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우 기자의 If] ③ 건강보험료를 1만5000원 인상한다면?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08.09 11: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자 여러분, 오랜만입니다. 당초 ‘If 시리즈’를 2주에 한 차례씩 출고할 예정이었지만, 급작스럽게 여름휴가를 갖게 되어 한 차례 쉬게 됐습니다. 지난 1, 2회에선 ‘삶의 질’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는 주택·노동 문제를 다뤘습니다. 3회 아이템을 고민하다가 의료 문제를 다루게 됐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민 가운데 두 번째로 오랫동안 일합니다. 당연히 삶의 만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한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죽도록 일하는 걸까요. 다양한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여러 답변 가운데 퇴직한 뒤에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60대 공기업 노동자의 답변이 가장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젊을 때는 아이들(자녀)을 남들한테 뒤처지지 않도록 가르치기 위해서 일했고, 다 키우니까 당장 내 노후가 걱정되더라. 아파서 아이들한테 부담주고 싶지는 않다”는 말이었습니다. 이미 자녀 교육을 다 마쳤고 근로자 평균보다 많은 임금을 받았던 그조차 건강 문제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특정인들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한국 국민 대부분이 민간 보험을 들고 있습니다. 저 또한 의료실비보험, 암보험, 종신보험 등 5가지 보험에 가입하고 있습니다. 매월 30여만원을 보험료로 내고 있습니다. 지출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아파서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입하는 상황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상황은 어떠신가요.

 


5만원 의료실비 보험 vs 1만5000원 건보료 인상

 

그렇다면 해법은 간단합니다. 사람들에게 의료비에 대한 부담을 확 낮출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향후 의료비에 대한 부담이 줄면 상대적으로 미래에 대한 준비를 덜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삶의 질을 상대적으로 올릴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의료비 부담을 낮출 수 있을까요. 전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돼 있는 국민건강보험의 1인당 월평균 보험료를 1만5000원 인상하면 됩니다. 이렇게 되면 병원비의 90%를 건강보험이 지급하게 됩니다. 가장 최근 통계를 보면 2014년 건강보험 보장률은 63.2%입니다. 전 국민 의료비 가운데 3분의 2 가량을 건강보험에서 내준 셈입니다. 하지만 암에 걸렸을 때 수천만원의 치료비가 필요하고, 건강보험만으로는 해결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때문에 민간 보험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는 것이지요.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이게 되면 자연스레 향후 의료비에 대한 걱정을 덜어줄 수 있는 셈입니다.

 

어떻게 1만5000원이라는 숫자가 나왔을까요. 2014년 건강보험 재정 현황을 보면 보험급여비는 42조5000억원가량입니다. 이 급여비를 60조5000억원 정도로 끌어올리면 건강보험 보장성이 90%에 달합니다. 지금보다 18조원이 더 필요한 셈입니다. 하지만 이 돈을 모두 국민들이 직접 추가 부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가와 기업(직장가입자), 국민이 나눠 내기 때문에 국민은 9조원가량을 더 내면 됩니다. 국민은 월평균 7500억원, 1인당 매월 1만5000원 정도를 인상하면 됩니다. 매월 3만~5만원의 의료실비 보험료를 내는 대신 1만5000원의 건보료를 내는 것으로 똑같은 효과를 누리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얘기입니다.

 

프랑스나 독일의 경우 건강보험과 같은 공보험 체계가 튼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보장 비율이 77~78%에 이릅니다. 당연히 민간보험의 필요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 국가에서 민간보험이 의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0% 안팎에 그칩니다. 그만큼 미래 의료비에 대한 걱정이 적고, 지출 구조 가운데 보험료 비율이 낮다는 의미입니다.

 

 

건보료 인상은 무조건 안 돼? 사회적 합의 시도조차 없었다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이자’는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나왔습니다. 지난 2004년 민주노동당은 무상의료를 주장했고, 2010년 즈음엔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건강보험 보장률을 90%까지 끌어올리고, 연간 본인부담금 상한액을 100만원까지로 정하자는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선 여야 후보 모두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주장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 당시 4대 중증질환(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질환) 진단·치료에 필요한 모든 의료의 건강보험 적용을 약속했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정책 수요가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의 반발 때문입니다. 보장률이 높아지면 지급액이 많아지기 때문에 보험료도 오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당장 다음 선거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쉽게 건들지 않습니다. 현재 보장률을 유지하기 위해 티 나지 않게 조금씩 인상해왔습니다. 직장인들에게 1000원에 못 미치는 금액을 더 걷는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국민들이 건보료 인상에 부정적인 이유는 불신 때문입니다. 매년 건보료는 오르면서 혜택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인식입니다. 17조원에 달하는 누적흑자를 기록하면서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건보료 인상 반대의 논리에는 상당수 모순이 존재합니다. 건보료 인상에는 반대하면서도 매년 3만~6만원 사이의 의료실비보험에 가입하고 있습니다. 이익 창출을 목표로 한 민간 회사를 통해 스스로 보장률을 높이는 셈입니다. 당연히 민간 보험회사의 순이익과 운영비용 등까지 가입자들이 추가로 부담하는 꼴입니다.

 

건보료 인상을 통해 보장성을 높이게 되면 서민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측면도 존재합니다. 건보료는 누진제를 적용하기 때문에 보험료율을 올리게 되면 고소득자·자산가들이 훨씬 많은 돈을 내게 돼 있습니다. 또 근로자가 내는 만큼 기업과 국가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인상분의 일부만 부담하면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과잉진료·과잉청구 문제, 정책적 해결 가능

 

이 같은 주장에는 늘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 반론이 존재합니다. 보장률을 높이면 과잉진료·과잉청구가 불 보듯 뻔할 것이란 예상입니다.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이면 의료실비 상품으로 수익을 내고 있는 민간 보험사들의 반발도 불가피합니다.

 

실제로 일부 병원이 의료실비보험 가입자에게 필요하지 않은 고가의 치료나 검사를 부추기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의학적 검증도 없이 도수치료를 권장한다거나, 척추 질환 환자에게 500만원 가까이 드는 척추 신경성형술을 권하는 형태입니다. 특히 도수치료 문제가 불거지면서 보장 항목에서 제외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이면 마찬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책적으로 얼마든지 대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보장률 상향 목표를 100%가 아닌 90%로 설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진료를 받는 국민에게 10%를 부담토록 함으로써 과잉 진료를 막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대신 10%에 해당하는 금액도 부담스러울 수 있는 중증 환자들을 위해 1년 의료비 상한액을 정하는 방법도 고민할 수 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과잉진료 병원이나 과잉청구 환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대안도 고민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선택은 국민의 몫입니다. 갈수록 보장률은 낮아지고 보험료만 올라가는 의료실비보험을 택하겠습니까, 아니면 더 낮은 부담으로 똑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건강보험료 보장성 강화를 택하시겠습니까. 정부 정책의 방향은 결국 사회 구성원들의 선택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