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 김영사 전 사장 “말 안 들으면 쇠고랑 채우겠다고 위협했다”
  • 조해수·안성모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6.07.25 09:04
  • 호수 1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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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前 김영사 사장 “김강유 회장이 회사 빼앗기 위해 나를 내쫓았다”

박은주 전 김영사 사장과 김강유 회장의 경영권 분쟁으로 촉발된 이른바 ‘김영사 사태’가 제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김 회장 측은 지난 6월말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횡령·배임) 혐의로 박 전 사장을 서울 중앙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박 전 사장이 허위로 회계처리를 하거나 무단으로 금원을 계좌이체하고, 자신의 개인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등의 방식으로 김영사에 130여억원의 금전적 손실을 입혔다는 것이다. 특히 김 회장 측은 박 전 사장이 김OO 새누리당 의원의 친인척에게 수억원을 임의로 지급했으며, 김 의원 측이 만든 마케팅 및 홍보대행사에 수십억원의 일감을 몰아줬다고 주장하고 있어 향후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김영사 사태의 시작은 2014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경영 일선을 떠나 있던 창업주 김강유씨가 회장으로 선임되고 김 회장의 형이 감사로 임명됐다. 반면 박 전 사장은 편집만을 전담하는 대표이사로 권한이 대폭 축소됐다. 박 전 사장은 이후 5월에 김영사를 사직했고 한국 출판인회 회장직도 중도 사퇴했다. 

 

박은주 전 김영사 사장

 

법정 다툼은 다시 1년여가 흐른 뒤 본격화됐다. 2015년 7월 박 전 사장은 김 회장을 350억원 규모의 배임과 횡령, 그리고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김 회장이 실제 업무를 보지 않으면서 급여 명목으로 30여억원을 받아가고 친형의 채무에 연대보증을 서게 해 회사에 30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또한 박 전 사장이 경영권을 포기하고 김영사 건물 지분 등 자산 285억원을 양도하는 대신 김 회장 측에서 보상금 45억원을 지급해주기로 했지만 결국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김 회장을 불기소 처분했다. 박 전 사장 측은 현재 불기소 처분에 대해 불복하면서 재정신청 및 재항고를 제기한 상태다. 


박 전 사장은 김 회장이 무혐의 처분을 받은 이후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며 말을 아껴왔다. 검찰 항고나 재항고, 재정신청을 할 때도 입장을 일절 밝히지 않았다. 김영사 사태도 이렇게 잠잠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이번에 김 회장이 박 전 사장에게 역공을 가하며 김영사 사태는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박 전 사장은 1년여에 가까운 침묵을 깨고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이번 고소 사건을 비롯한 김영사 사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박 전 사장은 “언론플레이로 비쳐질까 봐 언론과의 접촉을 자제해왔다. 그러나 진실이 호도되는 거 같아 인터뷰를 결심하게 됐다”면서 7월19일 서울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기자와 만나 그동안의 심경과 김 회장 측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상세히 열거했다. 


그는 “김 회장 측이 주장하는 횡령 및 배임 혐의는 모두 날조된 음해”라면서 “김 의원과 관련된 횡령·배임 혐의는 물론 김 회장 측에서 제기하는 모든 의혹에 대해서 반박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영사 사태의 본질은 김 회장이 매출 500억원대로 성장한 김영사를 통째로 빼앗기 위한 술수”라면서 “김 회장 측의 이번 소송은 나에게 최종 항복을 받기 위한 압박에 지나지 않는다. 즉, 자산 285억원을 양도하는 대신 김 회장 측에서 지급하기로 한 보상금 45억원을 주지 않기 위해 형사소송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전 사장은 3시간여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침착한 모습으로 조목조목 자신의 주장을 펼쳤지만, 청춘을 바친 김영사에서 쫓겨난 지금의 심정을 말할 때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서울 가회동 ‘김영사’ 건물


 

지난해 7월 김 회장을 고소한 후 1년여 동안 침묵을 지켜왔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김 회장이 증거불충분으로 혐의 없음을 받은 것이 2015년 11월이다. 이후 서울고검에 항고를 신청했는데 이마저도 기각됐다. 이후 대검찰청에 항고를 했고, 법원에 재정신청도 했다. 언론을 비롯한 외부와의 접촉은 최대한 자제해왔다. 자칫 언론플레이로 보이면서 진실이 왜곡되는 것이 두려웠다.

 


1년여 만에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하게 됐다. 심경의 변화가 있었나.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지난 6월 김 회장 측에서 나를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고소했기 때문이다. 배임·횡령이라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고소 건과 맞물려 나의 명예와 관계되는 이상한 얘기도 퍼져 나갔다. 진실을 밝히고자 인터뷰라는 큰 결심을 하게 됐다. 인터뷰를 통해 정의가 널리 밝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김 회장은 배임·횡령과 관련해 무혐의를 받았다. 이 때문에 김영사 사태는 잠잠해지는 듯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김 회장 측에서 박 전 사장에게 소송을 진행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나에게 완전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서다.

 


항복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현재 김 회장 측과 가회동 주택, 김영사 지분, 퇴직금 등과 관련한 사안이 해결되지 않았다. 2014년 9월 김 회장 측과 자산 280여억원을 양도하는 대신 보상금 45억원을 받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2015년 7월 김 회장 측에서 합의를 원점으로 돌리겠다는 통지서를 보내왔다. 현재 이 45억원에 대한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김 회장 측은 이 민사소송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갑자기 나를 배임·횡령 혐의로 형사고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김 회장 측에서 제기한 횡령·배임 혐의에서 현직 새누리당 국회의원인 김OO씨가 등장한다. 먼저 김 의원의 친인척에게 2억4000여만원을 임의 지급하면서 횡령을 했다는 것이 김 회장 측의 주장이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김 의원 측에 전달된 2억여원은 홍보 및 마케팅 비용을 정당하게 지불한 것이다. 김 의원은 2001년 김영사에서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20만 부가 넘게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당시 김 의원은 특강을 다니면서 자신의 책뿐만 아니라 김영사의 다른 책들도 적극적으로 홍보했고, 이로 인해 다른 책들도 잘 팔렸다. 그래서 신문광고보다 김 의원의 기업마케팅이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매달 신문광고 1회분에 해당하는 500만원을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김 의원은 2003년 1월부터 2008년 8월까지 1200회가 넘는 특강을 다니면서 홍보활동을 했다. 김 의원의 특강 내역은 회사 문서로 전부 기록돼 있다. 이 활동에 대한 약속된 액수를 지불한 것일 뿐이다.

 


그런데 이 돈이 김 의원의 친인척들의 계좌로 송금됐다. 무엇 때문인가.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일종의 출판계 관례라고 보면 된다. 당시 소득세를 원천징수한 나머지를 송금해서 세금 문제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김 회장 측에서는 박 사장이 김 의원과 친인척들이 만든 마케팅 및 홍보 회사에 일감을 독점적으로 몰아주고 약 34억원을 지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영사에는 이미 마케팅 및 홍보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가 있었기 때문에 새롭게 영업대행사를 둘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 김 회장 측의 입장이다.


2010년 김영사는 직원이 100명을 넘어가고 있었다. 100명을 초과하게 되면 장애인 의무고용, 노무관리사 의무채용, 세제상의 특례 제외 등 각종 애로사항이 발생하게 된다. 당시 이 문제에 대해서 경영진과 논의했고, 이 논의에서 자회사가 아닌 신규 판매대행사를 설립하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당시 이를 제안한 사람이 김 회장 측근인 김○○씨다.


이후 김영사의 마케팅 활동을 해왔던 김 의원 측과 상의해서 월드맥스원을 설립한 것이다. 월드맥스원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모두 김영사에서 홍보 및 마케팅 업무에 종사했던 사람들로 구성됐다. 또한 월드맥스원의 자금 역시 김영사의 경영지원본부가 관리했다. 

 

 


김 회장 측에서는 박 전 사장이 너무 높은 연봉을 받고 있었다는 점을 문제 삼기도 했다.


2008년 연봉이 6억원에서 8억원으로 인상 조정됐다. 2007년 매출이 출판계 최초로 300억원을 넘었고, 전해 대비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모두 2배 이상 증가했기 때문이다. 물론 주주총회 의결을 거쳤다. 당시 감사가 발의했고 주주들이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김 회장 측은 박 사장이 방만한 경영으로 연이어 적자를 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내가 대표이사로 있는 동안 한 번도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다만 2012년과 2013년 당기순이익이 적자인 이유는 국가시책에 맞춰 2년간 임직원들의 퇴직연금충당금 30여억원을 저축했기 때문이다.

 


김 회장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1983년도 김영사 편집장으로 입사하면서 처음 알게 됐다. 입사 당시에는 김 회장이 불교 수행을 하는 사람인지 전혀 몰랐다. 단순히 오너와 편집장의 관계였다. 그러던 어느 날 김 회장이 나에게 “불연(佛緣·부처와의 인연)이 깊어 보인다”면서 법당에 와보라고 했다. 오너의 말이기도 했고, 평소 불교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법당을 방문했다.


법당에 가 보니 신도들이 김 회장에게 삼배(三拜)를 하고, ‘미륵여래(彌勒如來)’라고 부르기도 했다. 김 회장을 떠받드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조성돼 있었다. 이후 20년간 법당에서 숙식을 했다. 그러나 김 회장과의 사제관계는 2001년 김 회장이 법당을 떠나 잠적하면서 완전히 끝났다.

 


김 회장이 잠적을 끝내고 김영사로 돌아오면서 갈등이 시작된 것인가? 김영사 사태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2001년부터 6년간 잠적했다가 돌아온 김 회장은 당시 1만 평 규모의 부동산을 개발하고 있었는데, 이 사업이 망하면서 형제들에게 빌린 돈 마저 갚아주기 어렵게 됐다. 이 부실을 어떡하든 김영사를 통해 만회하려고 했다. 친형의 회사에 대한 대여와 대출보증 등을 강요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형 회사를 인수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런 요구를 내가 고분고분 듣지 않으니까 결국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어 나를 쫓아낸 것이다.

 


그러나 김 회장 측이 제출한 자료를 보면 박 전 사장 본인이 재산 포기각서에 서명을 했고, 스스로 모든 잘못을 시인하는 녹취도 있다. 


2014년 주총이 끝난 후 김 회장이 용인 법당으로 나를 불렀다. 2만 평 법당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외진 기도방 옆 음산한 곳에서 건장한 남자신도들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심한 위협을 느꼈다. 이때 미리 만들어 두었던 가회동 주택 포기각서와 김영사 주식 포기각서 각 2장씩 모두 4장을 꺼내며 서명을 하라면서 “서명 안 하면 쇠고랑 채워서 교도소에 보내겠다”는 등 위협을 가했다. (양쪽이 한 장씩 나눠 갖는 관례와 달리) 서명을 시킨 4장 중 한 장도 받지 못했다. 나는 재산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김영사와 직원들만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김 회장이 회장실로 부르더니 “네가 무조건 잘못했다고 말하면 사장의 지위를 유지시켜주고, 박은주의 김영사를 만들어주겠다”면서 “안 그러면 평생 교도소에서 못 나오게 할 테니 알아서 해”라고 말했다. 나는 책상 앞에 놓인 메모를 보고 읽으면서 무조건 잘못했다는 녹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회유와 협박이 있었다지만 김 회장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김 회장과 오랜 기간 종교적인 사제지간으로 지낸 것이 영향을 미친 것인가.


기독교가 순종을 미덕으로 여기듯 불교는 복종을 중시한다. 사제지간은 부모자식보다 더한 관계다. 20여 년간 김 회장 밑에서 법당 생활을 한 것이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김 회장은 복귀 후 처음부터 나를 쫓아내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법적인 문제까지 자문을 받으면서 나를 김영사에서 완전히 쫓아내려는 계획을 처음부터 갖고 있었다. 

 


30여 년 동안 근무했던 회사에서 쫓겨났다.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2014년 사직서를 제출할 때 엄청난 정신적 압박감을 느꼈다. 지금도 진실이 왜곡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전념하겠다. 일단 당면한 소송에 최선을 다할 것이며, 이 인터뷰를 통해 조금이라도 진실이 밝혀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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