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관광지에 뿌리박힌 친일의 잔재들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6.08.1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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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가 소유하거나 살았던 관광지들…친일파 공적·글귀 새겨진 비석도 남아 있어

휴가철이다. 전국 방방곡곡 여유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요즘이다. 그런데, 혹시 당신이 지금 방문하거나 찾아가고 있는 그곳이 만약 친일파와 관련이 있는 관광지라면 어떤 기분일까.

수많은 관광객이 오가는 강원도 춘천시의 대표 관광지인 남이섬. ‘나미나라 공화국’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아름다운 곳은 지난해 아베 정부의 우경화, 그리고 그에 따른 반일 감정이 악화되면서 ‘친일 재산 논란’에 휩싸였다. 남이섬은 대표적인 친일파로 알려진 민영휘의 후손들이 가장 많은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곳이다. 민영휘는 일제에 조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1910년 일본 정부로부터 자작 작위와 은사금을 받은 ‘권력형 부정축재자’로 꼽힌다. 친일인명사전,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 등에 포함됐다.

남이섬은 이 민영휘의 손자 민병도씨가 1965년에 매입해 경춘관광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법인화됐다. 2000년 민영휘의 증손자인 민웅기씨가 회사 명의를 ‘주식회사 남이섬’으로 변경해 등기했다. 2001년부터 2014년까지는 전문경영인 강우현씨가 대표를  맡았고, 현재는 전명준씨가 대표로 있다. 그러나 실제로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대표적 대주주들은 민씨 일가다. 

춘천 남이섬

 

친일파의 재산이라도 법인화가 되거나 제3자가 선의로 취득한 재산일 경우 국가에 귀속할 수 없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의 국가 귀속에 관한 특별법’의 한계 때문이다. 1904년 2월10일부터 1945년 8월15일까지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또는 친일 재산임을 알면서 유증·증여를 받은 재산만이 친일재산이 된다. 

 

품위 있는 사대부 가옥으로 잘 알려진 강원도 강릉시의 선교장 역시 네티즌들 사이에서 친일 논란이 일고 있다. 선교장은 300년의 역사와 99칸의 대저택이라는 점 때문에 중요민속자료 제5호로 지정돼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다. 

선교장을 지금의 형태로 중건한 사람은 이근우로,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내는 등 친일 행각을 펼쳤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 네티즌의 이 같은 문제 제기에 대해 강릉선교장 측은 강릉선교장이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의혹으로 조사를 받은 결과 친일반민족행위 혐의가 없다고 판명난 점, 이근우가 동진학교라는 근대학교를 설립하고 독립운동의 기반을 세웠다는 것을 강조하며 선교장이 친일 재산이 아니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근우가 조선총독부 체제 출범 이후 각종 공직에 임명됐고, 2002년부터 2009년까지 발표된 친일파명단과 친일반민족행위 명단에 포함돼 있다는 점 등을 볼 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강릉선교장의 관계자는 친일 재산 논란에 대해 “유선 상으로 답변을 드릴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후손들에게 직접 들으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답했다. 

 

전통 한옥마을에 남아 있는 친일파 거주 가옥

 

서울 중구에 위치한 남산골 한옥 마을은 순수한 한옥들을 이전·복원하고 전통 조경 양식으로 정원을 꾸며 예스러움을 느낄 수 있도록 조성됐다. 그런데 이곳 한옥 5채 중 3곳이 친일파와 관련이 있다. ‘옥인동 윤씨 가옥’, ‘관훈동 민씨 가옥’,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이다. 옥인동 윤씨 가옥은 윤덕영의 집이다. 윤덕영은 조선의 마지막 황후였던 순정효황후의 큰아버지다. 1910년 한일병합 날인을 강요하던 어전회의를 엿듣고 있던 순정효황후가 옥새를 치마 속에 감추었으나 윤덕영에게 빼앗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조약서에 옥새를 찍을 것을 순종에게 강요한 공으로 자작 작위를 받았다. 

관훈동 민씨 가옥은 민영휘의 가옥이다. 윤택영은 순정효황후의 아버지이자 윤덕영의 동생으로, 대표적인 친일파로 알려져 있다. 이 가옥의 주인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있다. 2010년까지 ‘관훈동 민씨 가옥’은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 ‘옥인동 윤씨 가옥’은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로 불렸다. 그러나 사료 조사 결과, 이 가옥의 건립자가 민영휘, 윤덕영 등 친일파임이 밝혀졌다. 이후 서울시는 ‘두 가옥의 건립자가 대표적 친일파이고 여러 사람이 공동 거주했다’는 점을 들어 ‘~씨 가옥’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윤택영재실(출처 남산골 한옥마을 홈페이지)

 

친일파와 관련된 비석도 논란

 

친일파를 기리거나 친일파의 작품을 새겨둔 비석도 관광지 여기저기에 포진돼 있다. 대전의 유성온천은 일제 강점기인 1921년에 개발된 관광지다. 유성온천 공원 내에는 ‘종2품 중추원참의 김 공 갑순 자선공덕비’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비석의 주인공인 김갑순 역시 친일 행적으로 논란이 됐던 인물이다. 친일파 708인 명단과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등에 포함돼있다. 조선총독부 공직을 연임하고, 각종 친일단체의 임원을 맡아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공로자 중 한 명으로 수록된 그는 친일전력으로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됐으나 이승만 정부의 특위 해체와 함께 풀려났다.

1983년 부산 해운대 해월정에 세워진 ‘달맞이 동산비’에는 친일 소설가 춘원 이광수의 작품 <해운대에서>가 새겨져 있다. 이광수는 ‘가야마 미쓰로’라는 일본 이름으로 창씨개명에 앞장섰을 뿐 아니라 친일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를 이끌며 친일행각을 벌인 친일파다. 1948년 만들어진 반민족행위처벌법에 따라 수감됐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했으나 6·25때 납북됐다. 지난 2007년 구 의회와 지역문인단체들이 달맞이 동산비의 철거를 요구했으나 해운대구청은 시 내용이 달맞이 길의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고 있다는 여론도 있다며 철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1년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가 이광수의 시를 삭제하고 다른 시로 대체해 줄 것을 재차 요구했지만 해운대구청은 ‘주민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답변만 내놓았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친일파의 시가 새겨진 비석은 해월정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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