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으로 음악교육계 ‘병폐’ 사라질까
  • 김헬렌 인턴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11 13:48
  • 호수 1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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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학교 교직원도 대상 포함…적발 가능성은 ‘글쎄…’

7월28일 합헌 판결이 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사립교원이 포함됐다. 언론인을 제외하고는 유일한 민간 직군이다. 사립학교 교직원들의 반발은 적지 않았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할 수 없다는 입장을 지켰다. 교육계에 부정청탁이나 금품 수수 관행이 오랫동안 만연한 데다, 개선될 여지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 사립학교 교직원들의 부정부패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고질병이다. 교육계 가운데서도 음악 부문이 특히 그렇다. 실력보다 든든한 뒷배가 있어야 성공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2014년 방영한 드라마 《밀회》에는 음악교육계의 각종 부조리가 고스란히 담겼다. 이를 극적 연출을 위한 과장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밀회》에 출연한 서울대 성악과 출신 탤런트 김혜은은 “실제로는 더하다”고 자신의 경험을 털어놨다. 현실에서 드라마보다 더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립대 음악교육계에서는 지금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복수의 음대 입시생들을 통해 부적절한 각종 ‘관행’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다.

 


대학 입학 전부터 ‘교수님 모시기’ 열중

 

서울의 한 대학 성악과에 재학 중인 구민영씨(가명·25)는 음악계에 만연한 부조리가 교수와 학생 간 ‘갑을 관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구씨에 따르면, 교수와 학생 사이에 이런 관계가 형성되는 건 대학에 입학하기 전부터다. 지원 대학 교수들의 라인을 타지 않고는 입시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조건은 간단하다. 거액의 레슨비와 선물공세다. 라인을 타게 되면 입시생들은 교수를 속칭 ‘큰선생님’으로 모시게 된다. 큰선생님 산하로 들어간 입시생들은 상당한 수혜를 누리게 된다. 시험관으로 들어가는 이를 소개해 주거나, 실기시험에 나올 곡을 미리 알려주는 식이다. 

 

대학에 가서도 ‘큰선생님’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칫 교수들 눈 밖에 났다가 낮은 점수를 받거나, 석·박사 진학을 위한 추천서를 받기 어려워지는 등 부당한 대우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교수들을 극진히 모실 수밖에 없다. 서울 소재 대학 기악과에 다니는 유명진씨(가명·23)는 “같은 교수 산하의 제자들은 교수들의 선물 취향 정보를 공유하거나, 서로 선물이 겹치지 않도록 조율하는 등 교수들 모시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국내 음악교육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풍경”이라고 지적했다. 

 

이렇다 보니 교수들이 노골적으로 선물을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직접 무엇을 사달라고 하지는 않지만 은밀한 방식으로 요구사항을 전달한다는 것이다. 서울 소재 대학 성악과에 재학 중인 김현수씨(가명·24)는 “스승의 날이나 생일 때면 강의실 책상 위에 명품 브랜드 잡지가 펼쳐져 있다. 한쪽 귀퉁이가 접혀 있으면 해당 페이지에 나온 상품을 선물해 달라는 암묵적인 지시”라며 “교수들도 학생 시절 비슷한 과정을 밟아왔기 때문에 문제의식이 희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뿐 아니다. 교수들이 주도적으로 개최하는 음악회나 음악캠프 등 각종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야 한다. 문제는 이들 행사의 참가비가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에 달한다는 데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티켓 판매를 학생들에게 떠넘기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여러 장의 티켓을 구매하게 한 뒤, 이를 다시 지인들에게 되팔게 하는 것이다. 물론 팔지 못한 티켓 대금은 모두 당사자가 책임져야 한다. 서울 모 대학 피아노과에 재학 중인 이승희씨(가명·24)는 “교수들 행사에 참석하지 않으면 은혜를 모르는 제자로 취급받게 된다”며 “행사장에 가서도 꽃과 선물, 백화점 상품권 등을 전달하는 것이 관례”라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음대생들 사이에선 교수에게 들어가는 돈이 등록금을 훌쩍 넘어선다는 푸념마저 나올 정도다. 재정적 여유가 부족한 학생들의 경우엔 상당한 부담일 수밖에 없다. 선물값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학생들이 있을 정도다. 당연히 이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김영란법 시행 이후 이런 부적절한 관행은 개선될까.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교수의 티켓 강매나 선물, 유료행사 참석 등을 강요하는 행위는 모두 처벌 대상이다. 김영란법 5조15호 ‘지위와 권한을 벗어나 행사하거나 권한에 속하지 아니한 사항을 행사하도록 하는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를 단속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한 변호사는 “김영란법 위반 적발은 사실상 제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음악계의 폐쇄적인 특성상 사실상 단속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음악계 부적절한 관행 음성화 가능성도 제기

 

학생들과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비관적인 입장이 지배적이다. 교수들의 부정에 대한 제보가 나올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먼저 ‘바닥’이 좁아 제보자 색출이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교수들이 음악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한 만큼 일단 ‘배신자’로 낙인찍히면 국내 음악계에서 활동이 어려워지게 된다. 학생으로선 그동안 쌓아온 경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셈이다. 학부모 이의영씨(가명·60)는 “과거에도 금품을 요구한 교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등 음악계의 병폐를 공론화하려는 움직임이 수차례 있었지만 모두 유야무야됐다”며 “이를 지켜봐온 학생들이 제보에 나설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김영란법이 음악계 부조리를 척결하기보다, 오히려 더욱 음지로 숨어들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변호사협회 소속의 한 변호사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이를 피하기 위한 각종 편법이나 꼼수가 생겨날 것으로 본다”며 “이 경우 법 시행 이전보다 부조리 적발에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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