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대선 직행 카드 ‘만지작만지작’
  • 남상훈 세계일보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07 09:19
  • 호수 139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박 진영, 유승민 대권 도전 ‘군불 때기’ 본격화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 동구 을에 무소속 출마한 유승민 의원이 4월13일 당선 확정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새누리당 비박(非박근혜) 유승민 의원의 대권론이 점화되고 있다.

 

무소속으로 당선돼 최근 복당(復黨)한 유 의원은 당권보단 대권 도전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 의원이 비박 당권 주자들과 잇따라 만나 8·9 전당대회 불출마를 시사해 ‘대선 직행론’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유 의원이 20대 총선 참패로 위상이 추락한 김무성 전 대표의 빈자리를 메워줄 비박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떠오르자 비박 진영이 유 의원의 ‘대권 군불 때기’를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전대 출마 첫 주자인 비박 김용태 의원은 “(전대) 출마 선언 전에 유승민 의원을 만났다. 유 의원 본인은 ‘복당한 지 얼마 안 됐고 여러 가지 상황 탓에 이번(전대)에는 출마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내게) ‘열심히 해보라’고 덕담을 해줬다”고 김 의원은 전했다. 김 의원은 “유 의원은 우리 당의 소중한 자산”이라며 “대권 도전까지 염두에 두면 좋겠다”고도 했다. 김 의원은 비상대책위원장에 임명됐으나 친박(親박근혜)이 강력 반발하자 자진사퇴한 바 있다.

 

비박이 유 의원의 대권 직행을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이유는 8월 전대를 앞두고 전국적 인지도가 높은 유 의원의 존재감을 부각해 비박 결속력을 강화하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개혁적 보수의 상징인 유 의원이 후방에서 비박 후보를 지원사격하면 친박 패권주의에 거부감이 많은 당원들의 표심을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수도권 의원은 “비박에서 김용태·정병국 의원 등이 당권에 도전하지만 이를 적극 지원할 구심점이 필요한데 유 의원이 나선다면 표 결집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물론 김무성 전 대표가 유 의원과 협력 체제를 구축하면 천군만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권과 대권 분리란 현실적 이유를 들어 유 의원의 대권 직행을 주장하는 인사도 있다. 유 의원과 가까운 이혜훈 의원은 “지금 당헌·당규가 대권주자는 당권(전대)에 나갈 수 없게 돼 있다. 당권에 나가면 대권을 포기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며 “대권주자는 대권에 가는 게 맞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당헌·당규에는 대선 출마자는 대선 1년6개월 전에 모든 선출직 당직에서 사퇴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유승민, ‘식사 정치’ 통해 비박계 껴안기

 

이 의원은 “국민들이 유 의원을 그렇게 보고 계셔서 대선주자 여론조사에 늘 포함되고, 새누리당 주자들 중에는 (지지율이) 많이 나오는 편 아니냐”고 강조했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의 6월 넷째 주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유 의원은 5.0%를 얻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23.2%),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21.4%),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11.5%), 박원순 서울시장(6.2%), 오세훈 전 서울시장(5.3%)에 이어 6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유 의원실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당권·대권 등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유 의원이) 여러 방안을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유 의원은 참모진 모임을 가동하고 있다. 당내에선 ‘미니 대선캠프’라는 말이 나온다. 유 의원은 이혜훈·조해진·이종훈·류성걸·권은희·민현주 등 전·현직 의원과 현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 의원은 복당 이전에 비박 신성범 전 의원 등 낙선 의원들과 식사를 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식사 정치’를 통해 비박계 껴안기에 나선 셈이다.

 

유 의원은 참모진과 당권 도전과 대선 직행을 놓고 심도 있는 논의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당권 도전의 긍정·부정적 영향을 집중 분석했다. 긍정적 측면을 보면 당 대표로 선출되는 순간 여론의 관심이 급증하는 컨벤션 효과가 나타나 유 의원이 여권의 유력 대권주자로 ‘퀀텀 점프(대도약)’할 수 있다. 당권을 쥔 유 의원은 인사 등을 통해 당내 지지 세력을 넓혀나갈 수도 있다.

 

유 의원이 당 대표직을 수행하면서 당 혁신에 성공할 경우 반 총장을 뛰어넘는 강력한 대권주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 경우 여당 내부에서 당권과 대권을 통합해 유 의원 대권가도에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와 대권의 길이 열리게 될 것이란 논리다. 당 관계자는 “유 의원이 반 총장에 필적하는 대권주자로 성장하면 정권 재창출의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어떻게 당권과 대권 분리 규정을 고집할 수 있겠느냐”며 “당권이 차기 대권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승민 측 “아직 정해진 것 없다” 신중

 

유 의원은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를 주창하고 있다. 그의 개혁적 보수 행보가 20대 총선에서 야권에 빼앗겼던 중도층과 수도권 표심을 되돌려 정권 재창출의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유 의원이 “복당해서 하고 싶은 일은 보수당의 혁신과 변화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 의원은 지난 5월말 성균관대학교 강연에서 시대정신과 정치노선을 밝힌 바 있다. 그는 ‘경제 위기와 정치의 역할’이란 주제의 특강에서 저성장과 양극화, 불평등 등 한국 경제의 위기 상황을 진단하고, “지금 대한민국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공화주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를 지향하는 보수 혁명이 필요하고, 공화주의 가치 중심의 보수 정치 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정적 측면을 보면 우선 유 의원이 전대에 출마할 경우 친박과 전면전을 펼쳐야 한다는 게 부담이다. 전대 경선 과정에서 친박 후보와의 혈투로 계파 갈등이 고조될 경우 유 의원에 대한 여론이 나빠질 게 뻔하다. 유 의원이 복당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당권 경쟁에 뛰어들어 당 내분만 야기한다는 비판이 쏟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유 의원이 만약 당권 도전에 실패할 경우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비박 의원은 “원내대표 경선이나 전국위 무산 등에서 보여준 친박의 수적 우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유 의원이 전국적 인지도가 높긴 하지만 당내 최대 계파인 친박이 단일 후보를 내세워 대항한다면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른 비박 의원도 “유 의원이 당 대표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실상 대권은 물 건너가게 되는 만큼 굳이 전대에 출마할 이유가 없다”면서 “대권을 향한 장기 플랜을 만들어 대선에 주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친박은 ‘유승민 대망론’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친박이 대권 후보로 원하는 반 총장은 당 밖에 있는 반면 유 의원은 당내에서 비박의 세 결집을 통해 당내 권력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유 의원의 대권행보가 본격화하면서 지지율이 상승할 경우 유 의원이 반기문 대항마로 부상하며 비박 결속을 더욱 강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한 친박 의원은 “유 의원이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급부상해 반 총장이 하락세를 타면 친박은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보는 신세가 된다”고 우려했다. 친박 내부에서 좌장인 최경환 의원을 친박 대권후보로 양성해 유 의원에 맞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