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 빙자한 사실상의 포르노
  •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22 10:23
  • 호수 1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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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색(食色)의 동물적 본능에 가장 충실한 《잘 먹는 소녀들》“시청자는 개·돼지가 아니다” 반감 불러

본격 걸그룹 ‘먹방’ 대결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됐다. JTBC의 《잘 먹는 소녀들》이다. 지난 6월29일 첫 방영된 이 프로그램에서는 걸그룹 멤버들이 짜장면·탕수육·닭튀김 등 음식을 누가 더 먹음직스럽게 먹는가를 놓고 먹방 대결을 펼쳤다. MC들은 마치 격투기 경기처럼 중계했고, 연예인 패널들과 방청객들은 소녀들이 먹는 모습에 집중하며 찬탄을 연발했다. 8강 승리자가 4강전에서 또 먹고, 거기에서 이긴 사람이 결승에서 또 먹는 구조였다.

 


최근 JTBC 예능은 다소 주춤한 상황이다. 한때 tvN은 ‘신드라마왕국’, JTBC는 ‘신예능왕국’으로 비지상파계의 원투펀치로 자리매김할 듯한 기세였지만, JTBC의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난국을 타개할 한 방이 필요했는데, 이에 걸그룹 먹방 토너먼트라는 회심의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먹방은 원래 방송국들이 사랑하는 포맷이었고, 최근 들어선 그 인기가 더욱 커졌다. 여기에 걸그룹까지 추가하면 더더욱 시청자를 자극할 수 있을 법하다. 또 제작진은 요즘 음악경연 프로그램이 인기인 점에 착안, 경연의 구조에 음악 대신 음식을 집어넣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요즘 잘나가는 먹방·걸그룹·경연 소재를 총출동시켜 《잘 먹는 소녀들》이라는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먹방은 ‘허가받은 포르노’ ‘푸드포르노’

결과는 ‘재난’이다.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그나마 시청률이라도 좋으면 최악은 면했을 텐데, 1%에도 못 미쳤다. 스타급 연예인을 스무 명 가까이 투입하고 받은 성적표다. 실익도 없이 욕만 먹은 것이다. 결국 먹방 토너먼트는 폐지됐다. 프로그램 자체가 폐지되는 것은 아니고, 형식만 폐기한 채 새로운 형식을 모색한다고 한다. 먹방·걸그룹·경연 중에서 경연을 빼고 먹방과 걸그룹을 결합시킨 음식 토크쇼 형식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투유프로젝트-슈가맨》도 첫 방송 당시 혹평이 쏟아졌고, 새로운 형식으로 개편한 후 순항한 바 있다. 이번 《잘 먹는 소녀들》의 형식 개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최근 영화 《내부자들》의 “개·돼지” 대사가 큰 화제가 됐다. 한 교육부 고위관료가 “민중은 개·돼지” 운운했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는 개·돼지가 아니다”라는 대중의 질타가 쏟아졌다. 《잘 먹는 소녀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발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잘 먹는 소녀들》은 그야말로 본능에 충실한 기획이었다. 일단 먹방 자체가 본능이다. 인간은 자기보존과 종족보존이라는 본능적 욕구를 가진다. 자기보존을 위해선 먹어야 하고, 종족보존을 위해선 성행위를 해야 한다. 그래서 음식과 섹스, 즉 식색(食色)은 예로부터 수행자를 가장 유혹하는 욕망의 두 근원이었다. 먹방은 이 중에서 음식에 대한 욕망을 대리만족시켜준다. 그래서 인간은 먹방을 보면 무엇에라도 홀린 듯이 빠져든다. 섹스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먹는 것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괜찮기 때문에 먹방은 ‘허가받은 포르노’라고 할 수 있다. 과거부터 먹방은 제작비 대비 시청률 효율이 가장 좋은 포맷으로 방송가에 정평이 났었다. 

그래도 방송사들이 먹방 그 자체만 내세우진 않았다. 여행과 결합시킨다든지, 육아와 결합시킨다든지, 혹은 전문가의 음식문화 해설이나 맛집 탐방 등 스토리텔링이 깔린 상태에서 먹방을 적절히 배합하는 나름 ‘인간의 얼굴을 한 먹방’이었다. 《잘 먹는 소녀들》은 그러한 복잡한 요소들을 모두 걷어내고, 밑도 끝도 없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먹는 모습 그 자체에만 집중한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동물적 본능에 가장 충실한 기획이었다. 이른바 ‘푸드포르노’였던 셈이다.

여기에 소녀들을 집어넣고 주로 남성들로 이루어진 방청객들이 소녀의 입에 집중하는 구도를 만들었다. 예로부터 먹는다는 말은 음식과 성에 공통적으로 쓰였는데, 주로 남성들이 중의적으로 썼다. 또 여성이 입을 벌려 무언가를 먹는 모습은 남성들에게 성적인 이미지로 많이 소비돼왔다. 이 프로그램은 걸그룹 소녀들이 입을 벌리고, 집어넣고, 삼키는 모습을 클로즈업 고속촬영(슬로모션)으로 부각시켰다. 성적인 느낌이 강할 수밖에 없다. 노골적인 먹방에 성적인 소녀 코드까지 더해 포르노적 본능 자극성이 더 강해졌다.

시청자가 동물적 수준이라면 그저 빠져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우리는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라며 봉기했다. 실제로 《잘 먹는 소녀들》의 너무나 노골적인 내용은 강한 불편함을 초래했다. 개인적으로 소비하는 인터넷 방송이라면 이런 포르노적 내용도 낄낄대며 즐길 수 있겠지만, 버젓한 방송 프로그램이 그렇게 나오자 시청자들 내부에서 ‘이건 아니다’라는 경종이 울렸다. 

걸그룹은 방송가에서 다양하게 소비된다. 섹시한 요부, 순수한 소녀, 최근엔 카리스마 넘치는 여전사 이미지까지 여러 캐릭터를 소화해야 한다. 예능에선 일종의 예쁜 꽃처럼 외모로 소비되거나, 출연자들의 성적 욕망의 대상 혹은 로맨스 판타지의 대상으로 소비된다. 그런 역할에 맞추기 위해 항상 이미지를 가꿔야 한다. 걸그룹이 지켜야 할 본분을 알아본다는 《본분 금메달》(KBS2)에선 언제나 귀여운 미소를 짓는 얼굴과 몸무게를 정직하게 밝히는 걸 걸그룹의 본분이라고 제시했었다. 몸무게를 밝히라는 건 항상 다이어트 관리에 만전을 기하라는 얘기다. 실제로 걸그룹의 몸이 조금만 불어나도 네티즌은 질타한다.

그런데 또 한편으론 리얼버라이어티 먹방 때 내숭 떨지 않고 먹성 좋게 먹어대는 모습을 선보여야 한다. 몸이 불어나도 욕을 먹지만 음식 앞에서 몸을 사려도 욕을 먹는다. 급기야 《잘 먹는 소녀들》에선 걸그룹에게 먹방 대결까지 요구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먹어대기만 하는 방송이다. 이렇게 먹다 살이 찌면 몸관리에 불성실했다며 대중들은 돌아설 것이다.

이것은 걸그룹 멤버를 인격이 아닌 시청자의 욕망을 해소해주는 인형 정도로 소비하는 현상이다. 그때그때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 즉 순수·섹시·날씬·털털 등 다양한 옵션이 바로바로 구현되는 존재로 소비되는 것이다. 연예인으로 성공하기 위해서 걸그룹은 기꺼이 이 구조 속에 몸을 던져야 한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하다 말고 불어터진 짜장면과 눅눅해진 치킨을 카메라 앞에서 탐식하는 연기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잘 먹는 소녀들》은 이런 구조의 일단을 적나라하게 보여줬기 때문에 더더욱 시청자를 불편하게 했다. 아무리 본능을 자극해도 시청자는 이런 불편함을 인지하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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