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한 사람이 엉뚱한 자리 가서 권력 휘두르니 부패도 쉽게 발생”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6.07.04 10:34
  • 호수 1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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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이트 파문’…다시 들춰본 2012년 ≪안철수의 생각≫

 

 

 


‘안철수의 새 정치’ ‘국민과 함께 하는 안철수의 새 정치’ ‘안철수의 새 정치 트위터’ ‘안철수 사랑 새 정치 사랑’….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안철수’를 키워드 검색하면 쉽게 등장하는 안철수 국민의당 전 공동대표 관련 공식·비공식 사이트들의 이름이다. 그만큼 유력 대권후보, 그리고 원내 제3당의 간판 정치인으로서 위상을 키운 ‘정치인 안철수’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에는 ‘새 정치’라는 가치가 공존하고 있다. 

 


안 전 대표는 현실 정치에 등장한 이후 적지 않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2011년 박원순 현 서울시장을 지지하고 후보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대선 후보직 양보, 신당 창당 포기와 민주당과의 합당, 당 대표 사퇴, 그리고 탈당 후 국민의당 창당까지 물러서기를 반복해왔다. 일부 언론은 안 전 대표의 국민의당 대표직 사퇴를 두고 ‘안철수의 6번째 철수’라고 꼬집기도 했다. 

 


“리더는 결과를 잘 만들어야 할 책임 있어”


하지만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 사건이 할퀴고 간 상처는 과거 어느 때와는 비교하기 힘들어 보인다. 안 전 대표의 정치적 생명력이자, ‘안철수 현상’의 기저에 깔렸던 새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이 일순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검찰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안 전 대표가 몸담고 있는 국민의당이 돈 추문에 얽혔다는 것만으로도 파괴력은 클 수밖에 없다. 


일단 안 전 대표가 당 대표 사퇴를 전격적으로 결행한 것은 그동안 자신이 표방해온 새 정치의 마지노선을 지키려는 차원으로 보인다. 이 대목에서 안 전 대표가 본격적인 정당 정치를 시작하기 전인 2012년 7월 펴낸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제정임 엮음·김영사)이 눈길을 끈다. ≪안철수의 생각≫에는 안 전 대표가 정치 참여를 고민하게 된 배경과 가족사, 그가 지향하는 우리 사회의 미래상, 현실 정치 문제점 등이 언급돼 있다. 안 전 대표는 최근 당 대표 사퇴 기자회견에서도 말했듯이 당시 대담집에서도 막스 베버를 인용해 책임정치를 강조했다.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건전한 생각을 가진 것만으로는 곤란합니다. 결과를 잘 만들어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죠. 독일의 정치철학자인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은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함께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개인적인 신념을 가질 뿐만 아니라 아무리 힘들더라도 이 신념을 현실세계에서 이루어내야 한다는 뜻이지요.”(책 35쪽) 

안 전 대표는 당시 대담집에서 부정부패 문제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정권 말기마다 권력 측근의 비리가 반복되는 현상에 대한 해법을 묻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이 부분은 사람의 문제, 제도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되기까지 신세 진 사람이 많아 자리 나눠주기를 하다 보니 적합하지 않은 인재를 쓴 것이죠. (중략) 무능한 사람이 엉뚱한 자리에 가서 권력을 휘두르다 보니 부패도 쉽게 발생하게 되는 겁니다.”(책 144쪽) 

안 전 대표는 이른바 새 정치로 대표되는 ‘안철수 현상’을 통해 일순 대권주자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그에 대한 불안감은 적지 않았다. 안 전 대표는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과 분노에서 시작된 국민들의 요구를 담아 새 정치를 표방했다. 그런데 안 전 대표가 현실 정치에서 보여준 모습 가운데 새 정치와 동떨어진 경우도 적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2013년 새정치추진위원회(새정추)를 결성할 즈음 안 전 대표와 뜻을 같이했던 지역 정치권 인사는 “안철수는 새 정치의 상징이지만 새정추 차원에서 여는 모임에 참석했을 때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자리에 함께한 인물들 중 일부는 구(舊)정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로 알고 있었는데 이들과 어떻게 새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민의당으로서도 창당 5개월 만에 원내 제3당으로 발돋움하는 기염을 토하긴 했지만, 당 사무부총장이 직접적으로 연결된 리베이트 수수 등 허술한 회계 처리와 관리 시스템이 그대로 드러났다. 총선을 겨냥해 급조된 정당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새 정치를 표방하는 정당으로서는 국민의 신뢰를 쉽게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당정치’가 아니라 ‘정당’이 문제라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유권자들이 정당 위주로 투표를 하다 보니 정당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들 내부의 이해관계에 따라 후보를 공천하고, 정치인들도 국민보다는 소속 정당의 눈치를 봤죠. 그러니 정당 자체가 또 하나의 강고한 기득권이 되고, 민심에서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책 36쪽)

정치권 일각에선 안 전 대표가 당권보다는 대권 도전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만큼 숨고르기를 위한 시간을 벌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내에선 안 전 대표를 대신해 당 대표 역할을 맡을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을 중심으로 당 내부 추스르기와 당 정비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박 비대위원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안철수의 ‘새 정치’와 박지원의 ‘헌 정치’가 접목하면 잘될 거다”면서 “역설적으로 우리는 ‘구정치’가 필요하다. 구정치의 하드웨어만 접목시키면 당이 굴러갈 수 있다”고 말했다.

 

 

 

 


‘백의종군’ 안철수, 재기 가능할까 

 


하지만 새 정치의 의미마저 심각하게 퇴색된 상황에서 안 전 대표의 향후 정치 행보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반대 전망도 나온다. 안 전 대표는 그동안 정치에 입문한 이후 이미 여러 차례 고비를 겪으며 약점을 드러냈다. 새 정치의 비전 제시보다는 기성 정치에 대한 반감에 편승한 측면이 컸기 때문이다. 


새 정치를 들고나온 안철수 전 대표의 재기는 과연 이뤄질 수 있을 것인가. 안 전 대표의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 중 눈길을 끄는 또 다른 대목이 있다. ‘어떤 현실주의자의 꿈’이라는 부제가 붙은 문장이다. 4년 전 그의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정치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 국민들의 기대와 열망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내가 정치를 하게 된다면 과연 그 기대와 열망에 어긋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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