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로 타격받은 아베노믹스
  • 이규석 일본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04 17:48
  • 호수 1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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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 99엔대 돌입…“지긋지긋한 엔고 현상 나타나고 있다”

 

3년여 추진해온 아베노믹스가 브렉시트로 인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사진은 6월21일 일본 참의원 선거 토론회에 참석한 아베 신조 총리

 

 

6월24일 낮 12시45분, 영국 BBC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가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탈퇴파가 승리할 것이라는 속보를 내자, 일본 주가는 급락했고 엔화는 급등했다. 도쿄 주식시장에선 ‘팔자’가 쇄도하며, 12시58분 닛케이평균주가는 1286엔이나 떨어지며 1만5000엔(円)대의 문턱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일본 경제를 거의 ‘그로기 상태’로 몰고 간 2008년 9월의 리먼 쇼크 당일 닛케이평균주가는 605엔 하락에 그쳤다. 그런데 이번 영국 쇼크로 당일 1286엔이나 폭락했다. 수치상 변동만으로 볼 때는 두 경제 위기에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오후 1시 정각엔 1만4900엔대를 기록했고, 1시5분에는 일시적으로 1만4840엔까지 하락했다. 이때 오사카 거래소에서는 매매를 일시 정지하는 ‘서킷 브레이커’까지 발동시켰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1시9분 ‘금으로 도피자금이 몰리고 있어 금값이 상승했다(Gold prices are rallying after Britain votes to leave EU)’고 보도했다. 1시12분엔 원유 가격도 하락했다는 속보를 냈다. 영국 파운드화의 가치가 외환시장에서 급락했다고도 알렸다.

 

 

영국 진출 일본 기업 다른 국가로 이전할 듯

 

1시34분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재무상은 기자회견에서 영국의 EU 탈퇴가 세계의 금융시장과 일본 경제에 미치는 리스크에 대해 “지극히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니치긴(日銀)의 구로다 하루히코(田東彦) 총재는 유동성 공급에 만전을 기해 금융시장의 안정 확보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시가 도시유키(志賀俊之) 닛산자동차 부회장은 영국이 지금의 EU에 남아주는 것이 닛산에 있어서나 공장의 종업원에 있어서나 좋은 일일 거라 말하며, 영국의 EU 탈퇴 시 발생하는 추가비용에 대한 걱정을 표명했다. 영국엔 1000개가 넘는 일본 기업이 진출해 있다. 앞으로 이 기업들은 2~3년에 걸쳐 EU 내 다른 국가로 이전할 것으로 보인다. 

 

EU 탈퇴에 찬성한 영국 국민은 영국이 EU 부담금으로 2016년 기준 110억 파운드(1조6000억 엔)를 지출하고 있는데 영국으로 되돌아오는 대가는 적고, EU 각국의 빈곤한 나라들로부터 수십만 명의 이민자가 몰려 들어와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NHS)를 악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영국 독립당(UKIP) 대변인 수잔 에반스(Suzanne Evans)는 “EU에 이 부담금을 내지 않으면 매주 3억5000만 파운드(480억 엔)를 건강보험 자금으로 투입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결국 이런 주장들이 영국 중산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브렉시트 프로세스는 국민투표 결과를 가지고 우선 영국이 EU 정상회담에 ‘탈퇴 통지’를 해야 한다. 영국과 EU는 원칙상 2년간 교섭을 하게 된다. 관세와 통상에 관한 새로운 룰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이 늦어지면 교섭기간은 2~7년이 걸릴 수도 있다. 이 2~7년간 세계 경제는 불확실성이 계속되고 불투명성이 높아질 것이다. 이 기간 중엔 각국의 주가와 외환(환율)도 등락(騰落)을 거듭할 것이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그에 따른 불안심리가 커지게 되면 투자가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산을 선호하게 된다. 안전자산이라면 금(金), 달러(dollar), 엔(円)이 3대 ‘안전핀’이다. 대부분의 투자가들이 이 3대 안전자산을 ‘사 놓자’고 나서니 그 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국의 국민투표 속보가 나오자마자, 금값이 폭등했고, 달러는 더욱 강세로 돌아섰으며, 엔화는 드디어 100엔대가 무너지며 99엔대로 돌입했다. 일본인의 입장에서 볼 때 그 ‘지긋지긋한’ 엔고(円高) 현상이 다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25년’의 단초가 된 것도, 1980년대 중반 글로벌화가 싹틀 무렵 미국의 강압에 의해 맺어진 ‘플라자 합의’였다. 플라자 합의는 미국 주도로 1985년 맺어진 경제협약으로 일본의 엔저를 엔고로 바꿔놓는 것이 골자였다. 그런 연유도 있어 일본인에게 엔고는 악몽이다.

 

 

6월24일 일본 닛케이평균주가가 1286엔이나 떨어지며 폭락했다.

 

 

 

 

日 정부, 브렉시트에 대한 마땅한 대책 없어

 

그러나 브렉시트로 촉발된 주가 하락과 엔고에 대해 일본 정부로선 당장 마땅한 대책이 없다. 사태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닛케이평균주가가 다시 1만5000엔대로 올라서고 있고, 엔고도 99엔대에서 101~102엔대로 조금 회복되고 있지만, 주가하락과 엔고가 다시 나타날 가능성은 항상 잠복해 있다. 

 

브렉시트로 아베노믹스는 큰 타격을 입었다. 아베노믹스는 대담한 금융완화로 시중에 돈을 풀어 엔저와 고주가를 유도하고, 그 결과 기업의 수출이 늘어나  ‘돈벌이’가 좋아지면 종업원 임금이 올라가고 소비가 증가할 것이라는 소박하고도 단순한 발상이었다. 경기 호순환(好循環)을 기대하면서 일본 경제가 디플레로부터 빠져나오는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영국 쇼크가 일본 시장을 습격했다. 영국 쇼크 이후 5일(6월24~28일)동안 엔과 주식 등락폭은 심한 편이다.엔화 가치가 떨어지고 주가가 오르기도 했지만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브렉시트로 인해 3년여 추진해온 아베노믹스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니혼소켄(日本總硏)의 기쿠치 히데아키(菊地秀朗) 연구원은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왔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아베노믹스는 중대한 고비를 맞이하고 있다”고 경고장을 날렸다.  

 

아베 총리도 그저 손을 놓고만 있지 않았다.6월28일 경제재정자문회의를 열었다. 29일 아침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일본정부·니치긴 긴급 회동을 가졌다. 아베 총리는 경제재정자문회의에서 “계속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을 철저히 감시하겠다”고 말했으며, 정부·니치긴 긴급회동에선 필요한 정책을 총동원해 영국 쇼크에 대처하겠다고 호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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