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입’ 누가 막을 수 있나
  • 김원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08 10:20
  • 호수 139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트럼프, 이슬람계 ‘골드 스타 패밀리’ 비난…공화당 내부에서도 트럼프 비판

“너무(too far) 나갔다. 유감 표명하고 한발 빼자.” “무슨 소리냐, 계속해야(moving forward) 한다. 어차피 우리 표는 정해져 있다.”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고 있는 미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 캠프 스태프의 최근 논쟁이다. ‘막말의 대명사’라고 불릴 만큼 트럼프는 막말 덕을 상당히 봐왔다. 유권자들이 기존 정치인들에게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시원한 막말에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그를 공화당 대선후보로 선출하는 등 폭발적인 지지를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또다시 이슬람계를 비난하는 트럼프의 막말은 그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있다. 

 

발단은 7월28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무슬림계 미국인 변호사인 키즈르 칸이 2004년 이라크전 참전 도중 자살폭탄 테러로 숨진 아들 후마윤을 거론하며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금지 정책을 비판한 데서 비롯됐다. 트럼프는 “그들이 악의적인 공격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는 당시 무대 위에 있던 그의 부인이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을 두고 “어머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은 (여성의 복종을 강요하는 이슬람 전통 때문에) 발언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말았다. 미국은 자국을 위해 전사한 군인 가족에 대해 ‘골드 스타 패밀리(Gold Star Family)’라는 명칭과 함께 최고 대우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과 종교 차별적인 발언을 했으니, 트럼프에 대한 비난은 걷잡을 수 없이 끓어오르고 말았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의 막말이 점입가경이다.


“트럼프 스스로가 힐러리 승리 돕는 꼴”

 

문제는 갈수록 더 심각해지고 있다. 트럼프의 이러한 막말에 공화당의 일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과 트럼프를 지지하는 존 매케인 상원의원마저 비난 대열에 합류하자, 이에 발끈한 트럼프는 연방의원 후보 선출 경선 때 이들을 지지하지 않고 그들의 경쟁자를 밀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대선후보로 확정된 트럼프가 당의 단합이 아니라 공화당 지도부와 정면충돌하면서 공화당은 거의 패닉 상태까지 이른 것이다. 경선 기간 트럼프 지지를 먼저 선언한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마저 “트럼프는 지금 자신이 힐러리보다 더 용납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함으로써 힐러리의 승리를 돕는 꼴”이라며 “트럼프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대선을 이길 수 없다”고 비난 대열에 합류했다. 트럼프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도 “국가를 위한 칸 부부의 희생과 그들 아들의 희생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면서 트럼프의 발언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마이크 펜스도 자신은 라이언 의장을 지지한다며 트럼프와의 시각차를 드러냈다. 한마디로  자중지란인 셈이다. 

 

사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음에도 당사자인 트럼프는 전혀 태도를 바꿀 의사 없이 오히려 더욱 강경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무슬림 비하 발언 논란에 대해 “나는 어떤 것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트럼프와 공화당 지도부 간의 적전 분열 양상과 파국 위기가 도래함에 따라 공화당 일각에서는 트럼프 낙마에 대비해야 한다는 이른바 ‘플랜B’ 상황까지 거론되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공화당이 전당대회를 통해 공식으로 선출된 트럼프의 후보직을 강제로 박탈할 권한이나 장치도 없고 트럼프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전혀 없어 오히려 분란만 더 커지고 있다.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지지율이 급속히 추락하며 위기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트럼프이지만, 그의 메인 캠프 진영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트럼프 캠프의 핵심인 폴 매나포트 선대위원장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캠프 내 스태프도 분열되고 있다는 언론 보도에 “우리는 선거에만 집중하고 있고 아무런 문제도 없이 잘 나아가고 있다”고 말한 것은 이를 잘 대변한다. 결국 트럼프의 속내는 분명한 셈이다. 아무리 막말을 하더라도 자신을 지지할 표는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막말과 분명한 어조에 열광하는 백인 노동자층을 중심으로 한 지지 세력이 공화당의 본류마저 무너뜨리고 자신을 대선후보로 만들었듯이, 최종 대선에서도 이들의 ‘결집 표’만으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거의 금기로 여겨졌던 ‘골드 스타 패밀리’까지 건드리며 막말을 이어 가자, 캠프 내부에서도 이제는 트럼프를 좀 자중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결국 날 지지하게 될 것” 자신감

 

일반적으로 트럼프가 전당대회에서 대선후보로 확정되면 그동안의 막말 자세를 거두고 어느 정도 품위를 지킬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상황은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는 형국이다. 오히려 공화당 지도부와도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트럼프의 태도에 이제는 ‘브레이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한 선거전문가는 이에 관해 “트럼프가 너무 많은 언론 인터뷰를 자청해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트럼프가 하루에도 9개가 넘는 언론 인터뷰를 계속하고 있는데, 경선 기간이라면 모르지만 대선후보로 확정된 만큼 정돈된 연설만 하고 인터뷰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트럼프의 모든 막말 파동이 거의 언론 인터뷰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질타한 것이다. 

 

하지만 초지일관 막말을 이어가고 있는 트럼프의 목에 누가 방울을 달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분노가 임계점에 달하고 있는 공화당 지도부가 오히려 트럼프 측근이 아니라 딸이나 가족들을 통해 트럼프의 자중을 부탁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트럼프는 조금의 물러섬도 없이 ‘내 갈 길만 가겠다’는 태세다. 그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나를 싫어하더라도 나에게 투표하고 충성해야 한다.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단언했다. 아무리 비판이 들끓더라도 표는 결국 자신에게 몰릴 수밖에 없다는 자신감이다. 결국 역대 공화당 경선에서 가장 많은 지지자를 끌어모은 자신의 방식대로 대선을 치르겠다는 속셈이다. 대선을 불과 서너 달 앞두고 공화당 지도부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는 근본 이유다. 이에 관해 한 정치분석전문가는 “어쩌면 일이 더 빨리 터져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는 어차피 ‘아웃사이더’ 출신”이라며 “대중 몰이에 성공을 거둔 트럼프가 공화당 본류와 합류하는 데는 근본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이번 사태가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과연 공화당 지도부가 튀는 트럼프의 목에 방울을 달아 그의 입을 다소 막을 수 있을지, 아니면 트럼프가 계속 자기 길만을 고집할지, 미 대선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