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늉만 내는 탈북민지원사업, 피해 입는 여성·청소년 탈북민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6.08.10 13:41
  • 호수 1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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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여성 임금수준 매우 저조…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 학업중단율 높아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이 3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정부는 탈북민들이 새로운 사회 환경에 정착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 아래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사업은 1997년에 제정된 탈북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및 이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기본계획과 시행계획에 따라 통일부·여성가족부·보건복지부·행정자치부·경찰청 등 5개 부처에서 실시하고 있으며, 2016년 기준 예산액은 2023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0.9% 증가했다. 그러나 탈북민의 인구 특성과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 지원 등 중요한 사항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정착지원사업의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로 인한 피해는 탈북자 중 경제적·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청소년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탈북 여성들은 저임금과 이로 인한 빈곤에 허덕이고 있으며,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들은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 가난의 대물림 현상까지 우려되고 있다. 

 

실효성 없는 탈북민 정착지원사업으로 인한 피해는 여성·청소년 탈북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여성 탈북민 비율 80%, 취업 지원정책 전무

 

지난해 국내에 입국한 탈북민 수는 1276명이며, 총 탈북민 인원은 2015년 12월 기준 2만8786명에 이르고 있다. 특히 탈북민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국회예산정책처(예산처)의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사업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탈북민의 비율은 1998년 12.2%에서 2015년(잠정기준) 80.3%에 이르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 20~30대 여성의 비율이 60%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정착지원사업 중 여성 탈북민을 위한 취업지원 서비스가 최우선적으로 시행돼야 한다. 제1차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기본계획(2015~17년)에서도 ‘탈북여성 취업지원 서비스 제공’을 정책과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취업에 직접적으로 연계될 수 있는 구체적인 사업은 전무한 실정이다. 

 

예산처는 보고서에서 “2015년도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시행계획에 고용노동부의 여성 탈북민을 위한 별도의 사업계획은 없다. 고용노동부의 취업성공패키지와 취업보호담당관 시행 과정에 여성이 포함돼 있을 뿐”이라면서 “여성가족부에서는 경력단절여성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여성새로일하기센터(새일센터)를 활용하기로 한 것 외에는 별다른 시책이 없는 상황이다. 새일센터 이용자 중 탈북민은 0.1% 미만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질적인 취업지원 서비스의 부재는 여성 탈북민들의 저임금과 이에 따른 빈곤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성 탈북민의 생계급여 수급률은 남성보다 2배가량 높다. 2015년 기준 남성 탈북민의 생계급여 수급률은 15.1%인 데 반면, 여성은 두 배에 가까운 29.3%를 기록하고 있다. 예산처는 그 이유로 여성 탈북민의 낮은 임금수준을 꼽았다.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의 ‘2014 북한이탈주민 실태조사’ 결과 여성 탈북민 취업자 중 28.9%는 월평균 100만원 이하의 임금을 받고 있으며, 그 비율은 남성(10.3%)보다 약 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30~40대 여성 탈북민 취업자 중 월평균 100만원 이하의 임금을 받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같은 연령대 남성 북한이탈주민에 비해 6배가량 높았다. 

 

경기도 안성시에 탈북자들의 정착지원을 위해 설립된 하나원


예산처는 “여성 탈북민의 상당수가 임금수준이 낮은 직종에서 일하고 있고, 일용직 비율이 높으며, 주당 36시간 미만인 단기간 근무를 하고 있다”면서 “여성 탈북민이 진취적으로 근로의욕을 갖고 일을 하더라도 소득이 생계급여 지급액과 같거나 오히려 낮으면 경제적으로 자립하려 하기보다 생계급여에 의존해서 살아갈 가능성이 크므로 이에 대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문제는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들에 대한 지원책이 미비하다는 점이다. 탈북민의 보호·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상 탈북민은 ‘북한을 벗어난 후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제3국에서 출생한 탈북청소년은 정착지원법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탈북민 지원정책이 아닌 다문화가족 지원법 등에 따라 방과 후 프로그램이나 다문화가족 자녀에 대한 어린이집 보육비 지원 등을 해 주는 데 그친다. 같은 가족 구성원임에도 다른 정책을 적용하는 것은 가족 간 정체성 혼란을 겪을 개연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을 이탈한 주민들은 한국에 입국하기 전에 제3국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은데, 체류 도중 태어난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들도 탈북민들의 증가와 더불어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은 1249명으로, 북한 출생 탈북청소년(1226명)과 비슷한 규모가 됐다.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들은 제3국의 언어를 먼저 배우는 경우가 많아 한국에 입국한 후 언어나 용어의 차이로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서울 양천구에 있는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겨레얼학교에 있는 탈북청소년 중 80%가 한국말을 잘하지 못하는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들이다. 이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탈북청소년들이 고등학교 학업을 중단하는 비율은 일반 청소년들의 고등학교 학업 중단율에 비해 5.4배 높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7월23일 부산 강서구에 있는 자발적 탈북청소년 시설인 장대한학교를 방문했다.


“탈북민에 대한 복지와 지원 제자리걸음 수준”

 

한창권 탈북인단체총연합회 회장은 “박근혜 정부는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4대 국정기조로 내세우며 ‘통일대박’을 외쳤지만, 국내에 들어와 있는 탈북민에 대한 복지와 지원은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탈북민 정착지원사업에는 탈북민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하지만, 낙하산 인사들의 탁상공론으로 실질적인 지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북한인권재단에 250억원을 출연한다고 하지만 이 중 100억원은 직원 월급 등 경상비로 나갈 것이다. 탈북민 지원사업은 흉내만 내다 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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