도와줘 진짜. 요거 하필이면 또 세상에 (대통령님이) KBS를 오늘 봤네. 아이, 한번만 도와주시오. 자, 국장님 나 한번만 도와줘. 진짜로.” 

 

어르고 달랬다가 윽박지르기도 한다. 놀랍게도 이 대화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직후 당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현 새누리당 의원)과 공영방송 KBS의 김시곤 보도국장 간에 오고 간 대화다. 

 

 

5공 시절 보도지침 사건 흑역사 재연

 

전국언론노동조합·민주언론시민연합·언론개혁시민연대·자유언론실천재단 등 7개 언론시민단체는 지난 6월3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이 전 수석과 김 전 국장이 2014년 4월21일과 30일 나눈 통화 내용 전문을 공개했다. 이날은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법정 조사활동 시한이 끝나는 날이었다. 

 

이 전 수석은 《KBS 뉴스9》 보도 내용에 강력히 항의하면서 “뉴스 편집에서 빼달라, 다시 녹음해서 만들어달라”고 직접적인 요구를 하기도 했다. 5공화국 시절인 1986년 정부가 언론사에 기사보도의 가이드라인을 매일 하달한 이른바 ‘보도지침 사건’ 이후 30여 년 만에 또 한 번의 ‘흑역사’가 재연됐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국민적 비극인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보다 여론조작을 통한 진실 은폐에 나섰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어 향후 만만치 않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문제는 이 전 수석의 보도통제가 이번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김 전 국장은 2013년 1월부터 KBS 보도국장으로 재직하면서 ‘국장업무 일일기록’이라는 비망록을 작성했다. 같은 해 11월18일까지 작성된 이 비망록은 김 전 국장의 법정싸움 과정에서 폭로됐다. 김 전 국장은 2014년 5월 당시 길환영 KBS 사장이 “재임 내내 보도 개입을 했다”고 폭로했고, 이로 인해  4개월의 정직 처분을 받았다. 김 전 국장은 즉각 징계무효 확인소송을 제기했고 이 과정에서 비망록을 증거로 제출했다. 이 비망록에는 《KBS 뉴스9》의 당초 편집안과 길 전 사장 등이 요구한 내용 34건이 담겨 있다. 

 

비망록에 따르면, 굵직굵직한 사건에는 어김없이 보도개입이 있었다. 2013년 5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이 발생하자 “박근혜 대통령 방미 소식을 먼저 보도하고, 윤 전 대변인 사건은 순서를 뒤로 빼거나 보도 수를 줄여라”는 식의 보도지침이 내려왔다. 2013년 5월13일자 기록을 보면 “(길환영) 사장이 ‘내일부터 윤창중 사건 속보’를 1번째로 다루지 말라”고 지시하고, 이정현 정무수석도 전화를 걸어와 ‘대통령 방미성과를 잘 다뤄달라’고 주문”이라고 적시돼 있다. 

 

국정원 댓글 대선개입 사건의 경우에는 KBS의 특종보도를 막으려는 움직임까지 나왔다. 2013년 8월20일 기록을 보면 KBS 법조팀 특종 ‘국정원 댓글작업 11개 파트 더 있다’와 ‘경찰 CCTV 조작-왜곡 공방’ 2건이 방송 예정이었다. 그런데 ‘경찰 CCTV 조작-왜곡 공방’ 기사가 팩트와 달라 보도를 할 수 없게 되자, 길 전 사장이 특종보도인 ‘국정원 댓글작업 11개 파트 더 있다’ 기사까지 빼기를 주문했다는 것이다. 김 전 국장은 비망록을 통해 “길 전 사장이 처음부터 두 건의 보도를 모두 못마땅해했다”면서 “‘경찰 CCTV 조작-왜곡 공방’ 기사가 여당에 유리해서 앞의 아이템을 중화시킬 수 있는 물타기 편집이라고 설득했다”고 기록했다. 김 전 국장은 “‘국정원 댓글작업 11개 파트 더 있다’ 기사는 KBS 특종이라서 안 낼 경우 기자들을 통솔할 수 없다고 버틴 결과 겨우 방송했다”고 덧붙였다. 공영방송이라는 KBS의 부끄러운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보도통제 논란의 중심에 있는 길환영 전 KBS 사장이 2014년 5월9일 세월호 발언 논란과 관련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더민주 “이정현 의혹 청문회 추진”

 

보도개입은 세세한 부분까지 이뤄졌다. 2013년 10월27일자 기록을 보면, 청와대가 공영방송을 어떤 수준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비망록에 따르면, ‘박 대통령, 코리안 시리즈 깜짝 시구’가 5번째로, ‘청와대 안뜰서 아리랑 공연’이 마지막 순서로 편집됐다. 그런데 그날 밤, 이 전 수석이 전화를 걸어와 “‘청와대 안뜰서 아리랑 공연’을 맨 마지막에 편집한 것은 문제 있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이에 김 전 국장은 “맨 뒤에 편집하는 것은 이른바 빽톱으로 오히려 시청자들의 주목도가 높아서 홀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면서 “이 얘기를 정치부장에게 전하자 정치부장이 이정현 수석에게 전화해 ‘앞으로 사장이나 보도국장에게 직접 전화하지 말고 정치부장에게 얘기하라’고 항의했다”고 밝히고 있다.  

 

국제 언론감시단체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2016년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180개 국가 중 70위를 기록했다. 역대 최악의 기록이다. 그러나 언론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현장에서 훨씬 더 참혹하다. 특히 세월호 유가족들이 언론에 보내는 시선은 싸늘함 그 자체다. 이 때문에 이 전 수석의 KBS 보도통제 녹취록이 공개된 후 세월호 유가족들의 반응은 오히려 담담했다. 정성욱 세월호가족협의회 인양분과장은 “이 전 수석이 통화를 했던 시점은 구조와 진상규명에 대한 목소리가 높을 때였다. 이때에도 정부는 사건 축소·은폐에만 열을 올리고 있었다”면서 “보도통제가 있었던 곳이 어디 KBS뿐이겠나. 전방위적으로 보도통제가 있었을 것이다. 이제 와서 새로울 것도 없다. 어차피 대한민국 언론은 다 한통속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정현 전 수석을 둘러싼 보도 통제 의혹은 곧 정치권을 강타했다. 더불어민주당은 7월1일 이정현 전 수석을 둘러싼 의혹과 관련해 해당 상임위 청문회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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