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신’도 한계를 마주한 인간이었다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11 14:42
  • 호수 139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만 29세 메시는 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나

메시가 6월26일(현지 시각) 열린 2016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실축한 뒤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숙이고 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이제는 지쳤다. 끝내고 싶다.” 리오넬 메시는 또 한 번의 정상 도전에 실패한 뒤 자신을 둘러싼 100여 명의 취재진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메시는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가 아닌 연이은 좌절에 작아진 한 인간에 불과했다.

 

6월27일 열린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 결승전에서 메시와 아르헨티나는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칠레를 상대로 120분 연장 혈투에도 승부를 가리지 못한 아르헨티나는 승부차기에 돌입했지만 2-4로 패하며 준우승에 그쳐야 했다. 아르헨티나의 승부차기 1번 키커로 나섰던 메시는 공을 골대 위로 넘기는 실축을 하고 말았다. 패배가 확정되는 순간 메시는 자신의 책임이라는 듯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다.

 

 

29개 트로피의 사나이, 국가대표 조기 은퇴

 

1993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 이후 메이저 대회에서 한 차례도 정상에 오른 적이 없는 아르헨티나는 이번에야말로 우승을 자신했다. 이미 조별예선에서 칠레를 2-1로 꺾었던 데다 메시를 비롯한 황금세대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강한 집념을 이어갔다. 하지만 결승에서 패배하며 눈앞에서 트로피를 놓쳤다. 3년 연속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자 메시는 국가대표 은퇴를 암시하는 인터뷰를 남기고 만 것이다.

 

2004년 만 17세의 나이로 프로에 데뷔한 뒤 줄곧 FC 바르셀로나에서 뛰고 있는 메시는 소속팀에서는 무려 29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12년간 매년 2개 이상의 트로피를 든 셈이다. 현역 선수 중 펠레와 디에고 마라도나 같은 이른바 ‘축구의 신’으로 표현되는 최고의 레전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유일한 선수라는 평이 붙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소속팀이 아닌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메시의 성적은 초라하다. 2005년 세계청소년선수권(현 U-20 월드컵) 우승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의 성과가 있지만 모두 연령별 대표팀이다. 성인 대표팀에서는 준우승만 4차례다.

 

1987년생인 메시는 아직 20대이기 때문에 그의 국가대표 은퇴 선언은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최근 들어 현역 선수로서의 생활은 이어가되 그 전에 국가대표를 은퇴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폴 스콜스는 만 30세이던 2004년 잉글랜드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그는 “가족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박지성 역시 만 30세인 2011년 아시안컵을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물러났다. 잦은 장시간 비행으로 무릎 상태가 나빠진다는 이유가 있었다. 

 

 

아르헨티나 축구팬들이 부에노스아레노스공항에서 “메시는 떠나지 않는다”는 의미의 피켓을 들고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다.


 


“국가대표 메시는 항상 쫓기고 있었다”

 

국가대표 조기 은퇴는 소수의 사례일 뿐이다. 대다수 스타플레이어는 30대 초중반, 완전한 현역 은퇴를 1~2년가량 앞두고 국가대표에서 물러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메시는 바르셀로나에서 큰 부상 없이 여전한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 이번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다. 4경기만 출전하고도 5골을 기록하며 대회 득점 2위에 올랐다. 특히 미국과의 4강전에서 환상적인 프리킥으로 자신의 A매치 55호골을 터트려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보유하고 있던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개인 최다골(54골) 기록을 깼다. 

 

메시의 선택은 심리적 피로감이 극한에 달한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 당시에는 헛구역질을 하다가 구토까지 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의 저명한 스포츠 심리학자 레이너 마틴스는 “신체적으로 느끼는 불안의 정도가 커 보인다. 메시는 국가대표팀에 오면 늘 고통스러워한다”고 말했다. 메시의 팀 동료였던 차비 에르난데스는 “바르셀로나의 메시는 늘 웃는 표정으로 경기를 즐기는데, 아르헨티나의 메시는 항상 무언가에 쫓기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메시는 1987년 아르헨티나의 로사리오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성장호르몬 장애를 겪었고, 그의 재능을 높이 산 바르셀로나가 의료 지원을 약속해 2000년 그의 가족 모두가 스페인으로 이주했다. 적잖은 아르헨티나 국민과 언론이 그의 정체성을 의심해 논란이 인 적도 있다. 그런 의심을 벗기 위해 메시는 2011년부터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주장 완장을 찼다. A매치에서는 누구보다 열심히 국가(國歌)를 불렀다. 이번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에서는 대회 내내 우승을 향해 내달렸지만 또 실패했다. 그렇게 모두의 과도한 기대치와 그것을 채우지 못하는 현실 사이에서 가장 힘들었던 이가 바로 메시 본인이었다.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의 잇단 실책이 메시의 결심에 결정적인 동기가 됐다는 주장도 있다. 세계 최고의 실력을 지닌 대표팀인데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 축구협회는 수뇌부의 공금 횡령과 부정 선거 등이 이어졌다. 지난 브라질 월드컵 당시에도 대표팀 포상금 지급 문제를 놓고 비리가 일어 선수들로부터 지탄을 받기도 했다. 중재 역할을 했던 메시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는 분석이다.

 

메시 본인도 최근 조세 회피 문제로 도덕성에 금이 간 상태다. 메시는 최근 탈세 혐의로 스페인 법원으로부터 21개월 징역형과 벌금을 선고받았다. 스페인에서 2년 미만 징역의 경우 집행유예이기 때문에 실제 교도소에 수감되지는 않지만 메시의 신변에 큰 문제가 생긴 것은 분명하다. 

 

메시의 국가대표 은퇴 선언은 조국뿐만 아니라 세계를 뒤흔들었다. 마라도나와 펠레 등 축구 영웅들은 입을 모아 “심정은 이해하지만 은퇴를 번복해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아르헨티나의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은퇴 재고를 요청했다. 아르헨티나 축구협회는 즉각 새 감독을 선임하고 개혁을 약속했다. 브렉시트에 비유한 멕시트(MESSI+EXIT)는 과연 좌절될까. 전 세계 축구 팬들의 눈이 메시의 결심에 쏠리고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