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 고(Go)가 뭐길래? 닌텐도의 전략 해부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07.12 16: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실과 게임이 만나면 이런 모습일까. 요즘 미국에서 이상 열기를 뿜고 있는 게임이 하나 있다. 스마트폰을 들고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길거리를 돌아다닌다. 증강현실(AR)로 비춰지는 화면 속 현실에서 이들은 포켓몬을 찾는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비춰지는 내가 걷는 거리에 숨어있는 포켓몬을 찾아서 포획하라! 이게 이 게임의 임무다. 포켓몬이 나타나면 쫓아가서 포켓볼을 날려 잡아야 한다. 아파트 주차장, 편의점 뒤, 골목길 어귀, 횡단보도 등... 어디에 이들이 숨어있을지는 알 수 없다.

7월6일 미국, 호주, 뉴질랜드에서 다운로드가 시작된 스마트폰용 게임 '포켓몬 고(GO)'는 출시 당일부터 랭킹 맨 윗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시장 데이터 제공업체인 '업 애니'에 따르면, 다운로드가 시작된 3개 국가에서 포켓몬 고가 다운로드 및 매출에서 1위가 되는 데는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웹사이트 분석기업인 '시밀러웹'은 "7월11일 일간 활동 사용자수로 볼 때 미국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트위터를 초과하는 기세"라고 전했다.

폭발적인 열광은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를 만들고 있다. 포켓몬 고에 열중한 나머지 도랑 아래로 떨어져 중상을 입은 경우도 있고 미국 세인트루이스 등의 지역에서 일어난 무장 강도 사건의 용의자들은 '포켓몬 고'를 통해 피해자를 유인한 것으로 추정됐다. 심지어 포켓몬을 잡기 위해 일부 이용자들이 공공기관에 마구 들어오는 일도 생겼다. 7월6일 호주 노던주의 다윈 경찰서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곳이 포켓스탑(게임에 꼭 필요한 아이템을 구할 수 있는 장소)으로 지정돼 수많은 사람들이 경찰서를 방문하는 바람에 곤혹을 겪고 있다"며 이용자들의 양해를 구했다.

현실을 포켓몬 사냥터로 만든 게임 하나가 닌텐도에 가져다 준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7월11일, 출시된 지 닷새째인 날. 닌텐도의 주가는 전주 금요일보다 24.5%가 오른 2260엔을 기록했다. 24.5%는 1983년 이후 최대의 상승률이며 시가총액도 75억 달러가 증가했다. 닌텐도는 이 게임의 개발을 직접 하진 않았지만 게임을 개발한 회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존 주력 사업에 집착하면서 시장의 변화를 잘못 파악했다는 평가를 받은 닌텐도였다. 경영 실패의 대표적인 기업으로 대학 강의에 종종 등장한 곳이 닌텐도였다. “우리는 세상에 없는 것을 내놓았고 지금도 스마트폰에 없는 것을 개발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가 시장에서 혹독한 심판을 받은 게 불과 얼마 전이다. 2010년부터 애플 아이폰과 삼성 갤럭시폰 등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 닌텐도의 추락은 가시화됐다. 과거 콘솔 게임의 강자는 모바일 게임 열풍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스마트폰은 게임기가 될 수 없다’ ‘우리의 경쟁자가 아니다’라는 오판이 패착으로 지적됐다.

도태의 아이콘처럼 여겨지고 있던 2015년 3월17일. 닌텐도는 갑작스럽게 모바일 게임업체 DeNA와 업무 및 자본 제휴를 발표했다. 지금까지 닌텐도에서 개발한 게임은 닌텐도의 게임기에서만 즐길 수 있었다. 이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일체형 사업'을 닌텐도가 재검토하는 것으로 시장은 받아들였다. 스마트폰용 게임으로 닌텐도가 무언가를 내놓다는 의미였다. 

 

원래 가정용 게임 시장은 하드웨어의 세대 교체에 크게 의존해왔다. 닌텐도의 '패밀리컴퓨터',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등이 겨루던 이 시장에서는 세대 교체의 때가 오면 플랫폼의 승패가 도드라졌다. 플레이스테이션이 많이 팔릴 경우 게임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는 플레이스테이션에 게임 소프트웨어를 주로 공급해오는 게 합리적인 전략이었다. 그러다 보니 닌텐도처럼 하드웨어를 공급하고 플랫폼을 만드는 기업은 몇 년에 한 번 오는 세대 교체 주기에서 무조건 승리하는 게 지상 과제였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업계의 경쟁 원리가 크게 바뀌었다.

스마트폰 게임에 진출하기로 한 닌텐도는 올해 3월에 자사 최초의 모바일 게임을 내놓았다. 'Miitomo(미토모)'라고 이름이 붙은 이 게임은 기대에 영 미치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매출이 약 100만 달러에 불과했다. 포켓몬 고가 나오기 전까지 닌텐도가 얼마나 우울했을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실적 전망도 우울했고 "닌텐도의 체질이 변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우울했다.

하지만 포켓몬 고가 등장하면서 그 모든 걸 날려버렸다. 예상 이상의 인기 탓에 서버에 문제가 생겨 영국과 네덜란드 등의 국가에서는 다운로드 개시가 늦춰지고 있을 정도다. 이런 열광이 계속된다면 새로운 수익도 창출할 수 있다. 포켓몬 고의 다운로드는 무료지만 게임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은 유료로 판매되고 이는 매출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포켓몬을 잡는 데 도움이 되는 포켓볼은 1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주가의 급상승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게임이 닌텐도에 직접 가져올 이익에 대한 기대감일까. 모건 스탠리는 "닌텐도가 올릴 이익은 그리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포켓몬 고가 보여주는 닌텐도의 방향성에 사람들이 주목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닌텐도는 지금까지 모바일이라는 신세계에 탑승하는 속도가 느렸고 꽤 소극적인 기업이었다. DeNA와의 제휴도 스스로의 판단보다는 투자자들이 거듭 요청해서 이뤄졌다. 하지만 미토모의 실패를 딛고 일궈낸 포켓몬 고의 성공은 ‘친숙한 캐릭터와 혁신적인 게임의 조합’이 어떻게 승리의 방정식이 될 수 있는 지를 증명했다.

닌텐도는 이를 통해서 앞으로도 더욱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게 됐다. 특히 가을에 자사의 오리지널 인기작 2개가 스마트폰 게임으로 출시되는데 포켓몬 고가 끌어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 흥미로운 대목은 닌텐도가 우리에게 친숙한 오리지널 게임을 엄청 많이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중에 최고라고 불리는 '슈퍼마리오'가 아직 대기 중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