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하락은 경쟁의 산물
  •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15 15:59
  • 호수 1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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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사회라는 공동체가 존재하기 위해선 ‘우리’라는 의식이 공유돼야 한다. 집단의 구성원들이 동의하는 규칙이 작동하며 상호 협력하는 것이 궁극적으론 구성원 개인들에게 이득이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누군가 전체를 위해 희생한다면 거기에 상응하는 대가가 분명히 주어져야 한다. 경쟁은 존재하지만 패자가 도태되는 지경에 이르거나 특정인이 부당한 특권을 누리게 된다면 공동체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공동체를 존속시키는 핵심은 신뢰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기본적 공동체의 조건을 얼마나 만족시키고 있는 것일까.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인이나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공무원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공권력의 막중함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을까. 선뜻 긍정적으로 답변할 수 없다. 솔직히 말하면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직자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국민의 정서이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재벌과 고위공무원들의 비리를 보면서 도대체 사회 지도층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신뢰가 무너지고 있음을 우려하게 된다.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는 공동체의 소중함을 배우거나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친인척 관계의 가치가 무의미해진 것은 오래됐다. 1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사촌이 넘는 친족들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타인과 다름없다. 자녀들이 중학교만 들어가면 공부하느라 바쁘다며 부모들은 집안 행사에 참석시키지 않는다. 혈족이라는 1차 집단을 통한 공동체에 대한 경험이 사라졌다.

 

학교는 더 이상 공동체 속의 개인 역할을 익힐 수 있는 기능을 하지 못한다. 중·고등학교 교육은 대학입시에 맞춰져 있고, 대학은 취업을 위한 수단일 따름이다. 교육은 경쟁에서 승자가 되는 법을 가르치고 있을 따름이다. 이렇듯 극심한 경쟁은 학생들에게 승자가 미덕이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성공이라는 획일적 가치관을 심어줄 따름이다. 더불어 같이 산다는 것과 공동체에 기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별나라 이야기일 따름이다.

 

과도한 경쟁 속에서 개인은 늘 불안하며 자기를 돌보기에도 벅차다. 타인을 신뢰하거나 배려하기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게 만든다. 그리고 승자들은 그동안의 노고를 보상받기 위해 차별적이며 편법적 특권을 거침없이 누리려 한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홉스가 상정한 원시사회와 다를 바가 없게 됐다.

 

경쟁의 불안 속에서 살아야 하고 경쟁에서 벗어난 은퇴 후에는 더 큰 불안을 겪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사회에서 신뢰를 이야기하는 것은 한가로운 해법으로 보이지만 문제 해결의 출발점임에는 틀림없다. 그동안 빠른 경제성장이 경쟁의 긴장이 주는 결실이었다. 이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경제발전 모형은 불가능하다. 개인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국가가 거대 담론을 제시하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행복한 대한민국까지는 아니더라도 불행한 대한민국은 막아야 한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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