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 '안시현' 12년만의 우승...그린에서 펼쳐진 ‘아줌마 파워’
  • 안성찬 골프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08 19:40
  • 호수 1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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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겸업’ 홍진주도 6위 올라

우승이 확정되자 가슴속에서 조용히 눈물이 흘렀다. 딸을 꼭 안았다. 그리고 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절반은 기쁨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살아온 날들에 대한 회한(悔恨)이었을 게다. 이게 골프를 하는 이유인가. 


6월19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 골프클럽 유럽·오스트랄아시아 코스(파72·6619야드)에서 끝난 내셔널 타이틀인 메이저대회 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총상금 10억원). 원조 ‘신데렐라’ 안시현(32·골든블루)에게 우승을 안기며 막을 내렸다. 합계 이븐파 288타를 쳐 디펜딩 챔피언 박성현(23·넵스)을 1타차로 제쳤다. 12년만의 우승이다. 그리고 딸을 둔 ‘주부골퍼’로는 처음으로 맛보는 영광이다. 이날 3살 난 아들을 둔 ‘주부골퍼’ 홍진주(33·대방건설)도 4오버파 292타를 쳐 공동 6위에 올랐다. 

‘아줌마 파워’를 보여준 보기 드문 날이었다. 이 대회에서 둘은 1·2라운드 때 동반 플레이를 하면서 골프보다 아이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육아를 주제로 실컷 수다를 떨어서 그럴까. 이틀간의 성적은 둘 다 상위권이었다. 

안시현이 딸 그레이스와 함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출산 후 몸 쉽게 회복 안 돼”

일반 직장인이라면 여성이 직업을 갖고도 큰 어려움 없이 아이들을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운동선수는 다르다. 특히 한국과 외국을 오가면서 경기를 해야 하는 여자프로골퍼는 더욱 힘겹다. 상상 이상으로 고된 직업 중 하나로 보면 된다. 특히 한국의 경우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선수들이 대회를 휩쓸고 있는 상황에서 주부골퍼가 좋은 성적을 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결혼과 함께 대부분 그린을 떠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애를 낳고 기르면서 2~3년 정도 클럽을 놓으면 기량을 회복하기가 어렵다. 그런 점에서 안시현과 홍진주는 조금 특별하다. 

안시현은 “투어에 다시 복귀할 당시의 자신감과 컨디션으로는 굉장히 잘 치고 우승도 한두 개는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출산한 이후여서 많은 준비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몸이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고 ‘맘’의 고충을 털어놨다. 홍진주도 “개인적인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골프 말고도 가정과 육아로 나누어진다. 이 때문에 연습할 시간이 부족해 제 기량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미난 사실은 둘의 ‘골프 궤적’이 비슷하다는 점이다. 한순간에 스타덤에 올라 미국행, 그러나 오랜 시간 슬럼프로 화려함 뒤에 고난과 역경이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그러다가 결혼과 출산을 한 뒤 다시 국내 그린에 복귀했다. 

홍진주가 1983년생 원조 ‘얼짱’이라면 안시현은 1984년생 원조 ‘신데렐라’다. ‘8등신 미인’ 홍진주는 키가 174cm에 품격 있는 몸매를 지녔다. 안시현도 169cm의 뛰어난 몸매를 지녔다. 둘 다 초청선수로 출전해 우승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주니어 시절 기량이 뛰어났던 안시현은 2003년 제주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CJ나인브릿지클래식에서 우승하며 미국으로 직행했다. 이듬해 LPGA투어 신인상을 받았다. 한국 우승은 2004년 KLPGA투어 엑스캔버스오픈에서 딱 한번뿐이다. 홍진주의 미국 진출은 안시현보다 늦었다. 홍진주는 2006년 KLPGA투어 SK엔크린 솔룩스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한데 이어 LPGA투어 코오롱 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오른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둘은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해 험난한 길을 걸어야 했다. LPGA투어가 생각처럼 녹록지 않았다. 안시현은 미국 진출 이후 존큐해먼클래식에서 2위를 한 것이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우승이 없다. 홍진주도 2년간 50~60위권을 맴돌다가 2009년 100위권 밖으로 밀려나면서 국내에 들어왔다. 특히 안시현은 마음 아픈 과거가 있다. 2011년 모델 출신 배우 마르코(39)와 결혼했다가 파경을 맞아 ‘싱글 맘’이 됐다. 2012년 딸 그레이스를 낳았다.

환하게 웃고 있는 홍진주 모자.
임신 8개월 때 우승한 주부골퍼도 있어

이들에게 어려움 점은 무엇일까. 둘 다 볼을 쳐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직업이 골프이기 때문에 코스가 직장이다. 보통 주부 직장인들처럼 어린 자녀를 떼어놓고 직장으로 출근하는 일이 사실 쉽지가 않다. 게다가 이들은 보통 직장인과 달리 외국이나 지방 출장이 잦다. 안시현은 올해 10차례 대회 가운데 두 번은 제주, 중국과 경남 김해와 강원 춘천을 한 번씩 다녀왔다. 홍진주 역시 중국·베트남에서 경기를 가졌고, 제주에서 3차례, 그리고 김해와 춘천에도 갔다 왔다. 특이 이들에게는 주말이 없다. 화요일부터는 공식 연습, 프로암, 그리고 본 대회가 이어진다. 

안시현은 우승한 뒤 “이번 나의 우승으로 후배들이 용기를 얻고, 결혼과 출산 후에도 선수 생활을 계속할 수 있다는 걸 입증했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홍진주는 “틈나는 대로 후배들에게 ‘이 좋은 직장을 그만둘 생각은 하지도 마’라고 격려한다”며 “어려움이 있어도 용기를 잃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홍진주는 또 “아무래도 가정이 있으니 남들보다 열심히 살려고 노력 중이라 힘들지만 하루하루가 더 의미가 있고 소중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다”고 덧붙였다. 

여자프로 중에는 원조 격 ‘맘’이 몇 명 더 있다. 시니어 최강자로 군림했던 박성자(51), 부부 프로골퍼인 심의영(56), 아들이 군에 입대한 김형임(52), 딸을 프로로 만든 노유림(57) 등이다. 이화여대 출신의 박성자는 1998년 임신 8개월 때 우승해 유명해졌다. 김형임도 아이를 가진 상태에서 대회에 출전한 바 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박성자는 “의사가 무리하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아무래도 배가 불룩하니 몸통 스윙이 잘 안 돼서 팔로만 쳤더니 더 잘 맞아 우승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고교 2년생 딸을 둔 박성자는 정규투어 2승, 시니어 투어에서 2007년부터 6년간 무려 13승을 거뒀다.

하지만 박성자는 아이를 갖고 주부와 프로골퍼를 겸업한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골프는 다른 운동과 달리 일정기간 쉬면 기량이 현저하게 떨어져 우승과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이다. 박성자는 ‘결혼을 왜 했을까’ 하고 회의감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엄마가 필요할 시기에 아이와 놀아주지 못해서다.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 경기장에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지금의 딸은 골프라면 손사래를 친단다. 

박성자는 “출산하고 그린에 복귀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몸을 추스르는 시간과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몸을 만들 시기를 놓친다. 게다가 결혼을 하게 되면 시집과 친정 일이 겹쳐서 시간과 정신이 분산된다. 그럼에도 정규투어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홍진주와 안시현은 정말 대단한 주부 프로골퍼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노유림은 딸과 동행하다가 아예 골프에 입문시켜 대물림을 한 경우다. 현재 그의 딸 전우리(19)는 KLPGA 2부 투어에서 뛰는 유망주다. 젊은 선수들에게 주부와 프로골퍼라는 직업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 그리고 용기를 주는 현역 ‘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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