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터전, 지하철 한 칸
  • 이성진 인턴기자 (smbaww@naver.com)
  • 승인 2016.08.04 09:12
  • 호수 1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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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잡상인, 그들은 왜 불법으로 맞서나

서울지하철 1호선 청량리행 열차 안. 이동통로 창문 너머로 기능성 돗자리를 팔고 있는 지하철 잡상인 A씨의 모습이 보였다. A씨는 손에 쥐고 있던 돗자리를 손수레에 넣고 옆 칸으로 급하게 움직였다. 열차가 정차하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수많은 인파에 뒤섞여 내렸다. 손수레를 끌고 승차장 옆 여자 장애인화장실로 향하는 A씨. 또 다른 잡상인 B씨도 손수레를 끌고 그 뒤를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탑승구 끝 쪽에서 가스분사기와 삼단봉을 찬 두 명의 지하철보안관이 서류파일을 들고 나타났다. 주위를 살피더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졌다. 보안관이 현장을 떠나자 A씨와 B씨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B씨는 “일단 청량리까지 내빼겠다”며 들어오는 지하철에 다시 몸을 실었다. 일명 ‘지하철 잡상인’이라 불리는 이동상인과 이를 단속하는 보안관의 쫓고 쫓기는 순간이다.

 

7월27일 오후 2시 5호선 마장역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 상황도 비슷했다. 김안일·이아름 지하철보안관은 순찰을 시작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우비를 파는 잡상인 C씨와 맞닥뜨렸다. 김 보안관은 폰을 꺼내 이동통로 창문 너머로 C씨를 찍었다. 증거사진이었다. 문을 열고 넘어간 보안관들은 상행위를 제지했다. 이에 순순히 판매를 멈춘 C씨. 지하철에서 내린 보안관은 서류파일을 꺼내 C씨에게 서명을 요구했다. 그러곤 C씨를 개찰구 밖으로 강제 인계한다. 서로가 이 모든 상황에 익숙해보였다(C씨가 서명한 문서는 서울시로 넘어가 과태료를 부과받게 된다). 김 보안관은 “단속이 이뤄져도 이동상인들이 좀처럼 줄지 않는다”며 “이들은 과태료도 잘 납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7월27일 오후 서울 지하철 5호선에서 지하철보안관이 열차 내 잡상인의 물건 판매를 저지하고 있다.


지하철 내 물건 판매, 많은 자본 필요치 않아

 

지하철 잡상인들에 대한 단속 건수는 매년 1만여 건이 훌쩍 넘는다.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단속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1~4호선 내 단속(단속+고발+과태료) 건수만 벌써 2만1074건, 5~8호선은 1만2088건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전체 단속 건수의 절반에 달하는 양이다. 5~8호선 내 단속 건수의 경우 2014년과 2015년 각각 1만8740건, 2만1975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하철 내 상행위 단속은 철도안전법 제47조 ‘여객열차에서의 금지행위’와 제48조 ‘철도 보호 및 질서유지를 위한 금지행위’에 의거해 이뤄진다.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이들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그들은 불법임을 알면서도 왜 끊임없이 지하철에 오르는 걸까.

 

지하철 상행위는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때문에 적은 비용으로 시작할 수 있다. 서울지하철 1호선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D씨는 “이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며 “다른 일을 시작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한다”고 말했다. 어릴 적부터 공장에서 일해 왔다는 D씨는 슬하에 자식만 4명이다. 이 중 대학에 진학한 아이가 3명. 대학등록금 부담이 만만치 않다. 사업밑천을 마련할 겨를이 없다.

 

 점점 먹어가는 나이와 따라주지 않는 체력도 문제다. 상인들에게 물건을 유통해주는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동상인의 주 연령층은 50대이며 70~80대 노인들도 있다. D씨는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도 많은데 우리같이 나이 많은 이들을 어느 제대로 된 회사에서 써주겠냐”고 푸념했다.

 

1호선에서 돗자리를 파는 E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E씨는 몇 년 전 식당을 운영하다 문을 닫고 이 일에 뛰어들었다. 그는 “돈이 없으니 가게를 다시 차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나이는 많고 가진 기술은 없으니 힘들어도 참고 지하철을 돈다”고 말했다. 

이들의 물건 판매는 결코 만만치 않다. 다이소나 천원숍·천냥하우스 등 초저가 생활용품숍이 등장하면서 이들의 매출은 급격히 줄었다. 과거에는 이들이 판매하는 값싼 제품에 관심을 보이며 물품을 구매하는 승객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진 것이다. 나빠진 경제상황도 매출감소의 원인이다. 종로3가역에서 만난 F씨는 이런 이유로 “계절에 따른 상품선택보다 시중에서 찾을 수 없는 아이디어 상품을 내놓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잡상인에 대한 승객들의 시선도 힘든 점 중 하나다. 시민들에게 이들은 소음일 뿐이다. 하지만 동정의 눈길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서울역과 청량리역 사이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G씨는 “먹고살려는 이들을 굳이 단속해야 하냐며 보안관을 말리는 승객도 있었다”고 전했다.

 


한 열차에 한 명, 정해진 구간에서만 판매

 

이동상인들은 그들끼리 룰을 만들어 움직인다. 정해진 노선구간에서만 상행위를 하며 한 열차에 한 명씩만 탄다. 동암역과 구로역 사이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D씨는 “서로 겹치는 일이 없도록 오래전부터 구간을 정해 (물건을) 팔아왔다”며 “지하철 내 소음을 줄이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구간별로 모임도 존재한다. 동암~구로 구간 모임의 경우, 매월 25일 20~30여 명의 상인들이 모인다.

 

현행법상 지하철 내 물건 판매는 불법이다. 잡상인에 대한 엇갈린 사회적 평가는 기본적으로 이들의 상행위가 ‘불법’임을 인정한다. 오성근 사회공공연구원 부원장은 “대중교통 문제는 시민안전과 공공서비스 문제로 직결된다”며 “개인의 생계 문제를 잣대로 옳고 그름을 평가할 순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중교통은 그 나라의 문화를 투영하기에 선진화된 문화 형성을 위해 상행위 제재는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공존할 수 있는 대안책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노점상인들의 일부 상행위를 합법화한 ‘노점상 등록제’를 참고할 수 있다”며 “이동상인들에게 지하철 출입증 발급이나 세금부과, 판매시간 제한 등으로 공존하는 사회 모델을 형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잡상인들 판매 물건, 어디서 오는 걸까?

 

지하철 잡상인들이 물건을 조달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첫째, 직접 물품을 구매해 이를 판매하는 방식이다. 잡상인들은 이를 ‘독고’라고 부른다. 독고는 재고를 본인이 모두 떠안아야 한다. 둘째, 사무실로부터 물건을 떼와 판매하는 방식이다. 사무실을 끼고 판매할 경우 재고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잡상인들은 두 번째 방식을 취한다. 도매업을 하는 사무실은 서울 가산동과 구로구를 비롯해 곳곳에 분포해 있다. 이들이 들여오는 대부분의 물품은 중국산이다.  

사무실을 낀 잡상인들의 평균 마진은 40% 정도다. 1000원에 물건을 판매할 경우 400원의 차익을 남기는 식이다. 잡상인 H씨는 “사무실도 물건을 들여오는 과정에서 일정한 차익을 가질 것”이라며 “사무실 관계자들이 유통가격을 알려주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동일한 물품은 사무실마다 같은 가격으로 취급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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