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비자금 수사 타깃이 '서미경'으로 바뀐 이유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6.08.05 18:2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롯데 오너 일가의 비자금 수사가 서미경씨로 확대됐다. 서씨는 신격호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로, 현재 유원실업과 유기실업 등을 운영 중이다. 롯데그룹의 지원 하에 매년 안정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 회사다. 서씨와 장녀인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이 100% 지분을 보유한 유원실업은 그 동안 롯데시네마의 서울 수도권 매점 운영권을 독점해 왔다. 한해 매출만 200억원대를 넘어섰다. 국회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일감 몰아주기 비난이 일자 롯데그룹은 최근 매점 운영권을 회수했다.

 

하지만 유기실업은 여전히 롯데 계열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이 회사는 롯데백화점 매장에서 음식점 사업을 하고 있다. 연 매출은 100억원대. 서씨 모녀가 롯데백화점에 입점해 ‘땅집고 헤엄치기’식의 수익을 내는 것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롯데백화점 식당가에 입점하기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오너의 첩이라는 이유로 백화점에서 식당과 롯데리아 등 2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롯데시네마 강동 ⓒ 위키백과 출처


롯데 지원 등에 업고 매년 수백억 원대 매출

 

검찰이 최근 서씨 모녀를 상대로 수사에 착수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신 총괄회장이 2005년 서씨 모녀에게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6%를 증여하는 과정에서 세금을 탈루한 정황이 포착됐다는 게 표면적인 수사 이유다.   

 

롯데홀딩스는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회사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최근 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재산 다툼을 벌일 때 이 회사를 장악하면서 사실상 전쟁을 종식시켰다. 한국과 일본 기업을 모두 지배하고 있는 만큼 지분 가치만 수십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씨 모녀가 6%의 지분을 증여받았다면 최소 수천억 원의 증여세를 물어야한다. 하지만 이들은 미국과 홍콩, 싱가포르 등 4곳의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거액의 세금을 탈루한 정황이 포착됐다. 검찰은 서씨 모녀가 해외에 세워진 페이퍼컴퍼니에 일본 롯데홀딩스 주식을 쪼개서 양도하는 수법으로 6000억원 상당의 세금을 탈루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4일 세금 포탈 정황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롯데그룹 정책본부를 추가로 압수수색했다. 사흘 전인 1일에는 서씨 모녀의 지분 증여 과정을 법적으로 자문했던 A법무법인을 압수수색했다. 두 차례의 압수수색을 통해 검찰은 서씨 모녀가 세금을 포탈한 정황을 상당 부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무엇보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7월7일 검찰에 구속됐다. 롯데면세점 입점 로비 명목으로 수십억원을 받은 혐의였다. 당시 신 이사장은 검찰 조사에서 “내가 왜 구속돼야 하느냐” 혹은 “왜 내말은 안믿어주느냐”며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구속된 브로커 한 아무개씨의 진술 등을 통해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했다. 다음 타깃은 신동빈 회장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8월 중에 신 회장이 소환될 수 있다는 조심스런 보도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 수사의 타깃이 신 총괄회장과 서씨 모녀로 확대됐다. 검찰 주변에서는 롯데 비자금 수사가 향후 더욱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주식 증여 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A법무법인 변호사를 최근 두 차례 소환 조사를 마쳤다”며 “압수물 분석과 관련 계좌 분석을 마치는 대로 조만간 서 씨를 소환해 조사할 방침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


롯데와 서씨를 둘러싼 수상한 거래는 이뿐만이 아니다. 서씨 모녀는 과거 막대한 부동산을 신 총괄회장으로부터 증여받았다. 서울 신사동 명품 거리에 위치한 606.2평방미터의 땅은 평가액만 150억원대에 이른다. 서울 동숭동 유니플렉스 건물과 인근의 주차장 역시 300억원대로 추정되고 있다. 이밖에도 서울 방배동의 롯데캐슬벨베데레 빌라와 유원실업 본사가 위치한 미성빌딩 등을 합하면 부동산 평가액만 현재 1000억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성빌딩은 2000년대 초까지 서씨 소유로 등재돼 있었다. 하지만 2002년 롯데건설이 이 건물을 사들였다가 2012년 유원실업에 되팔았다. 이 과정에서 특혜가 있었는지도 검찰은 유심히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갑자기 서미경씨로 수사 방향을 급선회한데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 동안 롯데 수사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세 자녀의 비자금에 초점이 맞춰졌다. 검찰 역시 신 총괄회장 일가의 핵심 측근들에 맞춰져 있었다. 이들을 통해 오너 일가의 비자금에 다가간다는 계획이었다. 

 

 

잇따른 구속영장 기각에 따른 고육지책?

 

하지만 법원이 구속영장을 잇달아 기각했다. 법원은 7월 중순 강현구 롯데홈쇼핑 사장의 영장을 기각했다. 강 사장은 롯데홈쇼핑 재승인 로비 의혹의 핵심 인물이었지만,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롯데 일가를 정조준하기 위해 핵심 인물을 구속하려했던 검찰의 기조에 급제동이 걸렸다. 8월 초에는 T세무법인 대표 김 아무개씨에 대한 구속영장도 기각됐다. 핵심 인사의 구속과 진술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검찰은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검찰이 최근 서미경씨 모자로 수사 방향을 급선회한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롯데 오너 일가의 비자금에서 상대적으로 수사가 편한 탈세 혐의 쪽으로 방향을 튼 것 아니냐는 것이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검찰은 최근 이례적으로 대형 로펌에 대한 압수수색까지 단행했다”며 “롯데 오너 일가의 비자금에서 상대적으로 수사가 편한 탈세 혐의 쪽으로 방향을 튼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