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어바웃 아프리카] 아프리카 첫 올림픽 마라톤 선수는 개한테 쫓겨 다녀야 했다
  • 이형은 팟캐스트 ‘올어바웃아프리카’ 진행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14 10: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림픽과 아프리카 대륙
역사상 최초로 남미 대륙에서 개최된 제31회 리우 올림픽. 남미 대륙인 브라질에서 올림픽이 개최되면서 아프리카 대륙은 단 한 번도 올림픽을 개최하지 못한 유일한 대륙이 되었다. 이번 올림픽은 또 다른 의미에서 ‘최초’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난민들이 출전 자격을 부여받아 참가한 최초의 올림픽이다. 그리고 남수단을 포함한 아프리카 대륙 54개국 전체가 참가한 최초의 올림픽이다. 

아프리카 대륙이 올림픽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개최된 올림픽에서였다. 당시 세인트루이스에서는 1900년 파리 올림픽 때처럼 올림픽과 세계 박람회가 함께 개최되고 있었다. 13개국에서 총 625명의 선수가 출전했는데 올림픽 관계자는 출전 선수가 적다는 이유로 세계 박람회 참가자들을 초청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남아프리카공화국(1910년 남아프리카 연방으로 독립 획득)이 이 때 참가를 하게 됐다. 이후부터 남아공, 이집트 등 영국 식민지였던 몇몇 아프리카 국가들이 올림픽에 참가했다. 하지만 아프리카 국가들이 본격적으로 올림픽에 출전을 한 때는 탈식민화가 진행되던 1960년대부터였다. 

1960년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로마 올림픽에는 1950년대 독립을 획득한 후 처음으로 올림픽에 출전한 모로코, 수단, 튀니지를 비롯해 남아공, 케냐, 에티오피아, 가나, 라이베리아, 나이지리아, 로디지아(현재의 잠비아, 말라위, 짐바브웨), 아랍연합 등 총 12개 아프리카 국가들이 출전했다. 이후 신생 독립국가들이 탄생하면서 아프리카 국가들의 올림픽 참가는 매회 늘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에는 22개 국가가, 1972년 뮌헨 올림픽에는 30개의 아프리카 독립 국가들이 참가했다. 

개떼에게 쫓기면서 마라톤을 완주한 아프리카 흑인 선수

금, 은, 동메달이 처음 도입된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이 대회에 아프리카 최초로 올림픽 참가한 선수는 마라톤에 출전했던 렌 타우(Len Tau)와 그의 친구 잔 마쉬아니(Jan Mashiani)로 모두 흑인선수였다. 세계 박람회 때문에 세인트루이스에 왔던 렌타우와 잔 마쉬아니는 남아공 보어전쟁 관련 전시회에 있었다. 올림픽 관계자의 눈에 띤 그들은 마라톤 출전을 제안받고 참가하게 됐다. 

1904년 8월30일 마라톤 경기가 열리는 세인트루이스의 날씨는 무척 덥고 습했다. 마라톤을 하기에는 너무 무더운 탓에 42.195km를 완주한 선수가 마라톤 출전자 총 32명 중 단 14명에 불과했다. 렌 타우와 잔 마쉬아니는 이날 맨발로 뛰었고 각각 9위와 13위의 결과를 얻었다. 

사실 그들은 더욱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경기 도중 돌발 상황만 발생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경기 도중 갑자기 나타난 개떼들이 두 흑인 선수만을 뒤쫓았다. 놀라운 것은 렌 타우는 개떼에게 쫓겨 1마일 가량 코스를 벗어나게 되었는데도 9위로 완주했다. 돌발 상황만 없었다면 아프리카 최초의 금메달은 제3회 올림픽에서 처음 나왔을 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올림픽이란 백인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한 무대였고, 흑인이 올림픽에 참가하게 된 것은 백인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한 계산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들에 대해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

1970년 도쿄올림픽에서 마라톤 2연패에 성공한 아베베의 모습.
아프리카 흑인 최초의 금메달 ‘맨발의 아베베 비킬라’

올림픽에서 아프리카 흑인이 처음 금메달을 획득한 것은 1960년 로마 올림픽이었다. 올림픽에 첫 참가한 1904년 이후 약 반세기가 지나야했다. 10개 이상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참가한 로마 올림픽. ‘올림픽의 꽃’인 마라톤에서 전직 군인 출신인 무명의 에티오피아인이 아프리카 흑인 최초이자 에티오피아 최초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 주인공은 하일레 셀라시에 1세 황제의 친위대 출신으로 한국전쟁에도 참전을 했던 ‘아베베 비킬라’다. 

그는 맨발로 2시간15분16.2초로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다. 에티오피아를 침공했던 이탈리아가 1937년 약탈해 갔던 악숨 왕국의 상징인 오벨리스크가 있는 로마에서, 아베베 비킬라는 맨발로 근대 유럽제국주의와 대결을 벌여 한판승을 거둔 셈이다. 이날의 금메달은 식민 지배를 받았던 아프리카 대륙 뿐 아니라 에티오피아 국민들에게 매우 큰 의미를 주었다.

로마 올림픽 마라톤 코스는 로마 제국의 자취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아름답고 웅장한 로마 시내를 관통하도록 짜여졌다. 전쟁 탓에 지치고 피폐해진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로마 제국의 후손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깨우치고 재건에 대한 용기를 북돋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승리의 기쁨과 함께 통과했던 이는 그들의 영웅이 아니라 한때 이탈리아의 침략을 받았던 국가의 왜소한 마라톤 주자였다.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은 아베베 비킬라를 에티오피아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그는 이후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도 세계 신기록을 갱신하며 두 번째 금메달을 획득했다. 

인종차별과 올림픽 보이콧

22개 아프리카 국가가 참가한 1964년 도쿄 올림픽. 1904년부터 올림픽에 참가를 했던 남아공이 ‘아파르트헤이트’(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로 인해 참가하지 못했다. 1652년 케이프 식민지 때부터 뿌리를 두고 있는 아파르트헤이트는 1948년 개념화되어 공식적으로 남아공에 적용됐다. 이 정책으로 남아공은 올림픽위원회로부터 1962년 올림픽 출전 금지를 당했고 이후 1992년까지 출전하지 못했다. 

남아공은 아파르트헤이트로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책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아프리카 국가들이 불참을 선언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남아공과 친선 럭비 경기를 한 뉴질랜드의 올림픽 참가가 허용되자 아프리카 22개국이 몬트리올 올림픽 불참을 공식 선언했기 때문이다. 

올림픽 정신에 위배된 인종차별정책으로 인해 남아공이 각종 세계스포츠 행사에 출전 금지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오세아니아 국가들은 남아공과 계속 럭비 경기를 해왔다. 뉴질랜드 입장에서 럭비는 올림픽 종목도 아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뉴질랜드의 올림픽 출전 허용에 항의하며 아프리카 국가들은 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했지만 IOC(국제올림픽위원회)는 그 결정을 철회하지 않았다. 결국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세네갈과 코트디부아르만이 참가했다. 올림픽 오륜기에서 검은 고리가 빠진 셈이었다. 

올림픽에서 획득한 아프리카 국가의 메달 개수는?

선천적으로 스포츠에 유리한 신체 조건을 가진 흑인들이 대다수인 아프리카 대륙이다. 이들이 올림픽에서 거둔 성적은 어떨까? (여기서는 1908년 런던 올림픽부터 1956년 멜버른 올림픽까지 남아공 백인선수 및 이집트 선수가 거둔 메달은 언급하지 않도록 한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아프리카 흑인 최초의 금메달이 나왔다. 이후 1964년 도쿄 올림픽까지 ‘아베베 비킬라’ 외에는 어느 누구도 금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육상부문에서는 케냐가 3개의 금메달을 획득했고 에티오피아와 튀니지가 각각 1개를 따냈다. 아프리카 대륙은 멕시코에서 총 5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아프리카 대륙의 올림픽 성적은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멕시코 올림픽 때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아프리카 국가들은 금 11개, 은 9개, 동 14로 기존에 비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금 9개, 은 11개, 동 15개, 그리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금 9개, 은 13개, 동 13개로 비슷한 성적을 유지했다. 아프리카 대륙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또 한 번의 도약을 했다. 금 12개, 은 14개, 동 14개를 얻었다. 그리고 지난 런던 올림픽에서는 금 11개, 은 12개, 동 11개를 얻었다. 

1960년부터 2012년까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을 제외한 총 13번의 올림픽에 참가했는데 케냐 86개, 에티오피아 45개, 남아공 28개 등 총 282개의 메달(금 80개, 은 94개, 동 108개)을 획득했다. 한 국가가 아닌 54개 국가로 구성된 아프리카 대륙의 올림픽 성적은 여전히 초라한 편이다. 세계 ‘경제’ 서열이 ‘스포츠’ 서열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훌륭한 선수를 양성하려면 첨단 기술이 접목된 장비와 훈련 내용, 그리고 의료 지원 등이 필요하다. 국가가 스포츠 인프라에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따라서 스포츠 대회에서 거두는 선수들의 성적은 자본 투자 규모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올림픽에서 획득한 각 국가의 메달수와 국가 경제력간의 상관관계는 많은 연구 결과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이 올림픽 메달 숫자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지금까지의 아프리카 대륙이 이룬 올림픽 성과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지도 모르겠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