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 케이스에 걸려들면 큰일” 재계 전전긍긍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press.com)
  • 승인 2016.08.02 09:21
  • 호수 1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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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후폭풍’, 기업 대관·홍보 부서 세부지침 마련 분주

7월28일 헌법재판소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리자 재계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당장 대관(對官)·대언론 업무를 책임진 부서들은 법 시행에 따른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는 모습이다. 대관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한 유통기업 임원은 “경기 회복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김영란법’이 정상적인 대외활동까지 위축시킬까 걱정하고 있다”고 사내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재계는 그동안 관행적으로 이뤄진 것까지 김영란법 시행 후 ‘부정한 청탁’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는 눈치다.

 

일부 기업에서는 경제위기 극복과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대기업 총수에 대한 사면이 논의 중인 마당에 헌재가 합헌 판결한 것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있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 내 기업 프렌들리(기업 친화) 분위기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자칫 김영란법이 이 같은 해빙 무드에 찬물을 끼얹을까 걱정하고 있다. 논란 끝에 언론인이 포함되자 대언론 창구인 홍보 부서도 법 시행이 몰고 올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대기업 홍보담당 임원은 “기자까지 부도덕한 집단인 양 처벌 대상에 집어넣으면 당장 우리 같은 홍보맨들은 어떻게 일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재계는 현재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세부지침 마련으로 분주하다.


“정상적인 마케팅 활동 어려움” 하소연

 

홍보 담당자들의 우려는 무엇보다 법 시행으로 홍보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오랜 시간 노하우를 쌓아온 지금의 홍보 방식이 김영란법 시행으로 원천적으로 차단되면서 당장 빠른 시일 내 새로운 형태의 대언론 대응 방식을 찾아야 한다. 지금까지 기자들과의 대면(對面) 접촉을 통해 홍보하는 것은 국내 기업의 오랜 관행과도 같았다. 그러다 보면 친분이 쌓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식사 자리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이하로만 제공해야 한다. 초과된 금액을 제공하면 처벌받는다.

 

또 일부에서는 김영란법과 관련해 논평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한 대기업 홍보담당 임원은 “법 시행이 확정된 마당에 뭐라 왈가왈부할 상황이 못 된다. 법이 생긴 만큼 일단은 최대한 따르려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형 IT(정보기술)업체에 근무하는 한 홍보 담당자는 “지금까지 홍보맨(홍보책임자)이 기자를 만나는 것은 자사 상품이나 서비스를 정확하게 알리기 위한 정상적인 마케팅 활동이었다. 부정한 것을 눈감아 달라는 식이거나 나중에 문제가 생길 때를 대비한 보험용이 아니다. 그런데 헌재가 이렇게 정치적으로 판결을 한 이상 도대체 어떻게 정상적인 홍보 활동을 하라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불편함을 우려했다. 일부 기업은 당장 법 시행이 예고된 9월28일 이후부터 홍보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상당수 대기업들은 헌재의 합헌 판결이 나온 이상, 법 시행 전까지 신속히 내부지침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합헌 판결을 이미 예상해 세부지침을 마련한 곳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직원은 “현재 법무팀과 홍보지침을 조율 중이며 조만간 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 중견기업 임원도 “삼성·현대차 등 재계 순위 상위권 그룹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고 내부지침을 세울 계획”이라면서 “‘시범 케이스’로 걸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최대한 조용히 활동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현재로선 김영란법 시행으로 각종 미디어 행사는 축소 내지는 무기한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기자들을 데리고 해외취재를 다녀오는 팸투어 행사는 향응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대거 취소하는 모습이다. 현재 기업 관련 해외 팸투어는 현지 체류비와 왕복항공권, 식사 등 제반 소요비용의 상당부분을 주최 측이 부담해 왔다. 하지만 이도 9월28일 이후부터는 법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 때문에 몇몇 기업들은 자사 홍보를 위한 주요 미디어 행사를 법 시행 전으로 앞당겨 추진하려는 움직임이다. 해외 주최는 줄어드는 대신 국내에서 열리는 대언론 행사는 하반기부터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재계는 지금까지 관행처럼 해 온 마케팅·홍보 방식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방침이다.


“해외 미디어 행사·사외보 제작 축소 불가피”

 

또, 향응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 골프 라운드도 법 시행 이전으로 앞당기는 분위기다. 한 골프장 업계 관계자는 “서울·경기지역 주요 골프장은 9월 중순까지 주말 부킹이 꽉 찬 상태며, 접대 자리는 아니지만 굳이 문제를 키울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고객들이 라운드 시기를 앞당기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김영란법 시행은 사보 기획 및 출판 시장에도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김영란법에서 말하는 언론사 기준은 현행 ‘언론중재 및 피해중재 등에 관한 법’을 따르도록 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현재 주요 기업들이 발행하고 있는 사외보를 비롯해 각종 단체들의 협회보도 언론사로 간주된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법 적용을 받는 언론사는 방송 345곳, 신문 3221곳, 정기간행물 7098곳(잡지 4893, 기타간행물 2259) 등이다. 정기간행물 중 상당수가 기업이 발행하는 사외보다. 따라서 현재 사외보를 만드는 내부 회사 직원이나 외부 기획사 직원 모두 ‘기자’로 간주, 김영란법을 적용받는다. 또, 사외보의 발행인으로 올라가 있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나 협회장 등도 ‘언론인’으로 분류돼, 법 위반 시 처벌을 받는다. 한 사보업계 관계자는 “마케팅 비용을 줄어야 하는 마당에 김영란법마저 시행되면서 사보 제작을 중단하거나 규모를 축소하는 회사들이 많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VIP고객을 대상으로 마케팅 활동을 벌이고 있는 유통업계나 금융권도 현행 사외보 제작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명품 잡지 성격의 사외보를 만들어 온 한 대형 금융사 홍보담당자는 “명품 업체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는 김영란법의 허용수준을 넘는 마케팅 활동이 관행처럼 있어 왔다”면서 “하지만 시행이 확정된 이상 어떤 식으로 VIP 마케팅을 벌어야 할지 고민스럽기만 하다”고 덧붙였다. 또 고객 초청 행사에 있어 김영란법이 규정한 공직자·언론인·사립학교 교원이 포함될 경우에도 처벌받을 수 있어 마케팅 부서에서는 새로운 방식의 고객 응대 행사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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