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축구왕국’ 중국의 명과 암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10 10:28
  • 호수 1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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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축구의 놀라운 씀씀이…하지만 결여된 시스템

중국의 ‘축구굴기’는 이제 세계 축구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오는 2025년까지 중국 스포츠산업의 시장 규모를 5조 위안(833조원)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핵심 콘텐츠는 축구다. 글로벌 스포츠인 축구를 중국 내수시장과 결합시켜 2조 위안 이상의 시장으로 키우려 한다. 축구학교 5만 개 설립, 연간 8000억원이 넘는 정부 차원의 축구 정책 예산, 민간기업의 적극 투자 등 세부 정책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완다그룹은 최근 국제축구연맹(FIFA)의 공식 후원사가 됐고,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명문 클럽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지분 50%를 인수했 다. 알리바바그룹은 해외 유명 클럽 후원을 준비 중이다.

 

중국 축구 열기가 뜨겁다. 2015년 중국 슈퍼리그의 경기당 평균 관중 수는 2만2000명을 넘었다. 사진은 중국 관중들이 러시아월드컵 2차 예선 홍콩과의 경기에서 응원하는 모습.


씀씀이 지탱 못하는 시스템, 국제적 망신당해

 

언뜻 권력자의 취향을 좇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기업들이 계산기를 두드려 본 결과 시장성은 충분하다. 중국 슈퍼리그의 성장세는 폭발적이다. 2015년 슈퍼리그의 총 관중 수는 532만 명, 경기당 평균 2만2000명을 넘어섰다. 이는 세계 5위의 기록이다. 올해도 10% 이상의 관중 증가가 진행 중이다. 스포츠산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중계권료에서도 엄청난 성장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슈퍼리그는 5년간 1조4000억원이 넘는 중계권을 체결했다. 연간 2800억원 규모다. 영국 프리미어리그(2조3000억원), 이탈리아 세리에A(1조원), 스페인 프리메라리가(9450억원)의 한 시즌 중계권료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중요한 건 성장 폭이다. 2016년 현재 슈퍼리그의 시즌당 중계권료는 89억원인데 무려 30배가 올랐다. 한국 K리그는 연간 65억원 규모에서 수년째 맴돌고 있다. 

 

인구 13억 명이 넘는 중국은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인 소비력을 보이며 ‘슈퍼 컨슈머(Super consumer)’로 각광받고 있는데, 축구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은 축구굴기를 위해 선투자를 실시했다. 지난 겨울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적료를 썼던 슈퍼리그는 올 여름 이적시장에서도 현재까지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고 있다. 브라질 현역 국가대표 공격수 헐크를 러시아의 제니트에서 상하이 상강으로 데려오면서 5580만 유로(약 710억원)를 지불했다. 지난 1월 또 다른 브라질 국가대표인 알렉스 테세이라가 장쑤 쑤닝으로 이적하며 기록한 5000만 유로(약 650억원)를 뛰어넘은 아시아 축구 이적료 신기록이다. 

 

과거 잉글랜드 대표팀과 맨체스터 시티의 사령탑을 지낸 상하이 상강의 스벤 예란 에릭손 감독은 “메시와 호날두가 수년 뒤 중국 슈퍼리그에서 뛰는 게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니다”고 말했다. 아시아라는 지역과 축구 수준의 한계를 시세를 훨씬 넘어서는 오버페이 전략으로 극복한다. 헐크는 이번 이적으로 전 소속팀에서 받던 연봉의 3배가 넘는 250억원을 받게 됐다. 이는 리오넬 메시·크리스티아누 호날두·웨인 루니에 이은 세계 연봉 4위 규모다. 이런 모습은 세계 부동산 시장과 금 시장을 흔든 중국 ‘다마(大姆·아줌마)부대’의 사재기 전략과 닮았다.

 

중국 축구의 엄청난 씀씀이는 최근 한국 축구에 또 하나의 충격을 선사했다. 오는 9월1일 한국과 중국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첫 경기를 시작한다. 중국축구협회는 최종예선 일정이 확정되자 대한축구협회에 무려 5만 장의 티켓을 요구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 6만6000개 관중석의 80%에 육박하고 티켓 가격만 20억원에 달한다. ‘치우미’로 불리는 중국 국가대표 서포터스, 중국 관광객, 유학생을 동원해 경기장 분위기를 홈처럼 만들겠다는 것이다. 역대 한국에서 열린 A매치 중 외국 관중 최다 입장 기록은 1997년에 프랑스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일전을 위해 찾은 일본 축구팬 1만 명이었다. 대한축구협회는 중국의 1차 요청을 거부했다. 이후 양국 축구협회는 원정 응원석인 남측 스탠드 1만5000석을 할당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중국은 세계 축구의 새로운 왕국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아직 시스템과 문화가 엄청난 투자를 지탱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중국은 휴식기 동안 유럽 축구 명문팀들이 치르는 프리시즌 친선대회인 인터내셔널 챔피언스컵의 최고 흥행카드로 꼽힌 맨체스터 더비를 유치했다. 올여름 새로 부임한 맨유의 조세 무리뉴 감독과 맨시티의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라이벌전이어서 세계적인 관심이 몰렸다. 하지만 경기 당일인 7월25일 시합이 전격 취소됐다. 경기가 열리기로 한 베이징 국립경기장의 그라운드가 수일간 이어진 폭우와 더위로 관리에 실패해 엉망진창이 된 것이다. 무리뉴 감독은 경기 전날 기자회견에서 “선수 안전을 위해 경기를 진행하기 어렵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주최 측은 부랴부랴 페인트를 그라운드에 뿌리고 보수를 실시했지만 결국 경기 취소 사태로 이어졌다. 이 경기에 향했던 세계의 기대가 실망으로 돌변하는 순간이었다.

 

 

연봉은 급상승, 기량은 제자리걸음 

 

베이징 국립경기장은 2008 베이징올림픽 당시 개막식과 폐막식 등 주요 행사가 열린 중국을 대표하는 대형 스타디움이다. 이런 국제적인 경기장이 잔디 관리 문제로 중요 경기를 소화하지 못한 것은 중국의 사회체제가 지닌 단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시장체제는 자본주의를 따르지만 토지와 초대형건물은 철저히 정부가 소유하고 사용권을 불하하는 사회주의 방식이다. 이는 슈퍼리그의 클럽들이 외국인 선수 영입에는 막대한 돈을 쏟아 부을 수 있지만 정작 경기장 확장 공사나 시설 개보수에는 손을 댈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축구산업을 확대하는 중요한 원동력인 문화에 대한 인식도 부재 상태다. 지난 1월 180억원의 이적료를 기록하고 상하이 선화에 합류한 세네갈 출신의 세계적인 공격수 뎀바 바는 최근 리그 경기 중 상대 선수의 과격한 태클에 정강이가 골절됐다. 향후 선수생활을 지속하는 데 지장을 줄 정도의 대형 부상이었다. 뎀바 바의 아찔한 부상 장면은 뉴스와 SNS를 통해 전 세계로 퍼지며 중국 축구에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줬다. 중국은 위험한 플레이로 상대 선수의 심각한 부상을 수차례 유발한 것으로 악명이 높아 ‘소림축구’라는 치욕적인 별명을 얻은 바 있다. 자국 선수의 연봉도 급격히 상승하고 있지만 기량과 페어플레이 의식 등은 제자리걸음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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